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웨스트엔드에서 ‘투이’로 서기까지···뮤지컬배우 '박영주'의 도전기 [사람]

뮤지컬배우 박영주와의 이메일 인터뷰
글 입력 2018.11.21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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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12일 자 뮤지컬 ‘미스사이공’의 캐스팅보드

박영주(투이), 김수하(킴), 전나영(지지)의 이름이 적혀 있다.

(사진=배우 박영주 제공)

 


지난 4월 12일, 3명의 한국 배우가 동시에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미스사이공’ 무대에 섰다. 뮤지컬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웨스트엔드는 미국 브로드웨이와 함께 공연계의 양대 산맥으로 유명하다. 2014년 뮤지컬배우 홍광호(36)가 한국인 최초로 웨스트엔드에 진출한 데 이어, 4년여만에 세 명의 한국 배우가 동시에 주요 배역으로 이 무대에 선 것이다. 특히 여자 주인공 ‘킴’의 정혼자로 극에 긴장감을 조성하는 베트남 장교 ‘투이’로 분한 배우 박영주(34)에게 이날은 더욱 특별했다. 약 1년의 기다림 끝에 맛본 ‘투이’로서의 최초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세컨드 커버일 때는 투이로 데뷔하지 못할 것 같아서 아예 포기했었어요.” 한 역할 당 여러 배우가 캐스팅되는 한국과 달리 웨스트엔드는 대개 커버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메인 배우가 공연할 수 없을 때 커버 배우가 대신하는 식이다. 애당초 박영주 배우는 투이 역의 세컨드 커버였다. 커버를 맡은 역으로 무대에 설 확률이 비교적 높은 퍼스트 커버와 달리 세컨드 커버는 메인 배우와 퍼스트 커버가 모두 무대에 설 수 없을 때만 기회를 얻는다. 때문에 무대에 설 가능성이 희박하다. 약 1년간 주 6일 8회를 앙상블(뮤지컬에서 여러 역할을 맡는 코러스 배우)로 무대에 오르던 그에게 기적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퍼스트 커버의 휴가 기간에 투이 역 메인 배우의 목 상태가 나빠져 투이로서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그는 “1년을 함께 고생해온 동료 배우들에게 박수를 받을 수 있어 행복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의 동반자, ‘도전’


 

‘박영주’란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비전공자 출신 배우가 웨스트엔드 무대에 선다”는 소식을 전하던 인터뷰 기사에서였다. 그의 독특한 이력과 웨스트엔드란 무대에 대한 호기심은 배우 자체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 뮤지컬 ‘미스 사이공’ 영국 투어의 끝자락에 와있는 그와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SNS메시지를 통해 인터뷰를 제안하자 흔쾌히 응해준 그는 15개가 넘는 질문공세에 하나하나 상세히 답해주었다.


부모님의 바람에 따라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박영주 배우는 막상 대학에 오자 대학공부에 대한 회의를 느꼈다. 휴학을 결정하고 가슴이 뛰는 일을 좇아 무대에 오르기 시작한 그는 2009년 데뷔 후 한국에서 뮤지컬 ‘모차르트’, ‘짝사랑’, ‘총각네 야채가게’ 등에 출연했다. 뮤지컬 ‘모차르트’ 출연으로 비엔나 뮤지컬에 관심이 있던 차에 롤모델인 배우 ‘드류 사리치’의 공연 소식을 듣고 신혼여행 겸 비엔나에 갔던 것이 배우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다. “공연이 끝나고 기다려 롤모델을 만나 30분 넘게 이야기를 나눴어요. 감격에 차 호텔로 돌아오던 길에 ‘비엔나 콘서바토리움’ 이라는 학교가 있어 (아내와) 둘이 장난식으로 “나 유학이나 와서 저기서 공부할까”하고 던졌던 말이 진짜가 되어버렸죠.” 돌아와서도 요동치는 그의 마음을 읽은 아내가 유학을 권했고, 다음 해인 2016년, 홀로 비엔나로 떠났다. “아내가 경제적인 부분도 도와줬어요. 한국에서 혼자 많이 힘들었을 텐데 너무 고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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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류 사리치(왼)와 박영주(오)

(사진=배우 박영주 제공)

 


“자기확신이 강한편이라 개인적으로 크게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다”는 그는 유학길에 오를 때 독일어권 나라에서 뮤지컬배우로 데뷔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언어와 인종의 벽은 높았다. 비엔나에서는 서류전형부터 떨어지기 일쑤였고 독일 함부르크까지 오가며 오디션을 보러 다녔지만, 성과가 없었다. 우연히 아시안 배우를 찾는다는 뮤지컬 ‘미스사이공’측의 공지를 보고 참여한 오디션이 그에게 기회가 되었다. 2016년 9월에 1차 오디션을 본 그는 다시 한국에 돌아온 2017년 3월에야 최종 합격 소식을 들었다. 그동안의 인고와 노력이 싹을 틔운 순간이었다.


투이 역의 세컨드 커버 겸 앙상블로 합격한 박영주 배우는 작년 5월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가 출연한 뮤지컬 ‘미스 사이공’은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미군 장교 ‘크리스’와 베트남 여인 ‘킴’의 비극적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오페라의 유령’, ‘캣츠’, ‘레미제라블’과 함께 세계 4대 뮤지컬로 손꼽힌다. 2016년에는 25주년 기념 프로덕션의 공연 실황이 한국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박영주는 보통 베트남 군인, 일본 관광객, 베트남 시민, 댄서 등 10개 정도의 역할을 연기한다. 주역들 뒤에서 쉴 새 없이 의상을 갈아입으며 무대를 꽉 채우는 일이다. 1차 계약에서 투이 역의 세컨드 커버였던 그는 다음 계약에서 같은 역의 퍼스트 커버를 따냈다. 퍼스트 커버가 되자 투이로서 무대에 서는 일도 많아졌다. 가장 최근인 지난 11월 1~2일 공연을 포함해 20차례 투이를 연기했다. 운도 따랐지만, 실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터다.


 


배우 박영주의 과거, 현재, 미래


 

세계적인 무대에서 자신의 역량을 펼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한국에서 그는 무명에 가까운 배우였다. 전공자도 아니었기에 뮤지컬에 대한 열정과 긍정의 힘으로 집요하게 파고드는 수밖에 없었다. 박영주 배우와 뮤지컬 ‘총각네 야채가게’에서 만나 동료이자 친구로 인연을 맺은 배우 조병준(34)은 그를 “뮤지컬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자기관리를 열심히 하는 배우”로 설명했다. “영주와는 공연기간 동안 같은 방을 쓰며 친해졌어요. 공연에 항상 진지하게 임하고, 본인이 하고자 하는 것에 무모하다 싶을 만큼 진취적으로 움직이는 친구였죠.” 조병준 배우는 “영주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긍정적인 편”이라며 “유학을 결정했을 때 걱정도 됐지만, 일단 목표를 정하면 몰두하는 스타일이라 잘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좋아하는 일 하나만 보고 달려온 만큼, 뮤지컬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은 곳곳에서 엿보인다. 그의 SNS는 영국에서의 공연과 일상에 대한 기록은 물론 좋아하는 배우의 공연 소식이나 보고 싶은 작품 관련 영상 등으로 빼곡하다. 일주일에 한번 있는 휴일에는 종종 다른 공연을 관람하고 꼼꼼히 후기를 적어 놓는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을 물어보니 ‘해리포터와 저주받은 아이’를 꼽았다. “무대에서 마법이 실제로 일어나는 기적을 봤다”며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이라는 그의 말에서 당시의 흥분이 엿보였다. 뮤지컬 배우이기에 앞서 열렬한 뮤지컬 팬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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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넘버를 부르고 있는 박영주 배우

(사진=유튜브 캡쳐)

 


박영주의 유튜브 계정에는 창작 뮤지컬부터 아직 한국에서 공연되지 않은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의 넘버(뮤지컬 곡)를 부른 영상이 수십 개 올라와 있다. 몇 년에 걸쳐 꾸준히 올린 영상에는 편한 옷을 입고 방에서 홀로 열창하는 그의 모습이 담겼다. 넘버는 이처럼 종종 녹화하며 연습하고, 평소엔 각종 방법으로 성실하게 작품을 준비한다. “운동과 발성 연습은 꾸준히 하고, 목관리를 위해 자기 전 반드시 목에 뭔가를 두르고 자요. 물도 자주 마십니다. 캐릭터를 연구할 땐 역할에 이입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편인데, 그러면 제가 맡은 캐릭터가 어떤 생각인지, 어떤 심정인지 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거든요.” 그렇게 구축한 캐릭터를 상대 배우의 피드백을 듣고 같이 토론하며 다듬는다. 박영주 배우만의 ‘투이’도 이렇게 만들어졌다.


‘투이’로서의 무대를 스무 번 안겨준 영국 투어는 11월 17일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됐다. 작년 7월부터 공연 기간만 1년 4개월가량 이어진 대장정이었다. 잠깐의 휴식 후 같은 달 28일부터 스위스에서 시작해 전세계를 도는 투어가 이어진다. 얼마 전 아기 아빠가 된 박영주 배우는 “7월12일에 아들이 태어나서 한국에 최대한 빨리 돌아가고 싶은데 내년 3월 독일 쾰른 공연까지 계약이 되어있어서 쉽지는 않을 것 같다”며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내비쳤다. 영국 투어 후 얻은 짧은 휴식 동안은 한국에 머무르며 그동안 쌓인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예정이다.


그는 “아들이 너무 보고싶어서 당분간 공연보다 육아에 전념하고 싶다”면서도 다른 나라에서도 뮤지컬을 해보고 싶다는 열정을 내비쳤다. “한국 밖에서 공연해서인지 다른 나라에서 도전을 계속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특히 일본에는 제가 좋아하는 디즈니 뮤지컬이 많아서 일본 뮤지컬에 도전해볼까 생각 중입니다.” 꼭 해보고 싶은 역할로 디즈니 버전 ‘노틀담의 꼽추’의 주인공 ‘콰지모도’를 꼽은 그는 “스텝과 동료, 관객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배우”를 목표로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즐겁게 걸어 나갈 계획이다.



[박찬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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