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공간과 음악 [음악]

바우터 하멜과의 기묘한 만남
글 입력 2018.11.23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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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내 핸드폰의 플레이리스트를 찾아보게 되었다. 이번에도 당시 듣던 노래들에 한창 싫증이 난 상태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 곳에는 내가 핸드폰을 산 2015년부터 현재까지 월별로 내가 자주 들었던 음악들이 보기 좋게 정리되어있다. 나는 이렇게 종종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들춰보곤 한다. 그러다가 옛날에즐겨 듣던 노래를 발견하면 오랜만에 꺼내 입은 옷 주머니 속에 들은 현금을 본 것 마냥 반갑기도 또 한편으론 그 노래를 듣던 과거의 나를 만나는 것 같아 즐겁기도 하다.

아마 누군가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본다면 '너는 진짜 아무 노래나 다 듣는구나'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만큼 내가 즐겨들은 노래에는 개인적인 '음악적 취향'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한창 통기타 동아리에 빠졌을 때는 인디밴드의 음악을, 한창 <쇼미 더 머니>가 주목을 받고 있을 때는 힙합 장르를 그리고 글을 쓰는 지금 다시 본 나의 플레이리스트에는 '퀸'의 노래로 가득 차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뭐든 금방 싫증 내는 내 성격 탓에 진득하게 한 아티스트 또는 장르를 듣는 건 나에게 무척 힘든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년 7월부터 현재까지 내 플레이 리스트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노래는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는 점은 참 신기한 일이다.

음악은 공간을 채워준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의 공간도 음악만 바꿔주면 전혀 다른 공간으로 느껴지고 그에 따라 나의 감정까지 변화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공간에 다시 방문하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 공간을 채워주었던 음악일 수 있다. 그리고 반대로 누군가에게는 좋아하는 공간에서 처음 만난 음악이 더 특별한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내가 '바우터 하멜'의 음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후자의 경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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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카페에서 시험공부나 과제를 할 때도 있지만 굳이 할 일이 없어도 그냥 그곳에 하릴없이 앉아있기도 하다. 하루의 많은 시간을 카페에서 보내다 보면 자주 가는 단골집이 생기기 마련이다. 집 근처에 있는 '카페 크로니' 역시 내가 자주 가는 카페 중 하나였다. 집 근처에 다른 카페들도 있지만 나무 목재로 인테리어가 되어있고 카페 곳곳에는 책들과 LP 판들이 꽂혀있고 그 아래로 턴테이블이 돌아가는 그 공간을 항상 찾는 걸 보면 그 카페에 상당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작년 7월에도 그 곳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 카페만의 컨셉(?)이라고 하면 '재즈음악'을 튼다는 것이었다. 재즈의 큰 관심이 없던 나에게 평소라면 그냥 흘려 들었겠지만 그날따라 한 노래가 신기하게도 계속 귀에서 맴돌았다. 영어로 된 가사여서 가사의 뜻도 제대로 몰랐으니 멜로디가 무척 듣기 편했던 것 같다. 잠시 하던 것을 멈추고 노래가 끝나기 전에 급하게 찾아본 그 노래는 네덜란드 가수인 바우터 하멜의 <Breezy>란 곡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곡은 내가 일년 넘게 듣고 있는 유일한 노래가 되었고 바우터 하멜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이 되었다.




신기하게도 이후로 그 카페에 다시 가게 될때는 다른 노래가 흘러나와도 항상 이어폰을 꽂고 하멜의 노래를 듣게된다. 그 공간 속에서 하멜의 노래를 들으면 처음 그 음악을 알게 되었을 때 느꼈던 반가움을 다시 느끼는 것 같아 항상 기분이 좋다. 또 내가 좋아하는 공간과 좋아하는 음악이 강하게 연결된 것만 같은 느낌은 하멜의 음악이 내게 주는 색다른 즐거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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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의 음악이 공간과 강하게 연결돼있다고 느낀 것은 올해 7월 바우터 하멜의 내한공연을 갔을 때였다. 이어폰을 통해서만 듣던 음악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은 꽤 높은 티켓 가격과 어려운 티켓팅에도 불구하고 나를 공연장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공연장에서 바우터 하멜의 목소리로 직접 들은 그의 노래들 특히 하멜을 처음 알게 해준 곡인 Breezy는 작은 카페에서 들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무척 억울하게도 공연장에서 들은 하멜의 노래보다는 작은 카페에서 들었던 하멜의 노래가 더 즐거웠다.(라이브가 별로였던 건 절대로 아니다!). 비싼 돈을 들여 간 공연장에서 들은 노래보다 커피 한잔 가격이면 들을 수 있는 똑같은 노래가 더 좋았으니 참 이상한 일이지만 그만큼 '하멜의 노래가 카페라는 공간과 강하게 연결되어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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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인 나에게 연말이 다가온다는 것은 시험기간과 밀린 약속들이 다가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유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요즘이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공간과 음악에 대해서 글을 쓰는 이 순간 다시 하멜의 노래를 들으며 카페에 한가하게 앉아있던 여유롭던 때의 나로 돌아간 거 같아 조금은 힘이 되는 것 같다. 그 카페가 아니지만 오늘만큼은 하멜의 노래로 가득 찬 하루를 보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현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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