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삶’을 들려주는 아티스트들: 1 겨울을 닮은 인생, 쳇 베이커 [음악]

글 입력 2018.11.22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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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부쩍 음악에 대한 ‘이야기’들을, 혹은 이야기가 깃든 ‘음악’을 자주 접하고 있다. 물론 음악은 그 자체를 들으며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듣는 이에게 큰 위로와 감동을 준다. 하지만 그 이면에 깃든 아티스트들의 삶과 이야기를 알게 될 때 우리는 음악을 단순한 음정과 리듬, 가사의 아름다움으로 해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거대한 ‘세계’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사람이 온다는 건 그 사람의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라는 어느 작가의 말처럼, 음악도 마찬가지다. 음악이 우리에게 올 때, 그것은 반드시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거나 만든 이의 세계 하나를 가지고 온다. 그리고 한번도 살아보지 못한 그 세계에 가서 닿을 때 우리의 눈은 이전보다 넓어진다. 그리고 깊어지기도 한다.


어떤 이는 내내 우울과 불행의 둥근 고리에서 끝없이 맴돈 삶을 음악으로 녹여 내기도 했고, 또 다른 어떤 이는 개인적인 부와 영광을 뒤로 한 채 민중의 자유를 위해서 스스로를 기꺼이 내던지는 삶을 음악과 평생 함께하기도 했다. 지금까지의 내가, 그리고 대부분의 우리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삶을 노래하고 역사에 남은 사람들. 나는 이제부터 바로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출처 인디포스트.jpg
 



불행을 스스로 만들거나, 혹은 만들어진 불행에 빠지거나

- 우울을 위해 태어난, 쳇 베이커



쳇 베이커 일생의 일부분과 더불어 그의 음악적 서사를 그린 에단 호크 주연의 2016년 영화 ‘본 투 비 블루’는 사실 쳇 베이커의 진짜 모습을 굉장하리만치 미화한 작품이다.


사실 쳇은 지금까지도 ‘천사의 노래를 한 악마’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폭력과 마약, 여성 편력으로 줄곧 점철된 인생을 살았던 아티스트이다. 하지만 음악 인생에 있어서는 특유의 낭만적이고 우울한 트럼펫 음색과 나약함을 한껏 드러내는 보컬로 1950년대 웨스트 코스트 재즈를 대표하는 싱잉 트럼페터로 자리매김했고, 현재까지도 재즈의 전설적인 인물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영화가 아닌 ‘진짜’ 쳇 베이커의 삶을 되짚어보자면 이렇다. 1929년 태어나 가난과 아버지의 가정 폭력 속에 노출되어 불행한 유년 시절을 보내던 쳇은 변성기가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자신이 가진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게 되고, 이 때부터 독학으로 트럼펫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이윽고 성인이 된 후 군복무를 마친 쳇은 밴드 활동과 개인 교습 등을 병행하며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한다. 특히 1949년 마일드 데이비스의 ‘쿨의 탄생’을 들으며 쿨 재즈의 영역에 눈을 뜨게 되면서부터 그는 학업을 중단하며 잼 세션 활동에 본격적으로 몰입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시기는 쳇이 마약과 여성 편력에 빠지기 시작한 암흑기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꾸미기_tt출처 브런치.jpg
 


쳇이 재즈 신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52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재즈 아티스트 중 한명으로 평가받는 찰리 파커와 협연할 기회를 얻으면서 부터다.


좋은 연주력 외에도 당시의 청춘 스타 제임스 딘을 닮은 듯한 잘생긴 외모를 갖추고 있던 쳇은 순식간에 재즈계의 스타로 자리매김했고, 곧 1954년에 이르러서는 재즈 아티스트들에게 있어서 ‘꿈의 무대’인 버드랜드에 입성하기도 했다. 특히 이 시기에 발매된 앨범 ‘Chet Baker Sings’와 ‘Chet Baker Sings and Plays’가 연달아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1955년에는 처음으로 유럽 투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여성 편력과 마약으로 얼룩진 생활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기에 이른다. 짧은 결혼생활과 이혼은 반복되었고, 밴드 멤버들과 함께 마약에 빠져 번 돈은 모두 마약을 사는 데 탕진했다. 급기야는 마약 단속에 적발되어 체포와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고, 196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집단폭행을 당해 이가 빠져 다시는 연주를 할 수 없을 정도의 상태가 되기에 이르렀다. 실로 끝없는 몰락의 연속이었다.


한편 이처럼 쳇이 끊임없는 불행의 연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동안, 뉴욕의 재즈는 팝과 락 음악 장르의 흐름에 밀려 침체기를 맞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 의치를 해 넣고 5년 간의 피나는 노력을 한 쳇은 이윽고 재기에 성공했고, 이후 해외 투어를 계속하며 음악 인생의 말년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그의 마약 중독과 주변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등의 비행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이후 유럽 투어가 계속 중이던 198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호텔에서 쳇은 급작스럽고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의 죽음은 사망 원인을 알 수 없는 추락사로 그의 시신은 호텔 앞 거리에서 심한 상처를 입은 채로 발견되었다. 이때 쳇의 나이는 불과 59세였다.



출처 나무위키.jpg
 



쳇 베이커의 음악 세계



이러한 쳇 베이커의 불행하기도 하고, 혹은 문제적이기도 한 우울한 일생은 그의 음악을 통해 단적으로 잘 드러난다. 비록 재즈 신의 전설적인 음색으로 꼽힐 만한 트럼펫 연주와는 달리 그의 노래는 실력적인 측면으로만 볼 때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특유의 작고 나약한 자신의 목소리가 음울하고 낭만적인 트럼펫 음색에 잘 어울린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았던 탓일까. 쳇은 음악 인생에 있어서 끝까지 보컬리스트로서의 면모를 놓치지 않으며 싱잉 트럼페터로서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어 냈다.


쳇 베이커의 연주 스타일은 앞서 언급했던 1966년의 폭행 사고로 치아를 잃은 시기를 기점으로 하여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 이 시기 이전 그의 연주가 사람의 목소리로 치면 ‘미성’과도 같은 유약하고 낭만적인 음색을 보여주는 데에 집중했다면, 사고 이후 재기하던 시기부터 지속된 그의 연주는 매 순간마다 우러나는 깊이감이 인상적이다. 이러한 자신의 연주에 대하여 그는 ‘트럼펫의 부는 양을 의식적으로 조절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따뜻한 음색을 내보자는 생각을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이 과정을 통해 초창기와는 다른 또 하나의 음악세계를 구축해내게 되었고, 이를바탕으로 1977년 [Once Upon a Summertime], 1979년 [The Touch of Your Lips]와 같은 재즈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반들을 남기게 된다.




쳇 베이커의 대표 명곡들




1.

My Funny Valentine(1954)




2.

I Fall in Love Too Easilly(1956)




3.

Born to be Blue

(그랜트 그린의 미발표곡을 쳇 베이커가 리메이크한 곡)




4.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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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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