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술작가로 살아가는 법 [시각예술]

김희천, 송민정, 황아람 작가의 이야기를 듣다.
글 입력 2018.11.2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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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을 앞둔 11월, 12월은 전국 미술대학 4학년들의 축제인 졸업 전시가 열리는 기간이다. 필자의 학과에서도 졸업 전시를 치렀는데, 이를 기념하여 작가와의 토크 프로그램을 개최하였다. <미술 하면서 살아가는 법>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가진 이 프로그램은 현대미술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를 학교로 초대하여 준비된 질문에 대한 각자의 생각과 조언을 듣고자 했다. 마침 활동하고 있는 또래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던 차에,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작가 명단을 보게 되었다. 그중 내 기대를 올린 이름은 '김희천’이었다. 평소 현대미술계에서 주목할 만한 작가로 김희천의 언급이 잦았기 때문에 저절로 기대감이 올라갔고 그의 개인전, <홈 HOME>을 보고 팬이 되었기에 그가 참여한다는 소식만으로도 만남을 기대했다.




미술과 경제활동



세 작가는 ‘미술을 하게 된 계기’와 ‘미술과 경제활동’, ‘미술을 대하는 태도’ 총 3가지의 질문에 대답했는데 나의 주요 관심사는 ‘경제활동’ 부분이었다. 미대를 졸업하고 미술작가로 살아가지 않는 이유가 경제활동의 어려움, 즉 ‘돈’을 벌기 힘들단 것이 대표적이기 때문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졸업생 모두가 이 항목에 어떠한 해답이 있는지 가장 궁금해했다.


먼저 송민정 작가는 경제활동에 대해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았다고 한다. 돈이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가끔은 부모에게 손 벌리기도 하면서 살았다고. 김희천 작가는 건축학과를 나와 취업한 뒤 돈을 모으고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 돈으로 생활하다 모자라면 기관에서 지원을 받고, 새로운 레지던스에 들어가거나, 공모에서 상금을 받는 등 일종의 로테이션이 있기 때문에 ‘미술작가’라고 하면 떠올리는 막연한 돈의 압박감은 없었다고 한다. 그런 그의 말 중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면 그 포기마저 견딜 수 있다”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그에게는 풍요로운 경제적 넉넉함보단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한 만족이 중요하기에 평범한 직장인의 여유로움을 포기하고 좋아하는 일인 미술을 선택했던 것이다.


사실 두 작가의 말을 듣고는 약간 당황했다. 일주일에 라면으로 몇 끼를 때우고 투잡, 쓰리잡 할 것 없이 외주 들어오는 일을 찾아 헤매는 무용담을 예상했는데 생각 외로 생활이 무던했다. 어쩌면 내가 미술작가로 사는 삶을 두려워했던 건 부딪혀 보지 않은 채 미리 그 궁핍을 걱정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막연함을 떨치기 위한 걱정으로 계속 두려워한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송민정 작가와 김희천 작가의 경제활동이 무난히 돌아간다고 해서 미술인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두 작가는 현재 미술계에서 촉망받는 젊은 작가이고 전시 요청이 사방에서 끊이질 않을 테니, 밑천 없이 경제활동을 걱정하는 사회 초년생에게 조건 없는 희망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더불어 정부 기관의 협조와 기금을 유치 받기 위한 노력이 쉽지 않고, 받는 다 해도 1~2년 뒤라는 황아람 작가의 경험으로 보면 미술 작가로의 경제활동이 순탄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SNS의 활용



자기 PR 시대를 맞아 다양한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으로 자신의 작업을 홍보하고 반응을 얻어 돈 걱정 없는 사회 초년기를 맞는 경우도 있다. 졸업한 선배 중에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꾸준히 작업물을 게시하여 졸업 전부터 다양한 작업 의뢰를 받았던 작가도 있었는데 온라인상에 자신의 작업을 지속해서 노출하는 것이 길을 터준 셈이다.


그 선배의 케이스가 특이한 것이 아니라, 이미 현대미술에서 SNS는 하나의 방법을 넘어 뗄 수 없는 장치가 되었다. 노출성이 높은 SNS를 활용하지 않기엔 도태되고 선도적이지 않다고 생각될 수 있기에 많은 작가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와 같은 인터넷 소통 매체를 이용한다. 세 작가도 SNS를 활용하는 작업을 하는데 각자 어떤 작업인지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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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정
시리어스 헝거



송민정 작가는 ‘시리어스 헝거’라는 가상의 디저트 브랜드를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선보인다. 그가 내건 ‘시리어스 헝거’라는 브랜드는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존재하는 디저트 가게이지만 실제로 디저트를 판매하지 않는다. 이 계정을 본 사람은 브랜드의 존재 유무와 디저트 판매 여부를 궁금해하지만, 이 가상의 브랜드는 작가의 이미지와 설치작업이다. 판매하지 않는 것은 물론 실제로 손에 쥘 수 있는 물질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가상이지만, 작가의 계정에 들어가 본다면 이것을 단순한 가상이라 단정 짓기도 어렵다. 작은 석고상과 어두운 배경, 큰 잎의 화초들로 꾸며진 공간을 찍은 이미지들은 유행하는 트렌드를 반영한다. 관객에게 이미지는 '취향'과 ‘분위기’로 다가오고 그들이 이미지를 봄으로써 '소비'된다. 이 계정에 들어오는 누구나 이미지를 향유할 수 있으므로 공평하고 이것을 각자의 취향 아래에선 지극히 개인적이기도 하다. 마치 인스타그램에서 소위 '먹히는', '인스타 감성'을 이미지화시킨 것만 같다. 이처럼 송민정 작가의 작업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여 그 속에서 소비되는 이미지, 분위기를 가상의 브랜드로 나타내어 현실인지, 가상인지 혼란스러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송민정

2017, <CREAM, CREAM ORANGE>



이 매력적인 영상은 송민정 작가의 <CREAM, CREAM ORANGE>로, 2017년 북서울 미술관에서 진행된 <덕후 프로젝트: 몰입하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업이다. 유튜브에 전체영상이 업로드되어 있는 이 작업은 '크림 오렌지'라는 가상의 제품을 광고한다.

"직관적인 크림이 당신의 기분을 즉각적으로 개선합니다.”

팔지도,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크림을 광고한다는 영상을 보다 보면 오묘한 기분을 마주하게 되는데 작가가 제품을 광고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콘셉트를 보여주기 위해 광고를 차용한 것 같다. 특별한 콘셉트에 맞춰 구성한 이미지와 텍스트로 관객에게 '느낌'을 소비시킨다. 보기에 트렌디하고 예쁘지만, 실질적으로 존재하지도 가질 수도 없는 허상을 파는 작업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허상인 SNS를 보는 듯하다. 송민정 작가는 자신이 구성한 틀을 바탕으로 이미지를 만들고 자신이 만든 가상의 계정에 링크하는 것을 반복한다. 그는 자신의 브랜드가 패션 장르처럼 또 다른 장르가 되어 일상 속에 소비되기를 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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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천
2017, <홈 HOME>


이 영상은 김희천 작가가 만든 가상의 일본 애니메이션 <호-무>가 소재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소녀 탐정 에리카가 서울에서 실종된 할아버지를 찾기 위해 그의 위치를 따라 추적해나가는 내용으로, 본 영상 속의 화자는 에리카를 비롯하여 애니메이션<호-무>의 팬인 '덕후'와 실종된 할아버지, 총 세 명이다. 에리카와 ‘덕후’가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되었던 서울의 장소를 방문하는 ‘성지순례’를 하며 영상이 진행되는 동안 일본어 내레이션은 자막과 함께 들려오는데 그 말투는 소위 오타쿠(*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을 이르는 일본말)같다. 주인공은 성지순례로 서울을 관람하며 극 중 에리카가 추적하던 풍경들과 자신의 서울을 비교한다. 세 화자의 각기 다른 시점과 발생하는 사건들은 같은 장소를 바라봄에도 각자의 관심사와 시선에 따른 차이를 보여준다. 세 명의 화자는 같은 장소에서 평화로운 마을과 시끄러운 태극기 집회 등의 상반되는 일들을 동시에 경험한다. 그리고 그것을 감상하는 관객에겐 레이어처럼 시공간이 겹쳐지며 평행우주를 연상케 한다. 단순히 글로 적기에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 영상을 링크하여 같이 관람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찾을 수 없었다.

김희천 작가도 영상을 매개로 하지만 송민정 작가만큼 적극적으로 SNS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작업 속 '덕후' 콘셉트는 인터넷을 하는 젊은 세대에게 익숙하다. 그 때문에 관객은 줄곧 작가가 구성한 콘셉트 내에서 유도된 힌트를 해석하며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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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아람
소쇼룸


황아람 작가도 SNS로 꾸준히 소통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동업자와 함께 운영 중인 <소쇼룸>은 을지로 골목 중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을지로는 각종 재료 상권과 밀접하고 비교적 저렴한 임대료 덕에 떠오르는 미술인의 성지이다. 그곳에 자리 잡은 <소쇼룸은> 협업하는 미술작가들에게 전시 공간을 내어주며 공간 자체를 쇼룸의 형식으로 보여준다. 미술 작품을 구매한 뒤 셀프 큐레이팅을 고민하는 미술 애호가에겐 미술품을 위한 인테리어 제시를, 잠시 들러 본 행인 한 명에게는 미술 작품과 함께 쉬어가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이 쇼룸에 전시하는 형식은 '화이트 큐브'라고 불리는 일반적인 전시 형태에서 벗어나 뚜렷한 콘셉트가 있어 전시마다 공간이 탈바꿈한다. 벽지를 샛노란 색으로 덮기도 하고 고속버스터미널처럼 딱딱하게 바꾸기도 하는 등 작업에 알맞은 공간 구성을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공간 구성은 전시공간이라는 딱딱하고 정통적인 형식에서 탈피하여, 미술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공간을 '느낌'으로 이해하며 작품을 보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편안함을 제공한다. 나아가 전시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파생된 굿즈를 소비하고 공간 자체를 향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세 작가의 공통점은 가상의 작업을 하는데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와 같은 소셜 미디어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현대미술과 작가에게서 SNS란 가장 중요한 플랫폼이 되었는데 그에 따른 부작용도 존재한다. 그들은 입을 모아 SNS상의 피드백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송민정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한 예술가의 인생을 담은 작업보다 예쁜 오렌지 하나에 더 반응하고 열광하는 것이 SNS이고, 그 반응에 현혹되어 휘둘린다면 정말 위험하다. 휴대폰의 작은 창으로 쏟아지는 피드백들은 빠르고 즉각적이지만 실질적인 영양가는 없으니 어느 정도 흘려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사람들의 반응에 민감하게 굴다 보면 어느새 그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결과물만 만들어 낼 때가 있다. 그러다 오히려 작업에 대한 재미가 반감되고 압박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럴 땐 즉시 외부 자극에 관한 모든 것을 끊어내고 정말로 자신이 관심 가는 것을 찾아서 해야 한다.



졸업을 앞둔 미래 작가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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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을 앞둔 미래 작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김희천 작가는 해외의 여러 작가와의 교류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의 미술만이 다라고 생각 말고 기회가 있다면 해외로 나가 신진작가들과 소통 해야 한다고. 해외의 미술 시스템과 비교해야 한국 미술시장의 현실을 알 수 있고 세계 동향을 파악할 수 있으니 중요한 조언이었다. 송민정 작가는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다. 목표가 막막하고 당장 성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작업하고 보여 준다면 천천히 이루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황아람 작가는 본인의 감상과 함께, 자신은 바로 윗세대인 70년대생 작가들에게 조언을 받은 적이 없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은 실질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건 없다는 말로 들렸고 결국에는 혼자 이겨내야 하는 것이 미술작가의 삶이라고 생각되었다.

2시간가량의 이야기가 끝나고 모두 퇴장할 때, 미련이 남은 나는 쉽사리 발걸음을 돌리지 못했다. 사진 한 장만이라도 남기고 싶은 팬의 심정으로 덜덜거리며 사진 요청을 했다. 창피한 마음에 쭈뼛거렸는데 작가도 흔한 일은 아니었는지 무척이나 어색해하시며 사진을 찍어주셨다. 그리고 사심을 가득 담아 김희천 작가에게 “작년 전시 <Home> 너무 잘 봤습니다. 감명 깊었어요.”하고 소곤소곤 말했는데 덩달아 영광이라며 고개를 숙여주셨다. 동경하던 작가와 사진을 찍은 성공한 덕후가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값진 기회였다. 내가 언제 김희천 작가와 사진을 찍어 보겠나. 더불어 새로 알게 된 멋진 작가들과 그들에게서 얻은 조언들은 무척 값졌다.

이 값진 경험을 미술을 하면서 살아갈 모든 이와 공유하고 싶어 적어 내려가 보았는데, 사람인지라 온전히 기억하지 못해 왜곡된 부분이 있다는 점을 양해 바란다. 이 작가들과 만남으로 미술인의 삶 속에 정해진 '법칙'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다. 각자의 굴곡 안에서 각자의 방식을 안고 자신만의 법칙을 만들어 가는 것이 진정한 <미술작가로 살아가는 법>이었음을 다시 한번 되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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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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