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의 일상은 한 편의 시가 된다 [영화]

2018 이동진의 시네마 리플레이: 영화 <패터슨>을 관람하다
글 입력 2018.11.29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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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일요일, 코엑스 메가박스를 다녀왔다. 다름 아닌 이동진 평론가가 진행하는 [2018 시네마 리플레이] 때문이었다.

이동진 평론가는 올 한해 인상적인 영화들을 11편 추려, 해당 영화들을 재상영하고 자신의 해설을 듣는 시간을 마련하였다. 눈길을 사로잡는 포스터와 흥미로운 줄거리의 영화 <패터슨>, 그리고 이동진 평론가. 보고 싶었던 영화와 좋아하는 평론가의 조합. 주저할 이유 따위는 없었다. 제공받은 빨간색의 리플레이 노트에 귀여운 버스 도장을 찍고 영화관 안으로 입장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시를 쓰는 주인공



미국 뉴저지 주, 패터슨이라는 도시에서 버스를 운전하며 살아가는 주인공 패터슨. 그에겐 미술적 재능이 뛰어난 아내와 마빈이라는 이름의 강아지가 있다. 그는 매일 아침 6시 반 눈을 떠, 식탁에 앉아 콘플레이크와 커피를 내려 마시고, 같은 길을 걸어 차고지에 도착해 버스를 운전한다. 퇴근한 이후엔 아내와 하루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저녁을 먹는다. 그리곤 마빈을 데리고 밤 산책을 하다가, 단골 바에 들러 맥주를 한잔 마시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패터슨의 하루 일과. 하지만 패터슨의 반복되는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바로 틈틈이 적어내려가는 시 쓰기 활동이다. 아침 첫 차를 몰기 전 운전석에 앉아 잠시 쓰고, 시원한 폭포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 점심을 먹으며 적어내려가고, 날이 저문 조용한 저녁 지하실 책상에 앉아 써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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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주제는 다양하다. 패터슨이 겪는 일상의 크고 작은 것들은 모두 시의 소재가 된다. 부엌 식탁에 놓인 성냥갑부터, 우연히 만난 여자아이가 읽어준 시, 바에서 매일 마시는 맥주, 그의 사랑스러운 부인 등. 영화에서 그의 시는 부드러우면서 단단한 그의 목소리와 함께 낭송된다.

가장 인상 깊었던 시는 위 사진에 등장하는 'Pumpkin'이라는 시다. 아마 자신의 부인을 떠올리며 썼을 듯한 시. 꾸밈없이 솔직하고 담백하게 건네진 그의 진심은 마음에 깊게 스몄다. 부인은 패터슨이 쓰는 시를 참 좋아하며 그가 시를 계속 써나가도록 북돋아주는 사람 중 하나로, 서로의 든든한 동반자 역할을 하고 있다. (영화에서 패터슨의 시로 등장하는 시는 모두 미국의 유명한 시인 Ron Padgett이라는 사람의 시라고 한다.)

이렇게 시 쓰기를 좋아하는 패터슨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바로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William Carlos Williams)이다. 그는 실존 인물로 1883년 패터슨에서 태어나 소아과 의사를 했던 사람으로, 의사 활동을 하면서 꾸준히 시를 계속 써 내려갔다고 한다. 그 또한 일상의 소소함들을 관찰하며 시를 썼다고 하는데, 많은 점들이 주인공 패터슨과 닮아있다. 어느 날 부인은 패터슨에게 윌리엄의 시를 하나 읽어달라고 하는데, 패터슨이 읽어준 시의 내용은 네가 아침으로 남겨뒀을 자두를 먹어버렸는데, 그건 너무도 시원하고 달콤했다는 이야기이다. 귀여움이 엿보이는 시는 우리를 웃음 짓게 만든다. 제목은 'This is just to say'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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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고 고요한 바다에도 세찬 파도는 불어온다

평화로워 보이던 패터슨의 일상에도 위기와 사건사고는 찾아온다. 금요일의 어느 오후, 패터슨이 몰던 버스는 갑작스레 도로변에서 멈춰버린다. 패터슨은 버스 승객들을 밖으로 급히 대피시키고, 꼬마 여자아이의 스마트폰을 빌려 다음 버스를 보내줄 것을 요청한다. 그렇게 겨우 한숨 돌렸던 하루. 토요일은 부인이 자신이 직접 만든 개성 넘치는 컵케이크를 동네 시장에 처음 선보이는 날이었고, 그 결과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두 부부는 기뻐하며 오래간만에 영화도 보고 외식도 하며 저녁을 즐긴다.

하지만 즐거웠던 시간도 잠시. 집에 돌아온 그들을 반긴 건 집을 지키던 마빈이 패터슨의 시 공책을 갈기갈기 찢어논 모습이었다. 하나뿐이던 패터슨의 소중한 노트.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맞이하는 주말, 마빈에게도 평소와는 다른 낯선 일탈이 필요했던 걸까. 패터슨은 잠을 설치며 무기력한 일요일을 맞이한다.

그럼에도 삶은 우리를 마냥 절망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우울한 기분을 달랠 겸 마빈과 산책을 하러 나온 패터슨. 매일 점심을 먹던 폭포 방향이 아닌 반대편으로 걸어가려고 하는 도중, 마빈이 자꾸 줄을 끌어당기는 바람에 패터슨은 어쩔 수 없이 폭포 방향으로 산책을 나가게 된다. 손에 끼고 다니며 늘 자신의 일상을 함께했던 시 노트. 노트는 이미 사라졌고, 시상도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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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어느 일본 남자가 폭포로 찾아와 패터슨의 옆자리에 앉는다. 그가 가방에서 꺼낸 책은 다름 아닌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패터슨>이라는 시집. 호기심에 말을 걸어 보니 남자는 그 시인을 너무도 좋아하여 그의 고향을 잠깐 방문하러 온 상태였다. "당신은 여기에서 태어났나요?" "네. 저는 이곳의 버스 드라이버에요." "그렇군요. 어쩌면 윌리엄의 당신을 보고 시를 썼을 수도 있겠군요." 자신이 어쩌면 누군가의 시가 되었을 수도 있다는 낭만적인 추측. 얼마 뒤 남자는 패터슨에게 빈 공책을 선물로 건네며, 빈 노트는 수많은 가능성을 의미한다고 말하곤 자리를 뜬다.

그러다 다시 패터슨을 향해 뒤돌아보고는, "아-하!"라는 말을 건네곤 무심코 사라진다. 아하. 뒤늦게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는 감탄사이다. 자신의 일상이 누군가의 예술이 되고, 그 예술은 다시 그의 일상이 된다. 남자가 떠난 뒤, 패터슨도 자신의 마음이 외치는 '아-하!'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돌아가는 길.

그리고, 다시 패터슨은 월요일 아침을 맞는다. 삶은 계속 시작되고 있다.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 얘기하는, 감독의 따뜻한 시선

눈을 사로잡을 만큼 화려하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은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과 습관들. 우리의 하루는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반복되어 지지만, 어제의 하루는 오늘의 것과 마냥 똑같지만은 않다. 매일 걷는 길도 날씨와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옷을 입고 있다.

우리는 우연히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평소와 다른 일들을 맞이한다. 비록 그것들은 마냥 즐거운 일이 아니기도 하며 때로는 불행을 가져오지만, 우리의 일상을 두드리며 깨운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건넨다. 말 잘 듣던 마빈이 평소와 달리 공책을 찢어버리는 행동을 했지만, 다음날 마빈이 폭포 쪽으로 패터슨을 이끄는 바람에 그는 새로운 노트를 선물 받아 다시 시를 써 내려갈 용기를 얻은 것처럼 말이다.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은 우리에게 절망을 건네다가도, 삶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를 선물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우리의 일상이 반복되는 일 하나 없이 예상치 못한 사건들로 가득 차 버린다면? 아마 사람은 미쳐버릴 것이다. 우연과 운명에 기대어 걱정에 가득 찬 날들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이동진 평론가는 주인공이 택시기사가 아닌 버스 운전사였기에, 매일같이 운전하는 길목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그걸로 시를 쓰게 된 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택시는 손님의 출발지와 목적지에 따라 매번 다른 길을 가야 하지만, 버스는 매일 운전하는 노선이 정해져 있다. 반복되는 도로에서 매일같이 변하는 풍경들, 평범함 속에 발견되는 특별함. 그것들은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일상은 시가 되고, 그 시는 다시 우리의 삶이 된다. 우리의 삶은 조금씩 변주되며 그 조각들은 우리에게 예술의 여지를 남긴다. 시를 쓰게 만든다. 권태에 빠지지 않고 패터슨이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매일같이 기록하던 시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좋았던 건, 주인공들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참 따뜻하다는 것이다. 지루함이 배어있지 않은, 생기 넘치는 패터슨과 부인의 표정.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특별함을 발견하며 기뻐하는 그들. 불행이 삶을 좀먹게 내버려 두지 않는 감독의 온기 어린 눈길은 관객인 우리까지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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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는 길. 나도 패터슨처럼 시를 써보고 싶어졌다. 패터슨과 다름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우리. 일상에서 발견한 특별함과 사소함을 꾸준히 기록하고 생각한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그 총기 어린 시선은 새롭게 맞이할 내일을 살아가는데 아주 중요한 원동력이 되어준다. 패터슨의 버스회사 동료. 그 동료는 오늘은 어때, 라고 안부를 묻는 패터슨의 말에 매일 투덜거리며 자신의 불행을 나열한다.

패터슨이 그처럼 삶의 권태로움에 지치지 않았던 이유는 그는 매일 시를 써내려갔기 때문이다. 남들과는 다른 눈으로 삶을 관찰하며 자신의 일상을 예술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쩌면 모두 시인이 아닐까. 반복되는 하루를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본다면, 우리도 어느새 시인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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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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