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쇼팽의 선율로 꿈결속을 헤메이다 [공연]

맑은 마음으로 쇼팽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샤를 리샤르 아믈랭 리사이틀을 다녀오다
글 입력 2018.11.26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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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바람은 쌀쌀해지고, 공기는 차가워져 입에선 뿌연 입김이 나오는 계절이 돌아왔다. 겨울이 왔다. 옷을 따뜻이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예술의전당은 작년에 <무민 원화전>을 보러 방문한 이후 오랜만에 온 곳이었다. 그때는 10월 가을 무렵이었는데. 샤를 리샤르 아믈랭의 연주회를 보러 거의 1년 만에 이곳을 찾았다. 겨울의 문턱 앞에서 쇼팽의 음악은 더없이 잘 어울리리라 생각했다.

버스에서 내려 콘서트홀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사람으로 실내는 북적이고 있었다. 피아노 공연은 꽤나 오랜만이었고, 쇼팽의 곡으로만 이루어진 공연은 처음이었기에 마음은 설레왔다. 피아노를 배우고 좋아하게 된 이후 가장 좋아하게 된 음악가, 프레데리크 쇼팽. 예전부터 쇼팽의 곡을 즐겨 들었고, 특히 올 여름엔 쇼팽의 왈츠와 발라드, 녹턴을 자주 들었기에 그의 곡을 더 애정하게 되었다. 나만큼이나 쇼팽을 좋아하시는 어머니와 함께 공연장을 찾았다. 티켓과 함께 팸플릿을 수령했다. 떨리는 마음을 안고 콘서트홀로 입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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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녹턴 20번으로 시작되었다. 쇼팽의 유작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쇼팽의 청년 시절 작곡된 곡이다. 이 곡은 Lento con gran espressione, 즉 '풍부한 표정을 담아 느리게'라는 제목으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느리고 풍부하게. 샤를 리샤르 아믈랭은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건반을 눌러가며 연주를 이어나갔다. 깨질 듯한 물건을 다루는 것처럼. 그는 아름답게 노래했다. 고요한 호수 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어지는 발랄한 멜로디의 즉흥곡 1번. 귀에는 익숙한 곡이었지만 이 곡이 쇼팽의 곡이었단 건 얼마 전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풍부한 선율이 좋아서 계속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의 생기 넘치는 연주는 귀를 사로잡기 충분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즉흥곡 2번. 자장가처럼 조용히 노래하다 강렬한 왼손으로 힘차게 걸어가더니 다시 고요하게 속삭이는 노래였다. 그리고 즉흥곡 3번을 지나 4번째 즉흥곡, 우리에게 제일 친숙한 <환상 즉흥곡>이 시작되었다. 강렬한 첫 음이 떨어지자 관객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그에게 집중했다.

그의 손끝에서 연주되는 한음 한음은 공연장을 부드럽게 유영하며 찬란하게 빛났다. 이후 이어진 폴로네이즈는 그동안 들었던 어떤 연주보다도 인상 깊었다. 누구보다도 활기차고 힘 있는 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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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을 가진 뒤 이어진 연주. 약 40분 동안 4곡의 발라드가 연주되었다. 쇼팽이 남긴 4곡의 발라드는 그의 수많은 곡 중에서도 높은 완성도를 지닌 곡이며, 가장 드라마틱 한 곡으로 뽑힌다. 쇼팽의 발라드는 수많은 감정과 서사를 담고 있다. 그의 발라드는 한 편의 시를 읽는 것만 같다. 그는 자신의 발라드곡을 가장 아끼기도 했고, 2015년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1등을 거머쥔 조성진 또한 쇼팽의 발라드는 자신의 첫사랑이었다고 말했다. 쇼팽의 발라드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쇼팽이 작곡한 발라드 1, 2, 3번은 파리에 망명해 있던 폴란드의 시인 미츠키에비츠의 시에서 영감을 얻고 작곡되었다고 한다. 특히 발라드 1번은 쇼팽의 첫 발라드곡으로 26살 청년 시절에 작곡되었다. 폴란드 출생인 쇼팽 또한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하면서 늘 고국을 그리워했기에,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한 시인의 시를 읽고 깊은 감명을 얻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발라드곡에는 복합적인 감정과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모든 곡은 한 편의 드라마이다. 우수에 젖은 듯하면서도 슬프게 노래하고, 힘차게 달려가다가도 때로는 고요히 속삭이기도 한다. 쇼팽의 발라드는 우리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것만 같다.

영화 <피아니스트>에 삽입되었던 발라드 1번. 중학교 시절, 발라드 1번을 배우는 날 피아노 선생님은 영화에서 주인공이 그 곡을 연주하는 장면을 보여주셨다. 그때는 그저 음울한 분위기의 연주라고만 생각했었다. 그 곡을 배울 때도 역시 쇼팽 다운 곡이구나,하며 배워나갔고 까다로운 곡이었기에 연습하는 데에도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영화 <피아니스트>를 보게 되었고, 나는 그제야 그 곡이 지닌 진정한 아름다움과 감동을 느꼈다. 여리면서 강인하고, 서정적인 멜로디는 영화의 우울하고 슬픈 분위기와 너무도 잘 어우러졌다. 눈물 나게 아름다운 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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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해지는 첫 음이 울리면서, 발라드 1번이 시작되었다. 영화의 회색빛 장면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감상하게 되었다. 세차게 몰아치는 코다 구간을 지나 곡이 마무리되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는 천사의 속삭임처럼 부드러운 선율의 발라드 2번이 시작되었다. 그는 뛰어난 완급 조절과 자신만의 해석으로 곡을 이끌어나갔다. 꿈결처럼 달콤하다가도, 힘찬 터치로 관객을 압도하기도 했다. 공연은 후반부로 치달을수록 더 무르익었으며 그의 연주는 발라드 4번에서 정점을 찍었다.

쇼팽의 발라드 4번. 사실 자주 들었던 곡은 아니었다. 발라드 1번과 2번을 자주 들으며 좋아했을 뿐, 3번과 4번은 흘려듣거나 지나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의 연주를 통해 나는 이 곡의 진가를 깨닫게 되었다. 내가 이제껏 들어왔던 모든 쇼팽 곡의 연주 중 가장 아름답다고 느꼈을 만큼 말이다. 앞서 연주된 발라드를 뛰어넘을 만큼, 발라드 4번은 완전한 걸작이었다. 모든 발라드곡 중 가장 정점에 위치하였다고 평가받는 발라드 4번은 쇼팽의 후반기에 작곡된 곡으로, 그가 과거 사용하지 않던 새로운 기법을 도입하고 다양한 시도를 했던 곡이다. 어느 발라드보다 많은 이야기가 녹아들어 있다. 즉 이 곡은 쇼팽의 자전적 이야기와 다름없다. 그 어떤 곡보다도 강렬하고, 아름답다. 아름답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끌어안으며 힘찬 박수로 그에게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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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의 열렬한 환호와 박수가 끊이지 않자, 그는 2개의 앵콜곡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선율, 차분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곡이 시작되자마자 혹시 바흐 곡이려나, 하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정말 바흐의 콘체르토 5번이었다. 이어지는 두 번째 곡. 쇼팽을 닮은 듯한 부드러운 멜로디는 바로 슈만의 아라베스크였다.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이었다. 앵콜곡이 이렇게 좋아도 되는 걸까. 마음을 울리는 꿈결 같은 연주였다.

연주회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 로비에서는 그의 사인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줄이 길었기에 비록 사인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의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부드럽고 선한 인상에, 그의 눈은 너무도 밝게 빛나고 있었다. 저렇게 맑은 눈과 마음에서 이런 아름다운 연주가 나올 수 있는 거구나.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그의 연주가 그리워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추웠지만 마음만은 어느 때보다도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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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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