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마음대로 사랑할 수 있을까? <그 하루의 꽃> - 서로단막극장

글 입력 2018.11.21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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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카페가 우릴 반겨줬다. 연극하기 전에 관객들이 옹기종이 모여앉아 연극을 기다리는 모습은 나를 더불어서 설레게 했다. 계단으로 공연이 펼쳐지는 '공간서로' 향할 수 있었다. 맞이해주는 그 하루의 '꽃', 식탁 위 꽃의 그림자 진 모습이 화면의 하늘과 어우러져 고즈넉한 분위기를 일궜다. 꽃구경하다 보니, 하나둘 관객들이 들어오고 극이 시작됐다.




서막을 여는, 동성애자와 그 쌍둥이의 다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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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했던 것과 달라 당황했다. 애초에 소개 글에서도 다툼이라고 명시되어있건만, 대관절 무엇을 다툼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실질적인 시간 배분은 모르겠지만, 첫 에피소드는 비중이 너무나도 적었다. 그 하루의 꽃은 세 개의 에피소드가 아니라 사실 두 개의 에피소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영향 없었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첫 씬 마저, 처음엔 이혼을 예정한 두 부부의 만남이 아니라 첫 에피소드의 다른 씬으로 생각할 정도였다.

또한 쌍둥이 키워드를 왜 넣었는지 모르겠다. 굳이 쌍둥이 캐릭터가 아니라 가족으로 설정해도 충분히 자연스러웠다. 작중에서도 쌍둥이라는 언급이 별로 없었다. 보통 쌍둥이라는 설정을 넣을 때는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끈끈한 관계라거나 나를 지지해주는 제2의 자아쯤으로 구성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쌍둥이는 그냥 평면적인 캐릭터였다. 조금 친한 사이의, 털털하고 개성 있는 여자 동생 누나쯤이었다. 아쉬웠다. 뭔가 더 영혼의 단짝이라는 설정과 다툼이라는 워딩이 어떻게 어우러질지 궁금했었기 때문이다.

처음 에피소드를 지켜보면서 든 생각은 '동성애를 주제로 자칫 잘못 다루면 비난을 받을까 봐, 몸 사렸구나'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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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되지 못한 이야기라는 큰 컨셉에는 매우 적절했다. 아직까지 성소수자들이 개방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사회는 아니기 때문에 잘 반영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즘 성소수자 스트리머도 적지 않게 활동하며, 당장 퀴어 퍼레이드가 거리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 사회가 성소수자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는 않을지언정 적어도 성소수자가 활동하면서 가시적으로 보이는 사회다.

큰 컨셉을 지나치게 의식했나? 사회적 시선을 의식했나? 필자는 다소 동성애 표현이 아쉬웠다. 적어도 창작물은 사회가 반영되긴 하지만, 사회는커녕 비중 있게 다루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웠다. 기실, 필자가 제일 기대했던 에피소드라서 실망이 더 컸을 수도 있다.

다시 생각해봤다. 배우들과 제작진들이 생각 없이 연출할리 없다. 충분한 조사를 통해서 연출했을 것이다. 아직도 사회적으론 동성애자에 대한 시선은 아직 멀었다. 쌍둥이한테도 말하지 못할 정도로 조심스러운 것이다. 쌍둥이의 대사에서도 알 수 있다. 쌍둥이는 여자친구만 외친다. 남자의 연인은 당연히 여자라고 생각하고 이외의 경우는 배제해버리는 것이다. 의도가 어떻듯 당연히 존재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존재를 배제하는 것이다.

그렇게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사회에서 LGBTQ에 대한 현실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쌍둥이에게도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할 정도의 사회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혐오 이전의 무시와 배제. 그 남자 심정을 짐작하지도 못한다. 2년 사귄 연인과의 좋지 않은 관계, 사실상 헤어지는 사이는 성소수자 끼리도 서로를 챙기기 어려운 안타까운 현실을 함의하는 게 아닐까? 2년 동안 자신의 성적 지향성과는 다르게 현실에서 요구하는 성적 지향성을 거부하다가 현실의 강요에 힘들어하는 모습이다.




이어지는, 이혼을 예정한 부부의 마지막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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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코트를 입은 배우의 존재감이 너무 강렬해, 전 에피소드의 배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클로징 무대 인사 때야 겨우 짐작했다. 두 번째 에피소드도 내 예상과 달랐다. 서로 간에 남은 미련이라고는 잣 한 알일 정도로 생각했는데, 배우들은 서로를 미련 뚝뚝 넘치는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뭔가 한 번의 만남으로 이혼을 번복하는 드라마 같은 불상사는 없어서 다행이지만. 이것 또한 서로 단막극장이 내세운 슬로건과도 부합했다.

잘못 생각했다. 미련이 1도 없다면 더 이상 만남을 가지지 않을 것이었다. 그만큼 사랑했으니까 성격이 맞지 않아도 7년이 넘도록 같이 살았겠지. 너무나도 헛짚어버렸다. 이혼한다는 것 자체 워딩에 너무 집중해버려서, 이혼이나 헤어짐에는 사랑이 한 톨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 전제해버렸다. 사랑에 무지한 탓일까? 사람이 헤어지는 이유는 그 사람을 더 이상 단 하나도 사랑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처한 현실과 고난 힘듦 따위가 사랑하는 마음을 이겨버린 것이다. 그전에는 사랑의 크기가 더 커서 어찌어찌 버틸 수 있었다 쳐도 말이다.




비정규직 간병인과 부자 고용인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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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너무 현실적임을 강조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에피소드.

현실에는 고용인에게 저렇게 싹수없게 대들 수 없다. 고용인이 갑이 아니라, 돈이 갑이기 때문에서라도 저런 관계는 성립할 수 없다. 고용인과 간병인 간의 관계라보다는 아버지와 아들 관계에 조금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병인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시선 속에는 잘 되길 바라는 마음, 따뜻한 시선이 조금 담겼다. 걱정되지 않으면 그런 잔소리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후에 '할아버지, 해봐'라는 대사가 어느 정도 뒷받침한다. 현실에서 일어났던, 간병인에게 유산을 물려줬던 일례가 생각난다.

아직 회장님 회장님 이러는 거 보니까 재산이 엄청날 텐데, 자식들 모두 유산을 노리지 않는 걸까? 너무 순수하게 아버지를 방치해버린다. 간병인에게 맡겨놓고, 간병인 월급도 제때 챙겨주지 않는다는 건 '아버지를 위해 간병인을 마련해둔 효자'라는 콘셉트마저도 충실히 수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뭔가 너무나도 순수해버렸다.




마지막으로, 그 하루의 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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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에피소드가 이어지는 연출이 참 좋았다. 꽃이 각 에피소드를 집약해서 보여준다. 첫 에피소드에서는 동성애자가 연인을 위해 꽃을 아름답게 포장했지만, 깨진 약속에 쓸쓸하게 꽃을 버렸다. 힘없이 떨어지는 꽃은, 성소수자의 현실에 대한 지침, 체념 따위를 보여줬기도 하면서도 아슬아슬 바스락거리는 연인과의 관계도 같이 보여줬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남성이 꽃을 주우면서 시작된다. 아직 사랑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꽃이 여성에게로 옮겨가면서 그 가능성이 통하는 걸 알 수 있었다. 곧 다툼으로 여성이 꽃을 패대기쳤지만.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긴 하지만,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짜증과 증오 등 다른 감정이 더 커져버렸다. 더 이상 사랑만으로 살기 힘들기 때문에, 사랑할 수 없는 상태에 도달했다. 패대기쳐지는 꽃의 모습은 사랑보다는 증오와 분노에 더 가까웠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노인이 꽃을 주우면서 시작된다. 가족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면서, 가족에게도 사랑이나 존경받고 싶다는 호소다. 애지중지하면서 집까지 가져왔으며, 간병인이 꽃을 버리려고 하자 역정을 낸다. 여전히 가족을 사랑하고 있으며, 가족들이 저를 그렇게 여겨주길 바라고 있다. 여러 가지 매몰찬 대우에도 불구하고 놓질 못한다. 받고 싶었던 존경은 간병인에 의해 실현된다. 그가 꽃을 물병에 소중히 담아주면서, 존경을 표한다는 것으로 극은 마무리된다. 유일하게 '그 하루의 꽃'의 꿈이 실현됐던 에피소드.

몹시 아쉬웠던 건, 내레이션 제발 뺐으면 좋겠다. 몰입을 너무 방해한다. 웰메이드 연극이 EBS 이솝우화 따위로 전락됐다. 내레이션이 없었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꽃이 말하지 않은 것이 비가시적인 가치, 사랑에 대한 표현으로 오히려 더 적절했을 것이다.



[오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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