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현실의 속도에 맞춰가지 않아도 괜찮아, <맨땅에 헤딩하기>

글 입력 2018.11.27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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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동생이 이런 말을 꺼냈었다.


"누나, 이제껏 내가 말 안 꺼낸 게 있는데. 사실 부모님께서 몇 달 전부터 누나 좀 말려보라고, 저렇게 그냥 내버려둘거냐고 그런 말씀을 자주 꺼내더라. 근데 나는 제발 누나 좀 내버려두라 그랬어. 내가 보기엔 누나 잘 하고 있는데, 왜 자꾸 못 믿냐고 그랬거든. 요새 누나 같이 본인이 하고자 하는 것에 열심히 하는 사람이 어딨어. 다들 말만 하기 바쁘지. 나는 지금이 가장 누나가 행복해보여."라고.

그 순간 나는 동생이 고마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울컥했다. 덤덤한 척 표정을 지었지만, 이미 눈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음 속으로 '그랬구나, 부모님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셨구나. 요즘 들어 대화의 빈도 수가 줄어든 이유가 이거였구나.'하고 여러 가지의 생각들이 교차되었다. 어떻게 보면 부모님은 스물 여섯이라는 나이에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며 평범하게 살기를 바랐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열심히' 스펙 쌓고, '열심히' 학력 채우고, '열심히' 회사에 충성한 결과, 나의 인생에 행복은 없었다. '눈칫밥'은 기본이며, '적은 월급'에 '적은 휴무'는 세트였고, 사회초년생에게 '가르침'이란 굉장히 냉정했다. 배움의 장과 기회 조차 내주지 않으니, 나는 점점 우울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


존경하는 누군가가 그랬다.


"꿈을 이루고 싶으면 부모님의 말씀은 반대로 들으시고, 자신을 믿으세요! 서른 이전에는 뭘 이루는 시기가 아니라 뭘 배워야 하는 시기예요. 그러니 지금이라도 뭐든 많이 배워 놓으세요." 라고.


나는 성장하면서 늘 부모님의 입맛에 맞춰 자라오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실행해내고야 마는 게 내 기질에 속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든 간에, 이젠 내 길을 가고야 말겠다는 마인드가 커진 것 같다. 안정적인 길이 아닌, 누군가도 개척하지 못한 길을 혼자 하염없이 걸어 간다는 게 고된 일이지만. 꾸준히 걸어가다보면 언젠가 빛이 닿을 날이 오지 않을까.

이 책에서 나온 '마인드'에 관한 문장처럼 "미래는 알 수 없기에 불안하고 그 불안이 불필요한 심리적 활동을 일으키는" 듯하다. 결국은 남의 언어가 아닌, '자신의 언어'에 경청하고 직진하다 보면 길은 어디라도 열리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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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 호밀밭

지은이 : 고금란

분야 : 산문집

면수 : 256쪽

가격 : 13,800원

출간일 : 2018년 8월 19일






'인상 깊었던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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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입양과 기부 천사로 알려진 영화배우 차인표 씨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어렸을 때 반지하 창고에서 놀다가 창문에 머리가 끼어서 꼼짝할 수 없었던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깜깜한 지하실 안에서 목이 막혀 죽을 지경에 놓여있는데 옆에 있던 형이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고 울음소리를 들은 동네 사람들이 달려와서 구출해 주었습니다. 그는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이 그러하다고 했습니다. 세상에는 소리 내어 울 수 없는 이들이 많으니 자신은 그저 그들을 대신해서 울어주는 것뿐이라고요, 그것은 옳고 그름이나 이념을 떠나 생존에 관한 문제라고요, 놀이터 귀퉁이에 서 있는데 가슴속에서 자꾸만 뭉클뭉클 움직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울어라, 그들 대신 울어주어라." (p15)



며칠 전 구미에 있는 어느 원룸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아버지와 어린 아들의 주검이 두 달 만에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주택구조가 달라지면서 이웃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를 사람끼리 주고받는 것보다 텔레비전이나 휴대폰으로 전해듣는 시대입니다. 그들 부자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는, 하지 못했던 우리는 소통 부재의 건축물에 대해서 한 번쯤 이의를 제기할 정신마저 놓아버린 것은 아닐까요.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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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는 자신이 환영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언젠가는 사라지는 존재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려움의 본질은 죽음입니다. 어떤 종이든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증식하려 드는데 신체적 두려움을 느끼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미래는 알 수 없기에 불안하고 그 불안이 불필요한 심리적 활동을 일으킵니다. 마인드의 원래 기능은 외부의 실질적인 일들을 처리하도록 고안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 삶에 개입하면서부터 문제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마인드의 활동을 통제하려 드는 것은 마인드가 벌이는 또 다른 작용뿐입니다. 간섭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그가 무슨 짓을 하든지 가만히 바라보는 것인데 마인드는 주시할 때 힘을 잃고 고요해집니다. (p81)



"잘 크거래이, 잘 크거래이..."

모종을 다 심고 나면 두 손을 모아 하늘을 향해 절을 올리던 외숙모님을 따라 장난스럽게 나도 손을 모으면 귓속말을 해 주셨습니다.

"야야, 농사를 사람이 짓는 것 같제? 그기 아인기라,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우리 입에 들어갈 거 하나도 없는 기라."

이제 그런 비밀을 말해주는 사람들은 곁에 없지만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씨앗을 뿌리고 거름을 주더라도 저 투명한 햇살과 적당한 바람과 때맞추어 내리는 비가 없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라는 것을요, 그것이 바로 신이 인간에게 주는 은총이고 사랑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우주가 우리를 얼마나 잘 보살피고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요. (p114-p115)



지금은 집밥을 선호하는 시대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자기 집에서만 먹을 수 있었던 장맛에 대한 그리움의 또 다른 표현인지 모릅니다. 주거 문화가 바뀌면서 식생활이 달라지고 있지만 그래도 한국 사람들은 간장과 된장이 빠지면 허전합니다.

정년을 조금 앞두고 지방으로 전근을 간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기숙사 식당 반찬이 아주 잘 나오고 밥도 많이 먹는데 왜 이렇게 늘 배가 고픈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어요. 나이 탓이 아니겠느냐고, 그럴 때는 찹쌀 새알을 넣은 미역장국으로 빈속을 메워야한다고 했지만 결론적으로 집 간장이 없으니 그 맛이 나오겠느냐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알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허기지면 아무리 먹어도 배가 고프다는 것을요. 한때 사람들이 입에 오르내리던 샥스핀에 송로버섯도 연달아서 내놓으면 물릴 것이 분명한데 김치나 된장과 고추장은 때마다 먹어도 질리지 않으니 우리 몸이 그 음식들로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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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이 끝났구나, 그동안 욕봤다, 잘 가라, 김미혜..."

우리는 역할이라는 단어를 무척 즐겼습니다.

"하필이면 왜 이렇게 아픈 역할을 맡았는지...그러나 악역도 잘하면 아카데미상을 주던데 혹시 압니까? 잘 아팠다꼬 하느님이 상이라도 주실지..."

"그러게...다음 생에는 우리 좀 괜찮은 역할을 달라고 하자."

"다음 생을 들먹이는 것이 가장 쉬운 회피 방법이라던대요."

깔깔대고 웃던 그녀였습니다. 나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 그녀가 홀로 겪었을 두려움과 외로움보다 버튼을 누르면 공처럼 튀어나오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아득해서 오랫동안 울었습니다. (p156)



미혜는 별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하늘을 보면 무한하게 펼쳐져있는 우주 공간이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그 공간을 유영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고 있었습니다. 미혜는 아는 것이 많았지만 알고 싶은 것도 참 많았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알려지지 않는 것은 내일이라도 알 수 있겠지만 알 수 없는 것은 영원히 알 수 없으니까 굳이 알려고 하지 말라고...그러면서도 알 수 없는 세계에 존재하고 있을 신령한 에너지를 상상하고 공유했습니다. 이제 미혜는 알 수 없는 그 공간 속으로 돌아갔습니다. 나는 가끔 그녀가 보고 싶습니다. 함께 차를 마시며 너 먼저 나 먼저 수다를 떨고 싶습니다. 자랑거리가 생겼을 때, 마음에 확 드는 사람을 보았거나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미운 사람이 있을 때, 축하받을 일이 있거나 억울하고 답답한 일이 생겼을 때, 외롭고 쓸쓸해서 죽어버리고 싶을 때, 그때마다 나는 미혜가 그리웠고 또 그립습니다. (p158)



미혜는 자기 행로를 따라 간 별이었습니다.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가는 수많은 별 중에서 독특한 푸른빛을 발하다가 가뭇없이 사라져 버린 별이었습니다. (p159)



그들 부부는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휴대폰을 돌려주었겠지만 금돼지를 발견하는 순간 잠시 갈등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유혹을 떨쳐내고 돌려준 것은 그들이 평소에도 남의 것을 탐하지 않는 마음으로 살아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달랑 물건만 가져오고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았다면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을 때 어떠했을까요. 그리고 열 번쯤 그런 경험을 계속한 뒤에도 남의 물건을 바로 돌려줄 수 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어떤 식으로든 그들에게 대가를 지불할 책임과 의무가 있었던 것입니다. 어쨌거나 그들 부부처럼 본성에서 들리는 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행동과 바로 연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간다면 세상은 훨씬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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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고유한 이름이 있습니다. 이름이 없다고 존재가 무시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름으로 각각의 역할이 구분되어지니 현실 세계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름이 '이르다'라는 어원에서 나왔다니 자식의 이름에는 사회에서 훌륭한 자리에 가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소망이 담겨있는 셈입니다. 그런 뜻에서 보면 인간의 일생은 이름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펼치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 이름에는 부모님의 희망이 담겨 있을 뿐 정작 나의 바람이 포함될 여지가 없었으니 스스로 별칭을 지어 자신에게 선물해 보는 것도 괜찮은 일일 것입니다. 나는 이름 때문에 덕을 많이 보는 사람입니다. 어느 해 신년 인사로 한 선배가 덕담을 담은 메일을 보내주셨습니다.

"공자께서 이르기를 착한 사람과 사귀는 것은 마치 난초와 지초를 가꾸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아 오래 있으면 그 향기를 맡지 못해도 그것과 동화된다"

라는 해석까지 달아서요. (p210-p211)


"나이가 좀 더 들면 도시 생활 정리하고 시골로 오자, 현실은 너무 불편하니까 큰형님 계시는 태기 마을에 기와집 한 채 짓자, 약초도 심고 채소도 키우면서 천년만년 살아보자, 우리가 노후를 그렇게 보내려고 열심히 일했다 아이가, 당신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말고 그냥 글만 쓰면 된다. 내가 뒷바라지 다 할 테니까 알았지요? 고 여사..." (p226)



지금은 혼자 사는 것이 익숙해진 시대입니다. 자의건 타의건 혼자 있는 시간은 필요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행복이란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루고 그들을 내 삶에 초대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는 누군가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삶을 살아본 사람들은 한결 같이 말합니다. 인생의 비극은 우리가 너무 일찍 늙어버리고 너무 늦게 철이 드는 데 있다고요. 하지만 늦게라도 이런 원리를 알았으니 그게 어디냐고, 지금부터는 여한 없이 놀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집니다.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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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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