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번 생에 발레는 처음이라 : 마린스키발레단 & 오케스트라 <돈키호테>

글 입력 2018.11.27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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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에 발레는 처음이라

'처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두려움과 설렘이 있다. "나 67살이 처음이야"라던 2013년 <꽃보다 누나>의 윤여정도,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는 듯한 아이유의 음악 행보도 모두 처음이라 가능한 일일 거다. 맞아 보지 않은 매일까 두렵고 먹어보지 못한 과실일까 설렌다. 나 역시 스물다섯은 처음이기에 그리고 2018년의 겨울 초입은 처음이기에 매일을 두렵고 설레하는 중인데, 그 와중에 순도 100%의 처음을 만났다. 지루할까 봐 두려웠고 재미있을 것 같아 설레었던 발레다.


Don Quixote by Valentin Baranovsky ⓒ State Academic Mariinsky Theatre (1).JPG
Don Quixote by Valentin Baranovsky
ⓒ State Academic Mariinsky Theatre


공연예술을 즐기는 사람이 발레 관람을 두려워한다는 건 어불성설이 아닌가. 게다가 고전 중의 고전 <돈키호테>인데? 하지만 같은 이야기라도 애호하는 방식은 다르기 마련이리니, 영화에 익숙한 사람이 연극을 보고 지루해하고, 소설을 읽는 사람이 드라마를 보며 납작하다고 느끼는 경우는 이 때문일 것이다. 소설은 소설만의 뮤지컬은 뮤지컬만의 영화는 영화만의 문법이 있는 것이며, 애호가들의 향유 양상도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공연예술이라고, 귀에 딱지 앉도록 들어온 <돈키호테>라도 장르가 발레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때 필요한 건 다른 프리즘이다. 이 공연이 발레로서 <돈키호테>를 어떻게 표현해냈는지, 발레만의 매력은 무엇이며 '브라보'란 연호를 이끌어낸 장면은 무엇인가 따져봐야 한다. 물론 발레라는 장르의 계보와 마린스키 발레단의 이전 행보를 좇으며 이번 <돈키호테> 공연의 좌표를 모색해보는 것도 좋을 테지만, 나는 발레의 초심자이며 초심자의 감상만큼 다른 초심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없을 테니 이 가벼운 글도 나름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눈으로 보세요, 마음으로 들으세요


아마 발레 공연을 곤혹스러워하는 사람 중 대다수는 '말이 없다'는 것에 당황하지 않았을까? 발레는 기본적으로 음성 언어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장르의 문법을 구축하는 게 아니라, 몸의 언어로 모든 걸 표현한다. 전개와 감정은 모두 음악과 몸짓으로 설명되는데, 이때 '돈키호테는 언제 나오는 거야', '그래서 저 두 사람이 어떻게 된다는 거야?'라는 식의 관성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만을 좇다 보면 고개는 까딱까딱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Philipp Stepin & Elena Yevseyeva in Don Quixote by Valentin Baranovsky ⓒ State Academic Mariinsky Theatre (2).jpg
Philipp Stepin & Elena Yevseyeva
in Don Quixote by Valentin Baranovsky
ⓒ State Academic Mariinsky Theatre


그래서 발레 감상에 더욱 필요한 건 바로 '눈'이다. 이때의 눈은 이야기를 읽어내는 눈이라기보단 몸짓을 감상할 줄 아는 눈이다. 빠르고 화려한 턴에서는 관객의 입에서 절로 탄사가 나오지만, 기술적으로 아름다운 부분 외의 작은 동작 하나하나도 이야기를 말하고 감정을 말하고 있다. 화려한 몸짓을 선보이는 중앙의 발레리나, 발레리노도 장관이지만 무대의 상수와 하수 가장자리에서 깨알 같은 몸짓, 표정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이들도 주목하면 발레의 이야기는 훨씬 더 풍성해진다.

이뿐인가. 다채로운 파스텔톤의 튜튜와 무대 전체를 꾸미는 환상적인 조명, 중간중간 들고나오는 붉은 천 등의 무용 도구는 발레가 율동 그 이상의 예술이라고 말을 건네는 듯하다. 또한 강렬하면서도 부드러운 오케스트라의 음악 소리 역시 귀를 즐겁게 만드니, 이때만큼은 음성 언어가 없어도 좋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들으면 그만이니.



시종일관 경쾌한 <돈키호테>, 다음에 또 만나요


우리 시대에 읽는 <돈키호테>는 어딘가 날카로우면서도 짠한 구석이 있지만, 이 공연 속 <돈키호테>는 시종일관 경쾌하고 화려하다. 익히 알고 있는 <지젤>, <백조의 호수> 등은 비극으로 점철되었지만 <돈키호테>는 희극으로 분위기를 구성해 가볍게 즐길 수 있도록 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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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 Quixote by Natasha Razina
ⓒ State Academic Mariinsky Theatre


우스꽝스러운 인물들과 계속해서 가슴에 손을 얹고 먼 곳을 바라보는 돈키호테의 모양새란. 사랑의 완성을 방해하는 갈등과 그 해결책으로 강구한 자살소동 역시 유쾌하고 즐겁게 이어진다. 이쯤 되면 혼란스럽던 발레 초심자 역시 '이래서 발레를 보는구나' 느낄 만하다. 1막의 혼란스러움과 낯섦이 2막, 3막을 거치며 유희로 변했다고나 할까. 특히 3막 바질과 키트리의 결혼식 장면에서 선보이는 고난도 2인 안무는 화려한 기교의 절정을 수놓는다. 무려 32회의 턴을 선보이며 절로 박수를 이끌어내는데 가히 장관이라 할 만하다.

결말은 또 어떠한가. 돈키호테와 산초는 떠나고 남녀의 사랑은 결실을 맺고, 졸던 관객도 '브라보', '브라바'를 연호하는, 그야말로 완벽한 해피엔딩이었다. 한 가지 아쉬움은 김기민의 공연을 보지 못했다는 점. 하지만 언젠간 또 만나볼 기회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좋은 처음은 언제나 다음을 기약하게 하는 법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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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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