[가려지는 별] 03. 사랑을 말할 때 눈의 반짝임을 본 적 있나요

글 입력 2018.11.19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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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그리고 사랑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매년 가족 단위의 성도들이 찬양을 부르는 ‘가족 찬양제’를 한다. 매년 개최되는 행사지만 수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특별한 감정을 경험한 적이 있다. 가족 단위로 참여하는 행사라 아주 어린 아이도 함께 무대에 서곤 하는데, 대부분의 아이는 부끄러움에 못 이겨 노래를 잘 부르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날 그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작아서 무대에 서 있는 모습이 잘 보이지도 않았던 그 아이는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찬송가를 부르는 엄마의 뒤에 숨기 급급했다. 그런데 마지막 소절을 앞두고 마이크에 입을 가져가더니 작은 목소리로 한 소절을 불러낸 것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쳤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자신이 왜 벅찬 감정에 젖었는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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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체험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그 아이는 자신이 부른 가사의 의미를 몰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의 진심을 다했을 것이고, 용기를 냈을 것이다. 최선을 다해 짧은 가사를 또박또박 부르는 모습에서는 누구에게 잘 보이려는 의도가 전혀 없어 보였다. 그때 어른들은 한 치의 꾸밈도 없는, 자신에겐 먼지 덮인 지 오래인 그 마음을 발견한 것과 같은 감동을 느낀 것이 아닐까? 사실 지금도 내가 왜 그랬는지 자세히 알 순 없다. 그만큼 아득해진 마음이다.

순수를 동경하는 마음은 보편적이다. 순수의 가치는 그 자체에도 있지만,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면 다시는 전과 같이 지닐 수 없는 희소성 때문에 더욱 열망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유사하게라도 어릴 적의 순수를 지속할 수 있다. 사랑이 대표적인 방법이다. 순수는 어쩌면 맹목적이고, 사랑만큼 사람을 맹목적으로 만드는 것은 없다. 당장 자신에게 떨어지는 이익이 없을지라도 단지 ‘좋아하기’ 때문에 온 열정을 다 할 수 있고 그 어떤 경계심도 없이 삶의 모든 부분을 의탁할 수 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순수한 정도를 넘어 ‘바보’에 비유되기를 자처하기도 한다. 이처럼 순수한 것이 없다.



우리는 모두 사랑의 주체


그런데 왜 사랑하는 자는 쉽게 ‘을’이 되고 웃음거리가 되는 것일까? 짝사랑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사랑 자체가 하나의 단점이 된다. 사랑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그 마음의 소중함 마저 무시되는 것은 안타깝다. 연예인을 좋아하는 팬은 말할 것도 없다. 일방적인 사랑에 열을 올린다는 이유로 아주 쉽게 비웃음거리가 된다. 문화·예술을 향하는 취미 생활이 대개 그런 취급을 받는다. 마니아를 낮잡아 이르는 ‘오타쿠’는 비하의 의미로 통용되고 소비는 질책의 대상이 된다. 왜 그런 데에 돈을 쓰냐는 말은 문화·예술과 관련된 취미를 가진 마니아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사랑의 가치는 우리도 모르는 새에 폄하되고 있다. 무언가를 좋아해서 마음을 쓰는 일이 얼마나 큰 즐거움을 가져다주는지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비록 그만큼 아픔을 가져다줄 때도 있고, 그럴 때면 사랑했던 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에 대한 그 모든 경험에 있어서 우리는 주체이다. 사랑을 하며 느끼는 설레고 가슴 뛰는 순간들은 각자마다 모두 모양을 달리 하며 그 어떤 누구도 대신하거나 간섭할 수 없다. 그것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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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 역시 ‘좋아함’의 가치를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피아노를 즐겨 쳤고 스스로도 곧잘 친다고 생각했다. 학교에 적어내는 자기소개서에서 취미를 물을 때면 열이면 열 피아노 연주라고 답했다. 하지만 내가 피아노 연주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깨달은 것은 대학교에 와서부터이다. 대학교 밴드 동아리에서 키보드를 연주한 적이 있는데, 얼마 없는 키보드 연주자 중 하나였던 나를 선배와 동기들은 끊임없이 북돋아 주었고 나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열심히 연습하였다. 평소와 같이 부원들과 연습실에서 합주하던 어느 날, 키보드를 연주하던 나를 본 선배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즐거워 보인다.” 나는 나도 모르게 너무도 신나게 건반을 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땐 그게 그렇게 부끄러웠다. 숨기고 싶었던 것을 들킨 것 같았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피아노를 즐겨 치고, 연습했고 노력했다는 사실을 애써 숨기며 타고난 실력으로 보였으면 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정말 피아노 연주를 좋아했다. 선배는 나 자신도 외면했던 나의 진심을 알아본 것이었다. 선배의 그 말은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음악인이 되고자 하는 삶의 소중한 목표는 그 선배의 말이 아니었더라면 쉽게 길을 잃었을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난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라는 더할 나위 없이 확실한 이유로 선택지를 고르기 시작했다. 힘들어도 즐거웠고, 실패해도 보람찼다. 순수한 마음은 정제하지 않고도 당당했다.



사랑을 말할 때 눈의 반짝임을 본 적 있나요


알아채는데 한참 걸렸지만, 나는 원래부터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점에서 큰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화젯거리가 나오면 눈을 반짝이던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한다. 그제야 빛나던 눈 속의 별들은 상대의 깊은 내면에 있는 우주를 발견한 듯한 느낌을 주었다. 서두에 언급했던 아이의 찬송 한 소절에서 느꼈던 감동이 이와 비슷한 것이었을까. 일체의 거짓 없는 순수한 함박웃음에선 진심 어린 행복이 느껴졌다.

요새 인터넷에서 '주접'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사전적으로는 '차림새가 초라하고 지저분한 것'을 의미하며, 추하고 염치없게 행동한다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그런데 요즘은 좋아하는 대상에게 아낌없이 애정 표현을 한다는 긍정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단순히 재미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확실히 많은 사람이 '주접'을 반기는 듯하다. 우리는 사랑하는 자가 지니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실재함을 알고 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시인의 시를 인용하며 글을 맺는다. 이 시는 연탄이 뜨겁게 타오르고 소임을 다하는 모습을 비추며 희생의 가치를 주목하지만 사랑의 가치 또한 충분히 조명한다. 뜨겁기 때문에 아름답고, 그렇기에 함부로 할 수 없다. 사랑의 경험을 되새기며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 되리라 다짐해본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그것을 사랑하는 나를 가리지 않기로 결심해본다. 사랑하는 자는 우리의 생각보다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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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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