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마한 에스파하니 하프시코드 in 금호아트홀

글 입력 2018.11.25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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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2일, 가을과 겨울 사이의 어느 날 밤, 마한 에스파하니의 하프시코드 연주를 감상하고 왔다. 에스파하니는 하프시코드에 대한 사람들의 무지와 몰이해를 극복하고 다른 현대악기들처럼 하프시코드를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여기는 사명을 갖고 연주한다고 한다. 인터넷의 한 인터뷰 기사를 보니, 하프시코드 연주자들을 하프시코드의 선교사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나도 이번 연주회에 대해 알기 전에는 하프시코드를 들어본 적도, 아는 정보도 없었는데, 이날 저녁 그가 펼친 선교는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첫 내한공연 리스트는 J.S.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었다. 피아노곡의 구약성서라고 칭송될만큼 유명한 곡이라고 하던데, 골든베르크 변주곡을 하프시코드의 음색으로 듣는 건 또 다른 귀중한 기회임에 분명했다. 바흐는 연주자인 에스파하니 개인에게도 특별한 작곡가로, 어린 시절부터 쭉 좋아해왔다는 의미가 있어 곡을 더 풍부하고 깊게 해석할거라 기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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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연주회장에서 마주한 하프시코드의 첫인상은 마치 나전칠기 가구같았다. 서양악기의 외관을 동양화 금박무늬로 장식하니 키워드 조합만으로는 굉장히 동떨어질 것 같으면서도 비주얼로 절묘하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두 줄의 건반이 위아래로 있는 것 같고, 건반이 까매서 손가락 조준하기가 쉽지않아보였다. 건반의 생김새는 연주가 끝나고 무대 앞에서 구경하면서야 보았는데 어떻게 이런 칙칙한 건반 위에서 마한 에스파하니씨는 빠르고 유연한 손놀림을 보여주었는지 신기했다. 연습을 많이 하면 위치쯤은 본능적으로 가늠하는 거 겠지?

어머니가 라인댄스에서 잦은 연습을 한 동작은 나중에 굳이 의식하지않아도 흐르는 음악과 함께 척척 몸이 동작을 기억한다던 증언이 떠올랐다. 마한 에스파하니씨도 숱한 연습을 통해 반의식상태로 연주를 해냈을 것이다. 그렇다해도 논습톱으로 저 많은 소곡을 소화해내다니 연주자들은 두뇌든 몸의 기억력이든 일반인보다 머리와 몸이 비상한 것 같다. 그가 보여준 제스쳐는 건반을 간지럽히는 마냥 가벼웠고 새우다리가 물 속에서 춤추는 것 같이 재빨랐다. 90분의 시간동안 어떻게 순서대로 건반을 착착 누르는지 피아노를 못 치는 나로서는 신기하기만 했다. 사뿐사뿐하면서도 때론 절도있는 걸음걸이의 손가락을 보고 나도 그가 연주하는 음에 맞춰 무릎 위에서 손가락을 대강 움직여보았는데 박자를 놓치고 영 어색하기만 했다.

90분 동안 한 악기만 연주하는 독주회는 지루할 거라는 예상을 할 수 있지만, 이날 공연은 연주자가 정적을 줬다가도 갑자기 달려들어 음을 뜯기도 하면서 굉장히 드라마틱해서 시간이 금방 갔다. 음악을 너무나 즐겁고 흥나게 연주하는 그의 모습은 비전공자인 나도 중학교 때까지 하던 첼로를 다시 꺼내서 연주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동기부여를 주기도 했다.

하프시코드의 소리는 정말 독특하다. 모든 악기들이 제각기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독특함은 고풍스러운 비주얼에 기대되는 이미지의 사운드가 아니라는 의외성에서 연유한다. 꼭 첨단 디지털 기기가 내는 비트음 같다. 혹은 피아노오르골의 돌기가 있는 실린더에서 나는 음색이 떠오르기도 했다. 여리고 또랑또랑하면서도 감미로운 분위기였다.

페달이 없어서 연주자 역량이 발휘되기 힘들다는 정보를 프리뷰에 언급했었는데, 마한 에스파하니씨의 표현력이 뛰어난 탓인지 하프시코드의 역량이 최대로 이끌어진 것 같아서 일반 피아노 연주보다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다. 대성당의 파이프오르간이 웅장하고 성스러운 느낌이면, 이 하프시코드는 소소하지만 성스러움이 깃들어있다는 점에서 작은 마을 성당에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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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 에스파하니씨는 다정하기도 하시지, 앵콜을 무려 3곡이나 하셨다! 앵콜곡들도 하나같이 좋아서 곡명이 무척 궁금했다. 앞에 앉은 팬들이 뭔가 말하며 요청을 한 것 같은데, 제대로는 알 수 없어 이날의 추억으로만 남은 게 아쉽다. 라몽이던가? 스와로브스키(?)같은 어감의 곡을 요청한 것 같다. 요청한다고 요청하는대로 판단해 받아들이시고 척척 악보도 없이 연주해내시는 마한 에스파하니씨를 보며 정말 프로같다고 느꼈다. 같이 간 일행의 말로는 앵콜곡들이 개성이 뚜렷해서 더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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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마지막 앵콜을 하기 전에 한 가지 이야기를 청중들에게 영어로 해주었다. 미숙한 청해력으로 해석하기로는, 자기는 이란 출신이고 옛날에는 한국사람들이 이란으로 노동자로 와서 일했는데 이제는 한국이 무척 발전하여 이란이 한국처럼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 같았다. 그저 바흐, 하프시코드, 독주회 이런 키워드가 아니라 마한 에스파하니라는 연주자 개인의 삶과 연관지어 선율을 곱씹어 볼 수 있어서 이날 연주회가 더 뜻깊게 느껴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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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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