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너와 나는 결국 ‘완벽한’ 타인이었다 [영화]

‘완벽한’ 타인과 함께, ‘완벽한’ 타인으로서 살아가기
글 입력 2018.11.21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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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게임 하나 해볼래?”


   

최근 한국영화의 침체기를 완벽하게 살려낸 ‘완벽한 타인’. 이 영화는 제목부터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타인(他人)’이란 사전적 정의로는 ‘다른 사람’이란 의미로, 말 그대로 ‘내가 아닌’ 사람이다. 나 자신도 완벽하지 않고, 완벽하게 알지도 못하는데 타인이 완벽하다니, 이런 어불성설이 또 어디 있을까.

 

영화는 나의 가장 가까이에 있고, 그만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알고 보니 ‘완벽하게’ 타인이었음을 말한다. 앞서 살펴본 타인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사람, 즉 내가 아닌 사람이었으므로 35년 지기 친구는 물론 한 지붕 아래 살며 육체적⋅정신적 교감을 나누는 아내 또한 타인의 범주에 속한다. 하지만 우리는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가? 나는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한때 박보검의 “내 사람이다”라는 대사가 선풍적인 열풍을 일으킨 것처럼 우리는 서로의 가까이에서 친교를 나누는 사람은 일반적인 타인의 범주가 아닌 ‘내 사람’이라는 영역 속으로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여전히 ‘타인’임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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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사람은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타인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 그러한 타인들 중 ‘내 사람’을 만들려는 욕구는 당연한 것이다. 영화 속 집들이에 함께한 모든 인물들은 이 영역 안에 속해 있다. 35년 지기 친구들인 남자들은 물론 그의 아내인 여자들 또한 서로 친밀한 사이를 자랑한다. 겉으로만 봤을 때는 아무 문제없는 평범하고 화목한 집들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암묵적인 규칙이 존재하는데, 이는 휴대폰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영배를 대하는 태도, 모임에서 축출된 순대를 험담하는 대화 등에서 이미 드러나고 있다. 바로 사회적으로 우수하고, 바람직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 이 선을 넘을 시, 관계는 파기된다.

 

어린 여자와 바람을 피운 순대는 친구들에게 이를 알렸고, 그런 ‘저급한’ 인물과는 어울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는 모임에서 축출되었다. 이 대화를 보면 모임에 남은 인물들은 매우 도덕적일 것만 같다. 하지만 휴대폰 게임이 시작된 이후 모든 실상이 드러난다. 약하게는 뒷담과 이성과의 연락부터 심하게는 바람과 불륜까지. 그중에서는 세경처럼 곧바로 오해를 푸는 경우도 있고, 수현처럼 상황이 어그러지고 난 후에야 오해가 풀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결론은 다르지 않다. 이 사람은 결국 내가 아는 ‘내 사람’이 아닌, 다른 모습이 존재한다는 것. 어쩔 수 없는 ‘타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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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럼 이쯤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우리는 과연 나 스스로에게는 ‘타인’이 아닐지에 관해서. 영화 속에서 타인이 ‘타인’임을 알게 해주는 매개체는 휴대폰이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지만 휴대폰은 완벽하기에 너무 많은 정보를 알려준다고 말한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현대인들에게 스마트폰만큼 그 사람을 잘 알려주는 물건은 없을 테니까. 나는 휴대폰 검사를 하는 사람이 있지도 않고 바람과 불륜 같은 짓을 저지르지도 않지만(정확히는 솔로라 저지를 수도 없지만) 습관적으로 사용기록을 지우곤 한다. 지울 기록이라곤 인터넷 서핑 기록, 웹툰 감상 기록, 유튜브 시청기록 등 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적으면서 생각해보니 통화나 메시지, 카톡 기록은 지우지 않는다. 나에게 ‘비밀의 삶’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의 비밀은 아직 떳떳한가보다.

 

아무튼 나만 보는 휴대폰의 각종 기록을 지우는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의문스러운 일이다. 나는 왜 스스로 나에 대한 정보를 지우려 하는 걸까? 타인에 대해 깊이 들어갈수록 그 사람이 낯설어지고 결국 ‘완벽한’ 타인이 되는 것처럼 우리 스스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가끔씩 내가 낯선 순간이 있다. 마치 한 단어를 너무 오래 보고 있으면 그 단어가 낯설어지듯이 때로는 나 스스로가 어색해진다. 언제나 나를 알고 싶다고 말하지만 정작 마음 한편에는 나에 대한 환상을 남겨두고 싶은 것 같다. 나의 한계를 깨달아 스스로 우울의 늪에 빠져들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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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영화는 열린 결말로 마무리된다. 영화의 마지막은 게임을 하지 않은 것으로 끝나지만 이는 현실이 아닌 가정일 수도 있고, 반대로 게임을 한 것이 가정일 수도 있다. 감독 및 작가의 인터뷰는 일부러 보지 않았다. 만약 그들이 영화의 해석을 규정해준다면 그것에만 매몰되어 다른 방향을 보지 못하게 될까봐.

 

내가 말하고 싶은 결론은 이렇다. 너에게든, 나에게든 결국 우리는 ‘타인’의 관계를 유지할 때 편한 것은 아닐까 하는 것. 슬픈 말이다. 하지만 굳이 슬프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어찌 됐든 우리는 잘생긴 배우의 “내 사람이다”라는 한 마디에 빠져들고, “우리가 남이가”라고 외치며 친교를 과시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소중한 ‘내 사람’이라 할지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것, 우리는 이것을 의식하지 않고도 이미 알고 있고, 지키고 있다. 스스로에게도 선을 지키려 하는 게 사람인데, 하물며 타인이라고 오죽할까. 적당한 환상을 남겨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너무 깊이 알게 될수록 이제는 웹툰의 제목으로 더 유명해진 말처럼 ‘타인은 지옥’이 될 수도 있으니까.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타인과 내가 만나 ‘우리’가 되어 만들어가고 있다. 물론 영화 속의 바람과 불륜은 용서가 되지 않지만, 그 외 사소한 ‘비밀의 삶’ 정도는 서로 모른 체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지금, 우리가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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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진의 출처는 네이버 영화-스틸컷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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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혜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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