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에 대한 통찰이 담긴 <맨땅에 헤딩하기> [도서]

글 입력 2018.11.26 01:0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 REVIEW ***
<맨땅에 헤딩하기>


14.jpg
 

‘삶은 정답이 없는 각자의 여정이다.

어차피 태어나는 자체가 맨땅에 헤딩이고

보장된 것이 하나도 없는 길을 가는 일이다.


나는 고민이 짧고 일부터 저지르고 드는 기질이라

현실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몫이 많았던 것 같다.

좋게 해석하면 가슴의 소리에 따랐다는 말이고

계산 없이 즉흥적으로 살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도... 용케 여기까지 왔다.

오늘은 굳은살 박인 이마를 쓰다듬고

낡아가는 몸도 한번 안아주자.’


- <책을 내면서> 中




삶에 대한 통찰



책을 읽기 전, <맨땅에 헤딩하기>는 작가의 농촌 생활을 담은 귀농일지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책은 귀농을 하며 느낀 삶에 대한 통찰들과 주위를 바라보는 섬세한 시선이 담겨있는 따스한 책이었다. 그 중에서도 먼저 눈에 들어온 점은 작가가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자연은 한 번 파괴되면 복원하기 어렵다는 것과 생명체는 기게를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해 쓰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온갖 실랑이 끝에 결국 우물은 없애더라도 물줄기를 아래로 빼서 살리는 방향으로 시도해보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었습니다.'

- 45p


농촌 집에서 우물과 물탱크를 사용하던 작가는 철거 사업에 격렬하게 저항했고 다행히 집 뒷산의 소나무들과 도로에 심어져 있던 여러 나무들을 살리게 될 수 있었다. 나라면 내가 편하게 살 방법을 먼저 생각했을 것 같은데 자연을 먼저 생각하는 작가의 태도가 인상깊었다. 뒷부분에 이어지는 우물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우물에 대해 '옛날에 사용하던 것'이라고 여겼던 나의 생각을 변화시켜주었다. 우물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꼭 있었던 근원과도 같은 것이었고, 계속 퍼 쓰지 않으면 썩거나 말라버려 끊임없이 순환해야함을 일깨워주는 고마운 존재였던 것이다.

고통다루기 부분에서는 작가의 연륜이 느껴졌다. 고통에서 시작하는 마인드는 우리를 죄책감에 빠지거나 후회를 떠올리고, 두려움에 시달리게 하곤 한다. 작가는 마인드의 본질에 대한 고찰을 시작하며 인내의 필요성을 다뤄갔다.


'마인드와 잘 지내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마인드는 대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지껄일 뿐입니다. 귀찮고 불편해도 잘만 다루면 도움 되는 것도 아주 많습니다. 성의를 가지고 대접해 주면 조금 있다가 바로 자기가 갈 길로 갑니다. 마인드를 다정한 친구처럼 대하십시오. 짜증을 내거나 저항하면 질투나 미움, 분노와 짜증 등등 이상한 친구들을 몽땅 데리고 와서 오래 머뭅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상대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인드를 주시하는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저항이 고통입니다.'

- 85p


요새 복잡한 내 내면 때문일까. 책을 읽으며 이 구절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처음 읽을 때는 '무조건 참아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계속 곱씹으며 읽다보니 외부 요인을 탓하기보다는 내 감정을 평안한 상태로 유지하는게 나에게 더 평화를 가져다주고, 그 과정이 인내라는 생각이 든다. 원하든 원치 않는 것이든 내가 항상 평안한 상태이면 그 또한 행복이지 않을까?


간지4.jpg
 



소중한 인연



'세월을 두고 겁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것은 천지가 개벽을 시작한 때부터 다음번 개벽할 때까지의 기간을 말합니다. 연기설을 중히 여기는 불교에서는 오백 겁의 전생 인연이 있어야 이생에서 옷깃이 한번 스치는 인연으로 만난다고 하니 결국 헬 수 없이 기나긴 시간의 은유적 표현이라 보면 되겠지요. (중략) 결국 이런 표현은 지금 이 순간 내가 처해있는 상황과 내 앞에 있는 사람을 귀하고 중요하게 여기라는 말이라 여겨졌습니다.'


- 218~219P


내 주위의 사람을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 머리로는 잘 알고 있지만 행동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것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작가는 주변의 인연들과 소중한 관계를 이어가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난 인연들과도 꾸준히 소중한 관계를 이어가는 것 같았다.

잃어버린 휴대폰을 주워준 것으로 만난 능산반점과는 맛있는 짜장면과 반찬거리를 주고받는 정다운 이웃이 되었고, 중학생이었던 딸의 친구엄마로 맺어진 미화엄마의 두미도를 오가면서 친구엄마를 넘어 인생의 동반자와도 같은 관계를 이어간다. 어쩌면 한 번의 일시적인 만남으로 여겼을 수도 있을법한 인연들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소중하게 만남을 이어가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하지만 만남도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이다. 아끼는 동생이었던 미혜, 그림으로 만나게 된 박병제 화가와의 이별을 그린 이야기에서는 마음이 먹먹해졌다.
 
다양한 사람과의 에피소드를 담은 -사람, 사람들- 장을 보면서 나는 누구에게 이렇게 기억될 수 있을까? 아니면 나는 누군가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담아낸 따스한 시선들처럼 주위사람들을 좀 더 기억하고 스쳐간 인연들도 소중히 여기려 노력해야지.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책의 가장 마지막 이야기는 풍류를 다루고 있다. 논다는 말의 기원부터 시작한 이야기는 잘 놀자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작가는 사람을 좋아하고 그것을 자신의 노는 방식으로 삼았다.


'삶을 살아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합니다. 인생의 비극은 우리가 너무 일찍 늙어버리고 너무 늦게 철이 드는 데 있다고요. 하지만 늦게라도 이런 원리를 알았으니 그게 어디냐고, 지금부터는 여한 없이 놀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집니다.'


- 256p


책장을 덮으며 어떻게 해야 잘 놀 수 있을지 고민해보았다. 이 책의 작가처럼 일을 벌이면 따라오는 고단함과 노동도 놀이로 여길 수 있는 일이 나에게는 뭐가 있을까? 아직 확실하게 정답을 내리진 못했지만 2018년의 끝이 보이는 지금, <맨땅에 헤딩하기> 덕분에 '잘 놀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좀 더 신중하게 고민하게 될 것 같다.

   

[정선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