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순간이 모여 인생을 이루다, <보이후드> ['영화']

글 입력 2018.11.22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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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동안 촬영된 소년의 성장담, <보이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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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이후드(2014)>는 한 소년이 6세에서 18세가 되기까지의 성장기를 그린다. 스토리만으로는 전혀 특별해 보이지 않는 이 영화는 그 해의 골든 글로브상 작품상-극영화 부문, 크리틱스 초이스 영화상 작품상, 영국 아카데미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미국 아카데미상 작품상의 영광은 <버드맨>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당시 <보이후드>와 작품상을 놓고 끝까지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것은 분명하다. 한 소년의 성장담을 다룬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영화가 도대체 뭐가 그렇게 특별하기에 그 해 온갖 영화 시상식에서 화제를 모았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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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화제가 되었던 이유는 바로 영화의 촬영 방식에 있다. 이 영화는 2002년부터 2013년까지 12년 동안 장기 프로젝트로 촬영되었다. 출연진과 제작진은 12년 동안 매년 모여 15분 분량의 시퀀스를 하나씩 찍었다. 15분 분량의 한 시퀀스가 지나면 시간적 배경이 이듬해로 넘어가면서 다음 시퀀스가 전개되는 식이다. 따라서 165분의 러닝 타임 동안 총 11번이나 연도가 바뀌는데, 각 시퀀스 간의 연결 흐름이 매우 자연스러워 전혀 이질감이 없다. 이사를 가거나 차를 타고 이동하는 등의 행위로 장면을 전환하고, 적절한 음악을 사용해 그 간극을 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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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12년 동안 한 영화를 찍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이 영화가 처음 기획된 2002년에는 35mm 필름으로 촬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해가 지날수록 장비들이 디지털로 전환되면서 영화 초반에 사용되었던 촬영 장비를 구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한다. 같은 배우들을 데리고 12년 동안 촬영을 한다는 것 또한 큰 도전이었을 것이다.


실제 영화에서 메이슨의 누나 사만다를 연기한 로렐라이 링클레이터는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친딸인데, 후반부로 갈수록 본인의 촬영 분량을 줄여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감독 본인과 배우들의 건강 또한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도 결국 이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기에 영화의 완성도에 더욱 의의를 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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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운명 같은 사랑 이야기를 다룬 <비포> 시리즈(<비포 선라이즈(1995)>, <비포 선셋(2003)>, <비포 미드나잇(2012)>)의 감독으로 유명하다. <비포> 시리즈 역시 장기 프로젝트로, 9년을 주기로 새로운 시리즈가 개봉했다.


하지만 두 프로젝트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비포> 시리즈는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는 단 하루에 집중해 이야기를 자세히 풀어내는 반면, <보이후드>는 동등한 무게를 지닌 평범한 일상들을 나열한다. <비포> 시리즈가 낭만적이며 영화적인 사랑을 꿈꾸게 한다면, <보이후드>는 우리의 어린 시절 성장기를 추억하게 한다.

 



우리 모두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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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후드>는 촬영되었던 2002년부터 2013년까지의 시대적 사회적 공감을 자아낸다. 해리포터, 이라크 전쟁, 브리트니 스피어스, 스타워즈, 닌텐도 위, 버락 오바마 대선 운동, 트와일라잇, 페이스북, 레이디 가가 등 그 시대를 거쳐 간 수많은 문화콘텐츠들이 자연스럽게 영화 속에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는 tvn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와 영화 <건축학 개론>이 90년대의 문화콘텐츠를 재현함으로써 선풍적인 인기를 끈 바 있다. 하지만 <보이후드> 속 등장하는 콘텐츠들은 재현이 아닌, 바로 그 시대 속에서 촬영된 것들이 기록으로 남은 것이기에 더욱더 자연스럽고 사실적이며 뜻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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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사회적 공감뿐만 아니라 개인적 공감도 유발한다. 관객들은 미국에 사는 허구의 한 소년의 성장기를 지켜보면서 자신의 유년기를 마주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어린 시절 남매가 다투었던 기억, 머리카락을 잘못 잘라 학교에 가기 싫었던 기억, 부모님 다툼 소리에 잠 못 이루던 기억, 청소년기 대인관계를 고민했던 기억 등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보편적인 메이슨의 일상은 관객들에게 저 멀리 묻혀있던 추억을 상기시키며 깊은 몰입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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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사용된 음악 - Yellow부터 Hero까지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음악을 사랑하는 감독이기도 하다. 이미 <스쿨 오브 락>이라는 음악 영화를 연출하며 그 면모를 드러낸 바 있으며, <비포 선셋>에서는 제시와 셀린의 사랑의 매개체로 음악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 역시 각 장면에 쓰인 적절한 노래 배치를 통해 링클레이터의 음악에 대한 센스를 엿볼 수 있다.


먼저, 영화의 오프닝 장면에는 Coldplay의 Yellow가 흘러나온다. 노란색은 갓 태어난 병아리처럼 어린이를 상징하는 색이면서 동시에 밤하늘에 밝게 빛나는 별을 의미한다. 6살의 메이슨이 바라보고 있는 하늘을 배경으로 울려 퍼지는 이 음악은 앞으로 펼쳐질 메이슨의 창창한 미래를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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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ok at the stars

Look how they shine for you

And everything you do

Yeah, they were all yellow

 


메이슨이 18세가 되고 독립하여 대학으로 떠나는 순간에는 Family of the Year의 Hero가 흐른다. 이제는 엄마 품에서 벗어나 세상 밖으로 나가 부딪치고 싶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노랫말은 이 장면과 잘 어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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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me go

I don’t wanna be your hero

I don’t wanna be a big man

Just wanna fight with everyone else

 



우리 인생은 바로 이 순간으로부터


 

영화 속에 서사적으로 특별한 사건은 등장하지 않는다. 부모의 싸움, 첫사랑, 파티, 가족 모임, 캠핑, 여행, 야구장 관람, 졸업식 등 우리네 일상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스토리가 전개된다. 평범한 일상 조각들은 어느새 삶이라는 강물로 하나 되어 유유히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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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냥…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어.”

 


메이슨이 대학 갈 준비를 하자 엄마는 서운함과 동시에 밀려오는 인생에 대한 허무감에 울부짖으며 하소연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고 석사를 따서 교수가 되고 성인이 된 아이들을 모두 대학에 보내고 나서 겨우 앞을 보니 남은 건 자신의 장례식뿐이라는, 언제 봐도 뭉클하고 슬픈 대사다.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메이슨과 친구의 대사는 그런 의미에서의 링클레이터가 내린 결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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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이런 말을 하지.

이 순간을 붙잡으라고.

난 그 말을 거꾸로 해야 할 것 같아.

이 순간이 우릴 붙잡는 거지.”


“맞아. 시간은 영원한 거지.

순간이라는 건 늘 바로 지금을 말하는 거잖아.”

 


인간은 이 순간을 붙잡을 수 없다. 시간은 언제나 그렇듯 계속해서 흐르고 우리는 그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메이슨이 열다섯 살이 되는 생일날, 아빠는 메이슨에게 직접 만든 비틀즈 블랙 앨범을 선물한다. 바로 10여 년 동안 멤버들이 흩어져 발표한 솔로 곡들을 모은 앨범이다. 앨범 속에서 각각의 곡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어 결국 비틀즈라는 이름으로 완성된다. 영화는 비틀즈 멤버들의 솔로곡이 모여 비틀즈를 완성한 것처럼, 작은 일상들이 모여 우리의 삶을 이룬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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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분위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하다. 잔잔함 속에 문득 밀려오는 뭉클함은 마치 어린 시절 부모님이 필름카메라로 찍어준 앨범을 펼쳐보는 기분과 같다.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노랫말이 있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어린 시절을 추억하면 아련함과 동시에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불안감이 불쑥 든다. 메이슨의 엄마처럼 허무감이 밀려오기 전에, 우리는 이 순간을 붙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그리고 다름 아닌 바로 이 순간이 결국 우리의 인생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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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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