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I say 생 You say 리

연극 '생리에 관하여' 리뷰
글 입력 2018.11.26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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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생리


400번. 여성이 평생 겪는 생리(정식 명칭은 월경이지만, 연극제목에 맞춰 이어지는 글에서는 '생리'라고 하기로 한다.)의 평균 횟수라고 한다. 누구도 자신이 생리 중이라고 직접 말하지는 않지만, 여성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생리 중인 사람이 있다. 회사에서 생리통을 겪으며 일하는 여성, 처음 생리컵을 사용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성, 길에서 갑자기 생리가 터져 편의점에서 생리대를 산 여성... 한 동네에서 각자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생리 중인 여러 명의 여성을 보여주며 연극 <생리에 관하여>는 시작된다. 어쩌면 관객 중에도 생리 중인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 사이에서 연극의 주인공 격인 박민아는 초경을 맞는다.

연극은 민아를 통해 여성의 삶에서 생리가 어떤 존재인지 그려낸다. 30여년을 함께하는 동안 생리가 늘 같은 모습일 리는 없다. 초경을 시작으로 민아가 겪는 생리는 민아의 나이와 그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그려진다. 초경을 시작한 민아에게 생리는 축하받으면서도 쑥스러운 대상이고, 학생인 민아에게는 괴물의 형상으로 등장해 학교 생활을 방해하는 골칫거리다. 한편, 완경을 겪는 민아의 엄마에게 생리는 끝나니 홀가분하면서도 호르몬 변화를 일으켜 불편함을 주는 존재이다.


생리에관하여_공연사진4.JPG


연극은 일상적인 생리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민감한 문제도 다룬다. 성인이 되어 연애를 하는 민아의 생리가 그러하다. 연인과 성관계를 맺은 민아에게 생리는 조금만 늦어져도 태산같은 걱정이다. 임신중절이 불법이고 미혼모가 독립적으로 살아가기 힘든 사회에서 여성의 임신은 한 개인의 존재를 뒤흔들 정도로 큰일이지만, 민아의 연인은 이를 그저 유난으로 취급할 뿐이다. 그래서 초조해하던 민아가 임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어 법석을 떨며 환호성을 지르는 소리는 반복되면서 어쩐지 울음으로 들린다. 이처럼 연극은 생리라는 단편적인 현상만이 아니라 생리가 일어나는 여성의 몸까지 시선을 확장한다. 생리에 대한 이해 부족은 종종 여성의 몸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도 이어진다. 이때의 무지는 상대방에게 큰 폭력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연극은 두 사람의 상반된 모습을 통해 잘 보여준다.



생리를 말하라

 
생리에관하여_공연사진1.JPG
 

생리에 대한 무지, 더 나아가 여성의 몸에 대한 무지는 종종 관련된 이야기가 말하여지지 않기 때문에 비롯되곤 한다. 터놓고 생리를 이야기할 수 있었다면, 시험 문제로서의 '월경'이 아니라 여성이 직접 이야기하는 '생리'가 흔하다면, 민아의 남자친구는 그렇게 쉽게 민아의 고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었을까. 의학적으로는 '월경'이라는 단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에둘러 말하느라 생리라는 표현을 사용하다 보니 오히려 생리가 보편적인 단어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요즘은 생리라는 단어보다 월경이라는 단어가 둘러 말하는 단어처럼 들린다.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기 위해 생겨난 단어가 다시 말하기 거북한 게 되었다니, 생리에 대한 사람들 인식이 어떤지 잘 드러난다. <생리에 관하여>는 이 점을 의식하고 생리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관객이 적극적으로 생리를 말하는 걸 의도한다.

연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침없이 관객에게 생리를 들이민다. 초경을 한 민아가 관객에게 피 묻은 팬티를 보여주는 장면은 연극 의도를 잘 보여주는 연출이다. 생리대 광고에서 흔히 보는 파란 피가 아니라 빨간색의 피는 관객에게 놀라움과 불편함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고등학생인 민아와 민아의 친구는 거침없이 생리 이야기로 수다를 늘어놓는다. 관객 역시 짧게나마 자신의 생리를 이야기할 기회를 얻기도 하고, 'I say 생 You say 리' 라는 구호에 맞춰 직접 '생리'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도 한다. 1차원적일지라도 '생리를 말하자'는 취지에 어울리는 부분이다.



생리를 이해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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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할 수 있는 여러가지 이야기로 시선을 끌던 연극은 후반부에 들어서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한다. 이전까지 연극 속에서 생리가 속옷에 묻은 붉은 피, 민아를 괴롭히는 PMS(생리전증후군)라는 괴물의 모습, 연애 중인 민아의 걱정을 해소하며 공간 전체를 비추는 붉은 조명으로 표현되었다면, 연극 막바지의 생리는 파란 조명 속에서 빛나는 빨간 공으로 형상화된다. 어떤 대사도 없이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민아는 빨간 공과 함께 무용을 한다. 무용을 할 때 민아와 빨간 공은 서로가 서로에게 속한 것처럼 보인다.

참 이상하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만들어내고
기다리고 부수고 내보내고, 다시 만들어내고...

생리에 관한 여러가지 시선과 이야기를 나열하다가 마지막에 와서 펼쳐지는 이 아름다운 장면과 대사는 생리의 의미를 '나와 함께 살아가는 나의 일부'로 확장한다. 이 지점에에서 우리는 생리가 달마다 외부에서 찾아오는 괴물, 낯설고 불편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 있으므로 계속되는 당연하고도 신비로운 현상임을 새삼 깨닫는다. 금기시 될 필요 없이 '생물체의 생물학적 기능과 작용. 그 원리' 라는, 사전적 의미에 가장 가까운 '생리'이다. 왜곡이나 편견 없이 사회적으로 생리가 이렇게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포용되기 위해서는 여성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회구성원의 이해와 노력이 필요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제껏 민아를 이해하지 못했던 타자(남성)가 생리를 형상화한 빨간 공을 함께 드는 것은 이를 의미한다.

무언가를 이해하는 것은 소화하는 것과 비슷하다. 소화하기 위해서는 대상을 해체해야 한다. <생리에 관하여>는 6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생리를 해체해 보여준다. 깨끗하던 무대가 연극이 끝날 때는 빨간 공이 잔뜩 흩어져 난장판이 되어 있는 건 그 때문이다. 금기로 여겨지던 생리는 무대를 빌려 해체되었고, 그 결과물은 관객에게 흡수되었다. 생리를 하는 사람도, 하지 않는 사람도 생리를 이해하고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으리라 믿는다.





[.]A Period 생리에 관하여


장소: 예술공간 혜화

기간: 2018년 11월 21일(수)~11월 25일(일)

시간: 평일 8시/토3시,6시/일 3시

작/연출: 한혜민

출연: 이슬, 조성우

제작: 작은극장H

후원: 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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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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