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금호아트홀 바로크 Signature IV, <마한 에스파하니 Harpsichord>

글 입력 2018.11.25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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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금호아트홀의 기획공연 시리즈 중 하나인 바로크 Signature. 그 네번째 순서로 지난 22일 목요일에 마한 에스파하니가 처음으로 내한하여 무대를 꾸몄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꾸민 이번 무대는 하프시코디스트로서 그리고 바흐를 사랑하는 음악가로서 그의 자긍심을 한국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자리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아트인사이트의 초대가 매우 기꺼웠다.




<Program>

 

Johann Sebastian Bach Goldberg Variations, BWV988


Aria
Variation 1 a 1 Clavier
Variation 2 a 1 Clavier
Variation 3. Canone all'unisono a 1 Clavier
Variation 4 a 1 Clavier
Variation 5 a 1 ovvero 2 Clavier
Variation 6. Canone alla seconda a 1 Clavier
Variation 7 a 1 ovvero 2 Clavier
Variation 8 a 2 Clavier
Variation 9. Canone alla terza a 1 Clavier
Variation 10. Fughetta a 1 Clavier
Variation 11 a 2 Clavier
Variation 12. Canone alla quarta
Variation 13 a 2 Clavier
Variation 14 a 2 Clavier
Variation 15. Canone alla quinta
Variation 16. Ouverture a 1 Clavier
Variation 17 a 2 Clavier
Variation 18. Canone alla sesta a 1 Clavier
Variation 19 a 1 Clavier
Variation 20 a 2 Clavier
Variation 21. Canone alla settima
Variation 22. Alla breve a 1 Clavier
Variation 23 a 2 Clavier
Variation 24. Canone all'ottava a 1 Clavier
Variation 25 a 2 Clavier
Variation 26 a 2 Clavier
Variation 27. Canone alla nona
Variation 28 a 2 Clavier
Variation 29 a 1 ovvero 2 Clavier
Variation 30. Quodlibet a 1 Clavier
Aria da capo





마한 에스파하니의 연주에 대한 감상을 몇 가지로 나눠서 얘기해보자면 가장 먼저, 아리아에 대해서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아리아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작품이다. 사실은 아리아를 듣기 위해서 이 작품을 듣는 거니까. 아리아가 뼈대가 되어서 그 이후 30가지의 변주들이 나오는 것이니 말이다. 거기다 곡의 마무리까지도 수미상관으로 아리아로 끝나니, 아리아는 당연히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심장이다. 가장 중요하고 고결한 대목이다.


그런데 마한 에스파하니는, 익히 듣던 방식과 조금 다르게 아리아를 연주했다. 피에르 앙타이의 연주를 들어도, 글렌 굴드의 연주를 들어도, 아리아가 시작하자마자 세번째 음에서 꾸밈음이 붙는다. 그 옥구슬이 굴러가듯 영롱한 음이 시작되면 이제 시작이다 하는 마음과 동시에 설레는데, 마한 에스파하니는 그러지 않았다. 그저 꾸밈음 없이, 단음처리를 해버렸다. 그가 낸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에서도, 현장에서도 동일하게 단음처리를 했다. 공연에 앞서 그의 녹음을 들을 때 혹시나 했는데 현장에서도 그는 정말로 그렇게 했다.


아, 그게 어찌나 아쉽던지. 물론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바흐가 박자나 형식이나 여러모로 극악의 완성도를 이뤄놓은 곡이라지만 그게 작품을 직접 치지 않는 이상 다소 단순하게 들리는 면이 있다보니 아무래도 그런 음들에서 재미를 많이 느꼈는데 시작하자마자 그게 없으니 너무 어색하고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건 에스파하니가 받아들인 바흐니까 그것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초입부터 아쉬웠던 것은 사실이다.


*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마한 에스파하니의 테크닉은 대단했다. 이 대곡을 쉼없이 이끌어가는 그 능력은 확실히 그가 바흐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조금은 간접적으로 알게 해주는 것이었다. 그 순간의 타건과, 그 당시의 음 조절과, 그 찰나의 표현들을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다. 음원으로 듣는 것보다도 더욱 풍부한 그 표현은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뭐, 에스파하니도 사람인지라 연주 중에 미스가 좀 있기는 했다. 워낙 대곡이기도 하고, 감정이 확실하게 담긴 곡이 아니라지만 정말 아무 감정 없이 칠 수 있는 곡은 아닐 테니 그럴 만도 할 것 같았다.


마한 에스파하니는 연주하는 중간에 객석을 살펴보는 것 같았다. 본인의 연주에 객석이 함께 호흡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 같았다. 그가 원하는 게 같이 자리한 모두가 그와 함께 호흡하며 작품을 그려나가는 거였다면, 22일 금호아트홀의 객석은 충분히 그에 응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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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 에스파하니의 이번 첫 내한공연은 사실 골드베르크 연주곡도 좋았지만 앵콜이 거의 2부 프로그램이나 다름없었다.


커튼콜 박수가 이어지자 다시금 하프시코드 앞에 앉은 마한 에스파하니는, 관객석을 보며 무엇을 듣고 싶은지를 물었다. 객석의 반응에 응하여 그가 선곡한 첫번째 앵콜곡은 장필립 라모의 하프시코드를 위한 새로운 클라브생 작품집 중에서 선별한 곡들이었다. 와. 시작부터 끝까지 정말 속으로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골드베르크 변주곡보다 더 인상적인 연주였다. 라모의 작품을 모르고 듣는데 그가 그려나가는 이 작품이 얼마나 사람을 끌어당기던지 끝나자마자 객석에서 브라보가 나왔다. 정말 놀라운 연주였다.


어쩌면 첫 앵콜곡이 끝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또다시 커튼콜 끝에 마한 에스파하니는 하프시코드 앞에 자리잡았다. 그리고 나서 그는 이제 뭘 칠 수 있을까 라며 고민 아닌 고민을 객석에 토로했다. 자기가 지금 뭘 외우고 있는지를 알아야 칠 수 있다며, 지금 뭐가 생각나나 고민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그가 먼저였는지, 객석에서 먼저였는지는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데 스카를라티가 언급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에스파하니는 기억나는 스카를라티 작품이 있다며 그걸 연주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작품 이름을 말하지는 못하겠다며, naughty(외설적)하니 나중에 자기에게 따로 물어봐달라고 했다. 왜일까? 스카를라티의 건반악기를 위한 소나타던데, 이 작품에 별칭이 있는 걸까?


이 곡은 정말 스카를라티가 극악으로 만들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오른손이 계속 연주되는 동안 왼손이 오른손의 왼쪽 영역과 오른쪽 영역을 넘나들며 연주하는 게 반복되는데, 미스가 나는 게 이해가 될 정도였다. 이게 실수 없이 연주되면 그건 거의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아닐까? 엄청나게 휘몰아치는 이 연주를 들으니, 약간은 에스파하니가 안쓰럽기도 했다. 아니, 하필은 그 순간에 생각난 스카를라티 작품이 이거였담. 뭐 에스파하니는 힘들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객석은 아주 즐겁게 들은 작품이지 않나 싶다.


여기서 진짜 끝일 줄 알았는데, 에스파하니는 또 한 곡의 앵콜을 연주했다. 마지막 앵콜곡은 헨리 퍼셀의 하프시코드를 위한 그라운드 c단조 ZD.221이었다. 그런데 연주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지막 앵콜곡을 시작하기에 앞서 그가 남긴 말이었다.


마한 에스파하니는 이란의 수도인 테헤란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넘어가 자란 사람이다. 현재의 정확한 국적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본인의 뿌리가 이란이니 그는 스스로를 이란인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그가 꺼낸 얘기는 자신의 조부와 부친에 대한 것이었다. 그들은 비즈니스를 크게 하고 있어서 아주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었고, 에스파하니가 어리던 그 시절만 하더라도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사업에 일하러 오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한국인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시절을 기억하던 에스파하니가 이번에 처음으로 한국에서 공연을 하게 되니 그는 아주 감회가 남다르다고 했다. 가족사업에서 그렇게 외국인 노동자로 일하는 한국인들을 많이 봤었으니 한국의 발전이 그에게는 더 새삼스럽게 와닿지 않았을까.


그런 그는, 언젠가는 자신의 조국인 이란도 한국처럼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의 1/10만큼만 되더라도 자신은 너무 기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연주하는 마지막 앵콜곡은 그 염원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


마한 에스파하니의 연주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러나 그가 보인 모습은 더더욱 기대 이상이었다.


관객과 함께 음악회를 만들어 가고 싶어 하는 그 성실함과 본인의 개인 경험과 연주지인 한국을 바라보며 미래의 염원을 솔직하게 꺼내보이는 그 진솔함은 아마 당일 금호아트홀을 찾은 많은 관람객들에게 큰 울림이 되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마한 에스파하니는, 나로서는 정말 처음 접하는 중동계 음악인이었다.

내가 본 음악가는 전부 둘 중 하나였다. 북미나 유럽 계통의 백인이거나, 아니면 동북아 출신의 아시안이거나.

아프리카계도, 중동계도 본 적이 없었다.

새삼 이번에 마한 에스파하니를 목전에 두고 보니 그게 실감이 나는 것이다.



이후에는 그가 어떤 레퍼토리로 한국을 다시 찾을까?

더욱 흥미로운 레퍼토리를 가지고, 그가 다시금 한국의 객석과 함께 호흡하는 시간이 빠르게 오면 좋겠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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