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라는 세계. [드라마]

글 입력 2018.11.28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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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뷰티 인사이드>를 극장에서 봤었다. 그 영화가 가진 분위기와 영상미가 인상 깊었는데, 드라마 <뷰티 인사이드>는 그런 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오로지 주인공 ‘한세계’에 공감하면서 울고 웃으면서 두 달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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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세계



영화에서는 주인공인 ‘이수’의 연인인 ‘우진’이 매일 얼굴이 바뀌는 설정이다. 드라마에서는 여자 주인공인 세계가 한 달에 한 번 일주일 정도 다른 얼굴로 살아간다는 설정이다.


왜 이렇게 세계의 모습에 공감이 가는지 모르겠다. 내가 세계처럼 얼굴이 변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판타지 설정에 이토록 공감된 적이 없었다. 세계는 얼굴이 바뀌는 바람에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도 가지 않은 사람이 됐고, 입원한 엄마의 병문안도 또한 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사실 세계는 갔다. 중년 남성의 모습으로 두둑이 축의금을 넣어 놓고, 할머니의 모습으로 병원에서 엄마에게 사과를 까 주기도 했다. 물론 그들에게 세계는 오지 않은 사람이지만.


나도 그런 적이 있다. 어떤 이유에서, 가고 싶은 곳에 갈 수가 없고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 나타날 수 없을 만큼 자신 없었던 순간들이. 때로는 물리적인 요인이기도 했고, 때로는 심적으로 너무나도 못난 내 모습 때문이기도 했다. 세계처럼 ‘운명’적인 이유는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나름대로 운명이 있다. 도저히 남들 앞에 나설 수 없어서 꼭꼭 숨고, 그 속에서 작아지고 초라해질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의 이유가 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가진 세계를 둘러싼 오해는 지독하다. 숨겨둔 아들이 있다, 성격이 그렇게도 ‘지랄’ 맞대더라, 촬영 중에 맨날 사라진다 등등. 세계는 이런 논란들에 익숙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어떻게 사실이 아닌 비난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세계는 계속 상처받는다. 그 논란에 대해서 속 시원히 말할 수도 없는 자신이니까, 상처는 자기 부정으로 이어진다.


세계의 비밀을 눈치채고 이를 폭로하려 하는 동료 배우 ‘채유리’도 등장한다. 처음에는 채유리가 사람들 앞에서 세계가 얼굴이 변한다는 사실을 폭로하면 어쩌나 불안했는데, 자신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남의 약점 하나 잡겠다고 사람까지 붙이면서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우스워졌다. 세계의 운명을 마주하면서 말할 수 없는 사정, 그리고 어쩌면 이해할 수 없는 사정도 있다는 걸 배웠다. 우리네 사회에서는 그게 얼굴이 바뀌는, 말 그대로 ‘말이 안 되는’ 사정은 아니겠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또 들어도 이해할 수 없는 자기만의 사정이 있기 마련이다. 때로는 이 ‘사정’이 감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약점으로 변하고, 나라는 사람의 단점이 되기도 한다.




세계야, 행복해!



세계는 비슷한 듯 다른 아픔을 가진 '도재'를 만나 서로 사랑한다. 얼굴이 바뀌는 여자와 자신의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는 남자. 그랬기에 두 사람은 서로의 아픔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남자는 여자의 모습이 어떻든 상관없었고, 여자는 어떤 모습의 자신도 사랑해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났다.


세계의 얼굴이 바뀌는 ‘운명’은 비단 세계에게만 불행을 가져다준 것은 아니었다. 세계의 아픔을 함께 공유하는 둘도 없는 친구인 ‘우미’는 돌아오지 않는 세계의 얼굴을 숨기기 위해 스스로 교통사고를 내며 자해까지 한다. 그토록 마음 아파했던 사랑하는 남자의 불행의 원인 또한 바로 세계 자신이었다.


세계는 또 어김없이 도망쳤다. 드라마 초반부터 세계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이 찾아오면 연락 끊긴 상태로 혼자서 도망치는 일이 많다. 세계가 약해서가 아니다. 아픔은 나눌수록 줄어든다고 하지만, 세계의 아픔은 분명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까지 아프게 만드니까. 나였어도 세계와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세계는 도망가지만, 꼭 다시 돌아온다. 혼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세계는 자신을 찾아온 도재를 더는 밀어내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세계가 혼자서 하는 ‘도망’이 결국은 필요했던 일이다. 이 드라마가 도망가는 세계를 바보처럼 만들지 않아서 좋다. 갑자기 씩씩하게 이겨내면서 운명을 극복했다는 뻔한 이야기가 아니어서 좋다. 하루에도 수없이 도망치는 나에게, ‘너는 약해서가 아니야, 너의 도망은 필요한 거야.’라고 말해주는 기분이었다.



왜 나일까, 왜 꼭 나여야만 했을까.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을 원망했었다.

나는 이제야 그것이 아주 많은

나를 원망한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운명은 계속 가르쳐주고 있었다.

반드시 너여야만 했다고,

그 많은 얼굴들은 반드시

너에게로 와 쓸모가 있었다고.

 

그러니까, 이제 사랑하라고.



같은 맥락에서 아픔을 치유하고 이해하는데 도재나 우미와 같은 주변 사람들은 분명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나아가는 것은 세계이다. 세계는 그동안 그토록 증오하며 원래의 자신까지 부정하게 만든 그 모든 ‘얼굴’들을 받아들인다. 남자 고등학생이 돼서 괴롭힘당하는 학생을 도와준 일, 꼬마 아이가 돼서 멋진 연기를 선보인 일, 엄마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했던 중년 여성의 얼굴 등. 그것은 가짜도 아니고, 마법도 아니고, 그냥 모두가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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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여전히 변한다. 물론, 그 전만큼 자주 변하지는 않지만. 세계의 ‘운명’은 언제 어디서 변할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골칫거리겠지만, 불행과 고통으로만 남지는 않을 것이다. 나라는 세계 안에서, 이해할 수 없는 운명 속에서,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두 달 동안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그걸 배웠다.


[조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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