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떻게 타인이 되고 그러면서 서로를 이해하는지 [공연]

글 입력 2018.11.28 00:5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KakaoTalk_20181127_225037591.jpg


최근에 네이버 웹툰 ‘킬더킹’을 다시 보다가 인상 깊은 대사를 접했다.




“너와 내가 타인이라는 건 무슨 뜻일까?

무엇을 기준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일까?"



단순히 ‘태어났다’는 사실 만으로 모두가 인격체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타인과 다른 별개의 존재임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내게 오직 나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특성이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 특성이란 어떤 것들이 될 수 있으며, 또 어떤 지점에서 발생하는 것일까?


단순히 고유성에만 주목한다면 외형적 특징이나 성격 따위도 개별 인격체의 특질로 판단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쌍둥이나 닮은꼴처럼 세상에는 외형적으로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로 유사한 사람이 많고, 혈액형처럼 성격과는 별 인과성이 없어 보이는 요인으로도 쉽게 사람들의 성격을 유형 별로 분류하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과 나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란 오직 인격체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되, 개인 그 자신을 명확히 정의 내려 설명할 수 있게 만드는 독특한 어떤 것이 되어야 함이 틀림 없다. 그리고 ‘킬더킹’의 등장인물인 유루유라는 그것을 사고 패턴이라 정의한다.



KakaoTalk_20181127_225036976.jpg



사고 패턴이란 개인이 주어진 상황 속에서 스스로 판단하기에 가장 적절한 결론을 내리고 그에 따른 행위를 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모두가 보편적으로 겪게 되는 일상적인 상황 속에서도 각자가 사고하고 행동하는 과정은 모두 다르며 그렇기 때문에 유사해 보이는 상황임에도 그 주체에 따라 진행되는 패턴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사고 패턴의 차이가 개인에게 주어지는 선천적 삶의 환경 때문에 발생하게 된다고 여긴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일 지 모른다. 하지만 같은 환경 속에서도 다르게 성장하는 개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쉽게 해당 주장의 어폐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제한된 공간 안에서 태어나고 성장한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살게 된다고 하지만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은 지구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슷한 유년기를 보내고 어른이 된다.


어쩌다 살면서 남들이 겪지 못한 특별한 일을 겪을 수는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모두 살면서 한 번 쯤은 타인이 쉽게 겪지 못할 상황에 놓이곤 한다. 결국 우리의 삶은 타인이 상상해 낼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책 ‘1984’에서 사람들은 모두 빅 브라더의 감시 아래 똑같은 환경 속에서 동일한 생활 방식을 영위하며 살아가야만 했다. 만약 환경에 따라 사고 패턴이 달라진다면 독자들은 책 속 등장인물들을 서로 다른 개별자들로 구분하지 못 했을 것이다.


고유한 사고 패턴을 통해 타인들과 구분될 수 있다는 말은 동시에 그것이 나로 하여금 타인들과 영원히 일치될 수 없는 차이를 만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다른 이해의 폭을 가지고 있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상대방의 사고 과정을 따라 간다는 것이며,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같은 상황에서도 우리는 각자의 사고 패턴을 통해 다른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으며, 그것이 합의되기 위해선 배려와 노력이 필수적이다.


600.jpg
 


연극 ‘그 하루의 꽃’에 주어지는 세 가지 상황 속 등장인물들에겐 이러한 노력이 부재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사실 이들의 관계는 ‘이해를 위해 노력하는 인물’과 ‘이해하려는 노력을 거부하는 인물’로 구분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두 번째 커플에서 그러한 양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그것은 두 인물이 이혼이라는 상황을 앞두고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고 매달리는 입장과 결혼 생활을 완전히 끝내려는 입장이라는 완전히 상반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매개체인 꽃을 통해 전자의 입장을 지닌 남편에게 이입되며 상대방이 그의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알아주지 않는 것에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또한 아내와 다를 것 없다.


그의 사과와 변명, 그리고 마지막의 ‘너도 다를 것 없다’며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는 그가 결국 철저히 자신의 기준으로 아내의 행동을 판단했으며, 아내가 떠난 후 괴로울 자기 자신을 위해서 현재 양보한 모습을 보이는 것 뿐이라는 걸 반증한다. 그가 아내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싶었다면, 왜 같은 상황에서 자신과 다른 결론이 나왔는지 이해하기 위해 자신의 사고 패턴을 기꺼이 포기하고 상대방의 사고 과정을 유추하기 위해 노력했어야 한다. 물론 그의 마지막 한탄 때문에 아내가 미처 몰랐던 그의 사고 패턴을 깨닫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렇게 아내에게 ‘왜 알아주지 않냐’며 슬퍼하기 전에 먼저 자신부터 아내를 알아주려 노력해본 적은 없는 지 되돌아봐야 하는 건 아닐까.


슬픈 결말을 맞이하게 된 그들과 달리 세 번째 에피소드에 나온 할아버지와 간병인의 관계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그들도 처음에는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도, 피가 섞인 가족도 아닌 계약 상의 관계일 뿐이기에 사실 딱히 일정 이상의 노력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공감을 통해 자연스럽게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다. 공감은 같은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이고, 동일한 상황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는 것은 어느 정도 그것이 발생하게 된 사고 과정이 유사했다는 뜻이다.


결코 일치될 수 없는 우리가 하나의 공통점이 생겼을 때, 아무리 복잡한 갈등이라도 그 순간부터 서서히 해소되곤 한다. 나와 완전히 다른 누군를 이해한다는 것은 이렇게 어렵고, 놀라운 일이다. 이렇게 평생에 걸쳐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개인의 사고 패턴 속에서 같은 지점에 서 있는 타인과 일치되는 어떤 한 순간을 발견한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인 것이다.



377bcabfd3e8b28c8fa0e24720090366_W1TroNRzbWyJLyHLA4in25PQ1p5ZcO8Y.jpg
 

[서혜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