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주 주관적인 '맨땅에 헤딩하기' 리뷰

글 입력 2018.11.25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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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스토리에 푹 빠지게 만드는 소설부터, 타인의 삶을 통해 교훈을 얻는 전기, 선조들의 과거를 엿볼 수 있는 역사책 등등. 이번에 읽게 된 '맨땅의 헤딩하기'는 복잡한 머릿속을 평온하게 잠재워주는 일종의 '힐링' 에세이처럼 느껴졌다.


책은 저자인 고금란 씨가 시골 생활을 하면 겪은 소소한 일상들이 작은 에피소드로 나누어져 있는데, 소설처럼 치밀하게 짜인 서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흥미를 끌 만한 중심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자꾸만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평범한 일상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행동과 말을 통해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되짚어보게 된다. 읽는 내내 나의 ‘지금’을, ‘앞으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무슨 일에나 그 누구에게

정성을 쏟는 일이 바로 '삶'이다."



삶이 고단하게 느껴질 때면 종종 머릿속으로 혼자 되뇌곤 하는 말이 있다. ‘인생 날로 먹고 싶다...’ 날로 먹는 인생이 어디 있겠냐만, 상상으로나마 그런 삶을 꿈꿔본다. 돈 벌려고 아등바등 살지 않고, 남 시선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을 때만 하면서 사는 그런 삶. 언뜻 그려보면 여유롭고 행복한 모습이다. 아무 걱정 없이 몸과 마음이 풍요로워질 것만 같다.


하지만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그것은 그저 허무한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뭔가를 노력해서 내 힘으로 이뤄냈을 때, 좋은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 좋아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할 수 있을 때, 힘들지만 보람 있는 일을 했을 때. 어떤 일이든, 어떤 사람에게든 시간과 정성을 쏟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는 일들이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데, 어쩌면 그냥 스쳤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에게는 소중한 인연이고, 이웃이 되었다. 살아가는 순간순간에 정성을 쏟고자 노력해 온 그의 삶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물론,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안 할 때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가 행복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한편으로 정성을 쏟아 바쁘게 달려온 날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생각에 다다르면 인생을 좀 더 알차게 채워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물론, 또 어느 날엔가 삶이 힘겹게 느껴질 때면 인생을 날로 먹고 싶어지는 순간이 오기도 하겠지만.



"세상에는 소리 내어

울 수 없는 이들이 많으니

자신은 그저 그들을 대신해서

울어주는 것뿐이라고요.


그것은 옳고 그름이나 이념을 떠나

생존에 관한 문제라고요."



근래 들어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은 어떻게 다를까. 그 차이를 인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내가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 하지만 요즘 들어 나는 꽤나 '이기적인' 사람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상대방을 배려한다고 했던 생각이나 행동들이 결국은 나 자신의 평온과 만족을 위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글쓴이가 재개발로 인해 살 곳을 잃은 사람들과 함께 싸워가는 모습을 보면서, '진심으로 타인을 위해 고민하고, 행동한 적이 있었나' 싶었다. 손에 꼽을 만큼은 되는 걸까. 그마저도 나 자신을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내게 집중된 에너지를 '소리 내어 울 수 없는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어졌다. 그 대상이 누가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진심을 담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에, 욕심부리지 않고 조금씩 마음을 나누어가고자 한다. 작심삼일이 되지 않도록, 이렇게 글로나마 결심을 남긴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조금 '빈 구석'이 있어야

다른 것이 담길 여지가 있는데,

나는 아직도 빈 곳을 채우려고

이렇게 안달을 부리고 있구나"



책에서 이 문구를 보았을 때, 마치 나에게 하는 말인 것처럼 가슴에 날아와 박혔다. 사실 꽤 오래된 일이지만, 늘 어딘가 허전하고, 부족한 것처럼 느껴왔기 때문이다. 좋은 성과를 이뤄도 기쁨은 잠시뿐, '자만하지 말자. 이번에 운이 좋았을 뿐이야. 온전히 내 실력이 아니야.'라고 생각하며 계속 무언가를 채워 나가려 애썼다. 자만하지 않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런 생각의 흐름은 자신감이 바닥을 치게 만드는 원인이 됐다.


어떤 일을 해도 '내가 틀린 것은 아닐까', '아직 많이 부족한 데..'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늘 말끝을 흐리게 됐다. 조금 틀리면 어때.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 넌 잘하고 있어. 이런 말들도 큰 위로가 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끝없이 불안하고, 초조했기 때문이다. 난 일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는 ‘완벽한’ 사람이고 싶었기에.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일은 손에 잡히지 않고, 우울해지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어졌다. 너무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채우려고 하다 보니 되려 채울 수가 없었다. 이 모든 게 나에게는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좌절감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것이 나의 큰 욕심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범해 보이지만 상상의 여백을 남겨 놓은 이도다완이 사람들을 매료시키듯, 반드시 화려하고 빈틈없이 꽉 채워져야만 좋은 것은 아니라는 걸. 일도, 인간관계도 잘 챙기는 사람이 반드시 좋은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은 아니라는 걸 말이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가치가 충분했다. 손에 쥔 것들을 덜어낼 수 있는 기회를 준 것만으로도.






맨땅에 헤딩하기

- 소설가 고금란의 세상사는 이야기 -

지은이 : 고금란

출판사 : 호밀밭

분야 : 에세이 / 쪽 수 : 256쪽

발행일 : 2018년 8월 19일

정가 : 13,800원

ISBN 978-89-98937-88-1 (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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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송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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