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삶’을 들려주는 아티스트들: 2 민중의 자유를 위하여, 메르세데스 소사 [음악]

글 입력 2018.11.29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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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편에서 우리는 평생을 불행의 그늘 속에서 맴돈, 재즈 신의 전설적인 트럼페터 중 한 명인 ‘쳇 베이커’의 일생과 음악 세계, 대표 곡들을 살펴보았다. ‘문제적 인간’이라고도 불릴 만큼 파란만장했던 삶과 그에 대한 엇갈린 평가는 그가 남긴 우울하고도 낭만적인 명곡들을 듣는 이로 하여금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처럼 개인적인 차원의 비극을 겪으며 일생을 보냈던 한 명의 뮤지션으로 쳇 베이커가 있다면, 한편으로는 개인의 부와 영광을 그가 속한 공동체의 자유를 위해 거리낌없이 내던지는 삶을 살았던 뮤지션도 있다. 바로 아르헨티나의 전설적인 가수로 남은 메르세데스 소사가 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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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바 칸시온’에 평생을 바치다



1935년, 안데스 산맥의 끝자락에 아르헨티나의 뚜구만 지역에서 태어난 메르세데스 소사는 이 지역에서 내내 유년기를 보내며 이 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전해져 오던 인디오 전통을 자연스럽게 경험했다. 1950년 라디오의 한 음악경연대회에서 우승한 이후 1962년 첫 앨범을 내며 가수로 데뷔한 소사는 1965년 한 포크음악 페스티벌을 통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또한 이 무렵부터 그녀는 앞으로 자신의 평생을 바치게 될, 라틴 아메리카의 독재 정치에 저항하는 민중음악 혁명인 ‘누에바 칸시온(새로운 노래)’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1976년, 정치 권력이 끊임없이 뒤바뀌던 혼란스러운 시기 끝에 이사벨 페론이 실각하고 우파 독재 정권의 수장인 호르헤 비델라가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자리에 앉게 되면서, 좌파 성향을 띄던 소사는 활동에 큰 제약을 받기 시작한다. 음악과 공연을 통해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을 해외에 알렸다는 혐의를 받아 수감과 석방을 반복했고, 급기야 1979년에 이르러서는 콘서트에서 농민들의 입장을 대변한 곡인 ‘Cuando Tengo La Tierra’를 부르려다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아르헨티나에서 영구 추방된다. 한편 이 시기 그녀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던 남편마저 사망하면서 이를 계기로 소사는 파리, 마드리드를 거치며 3년 간의 망명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하지만 타국에서의 망명 생활은 결국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일상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치명적인 위기를 가져다 주고 만다. 바로 목소리가 닫혀버리게 된 것이다. 이는 자신의 음악적 밑바탕을 이룬 조국에서의 추방,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한 데 겹쳐 오는 깊은 절망과 시련의 당연한 결과였다.


이 모든 시련을 뒤로 하고 1982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컴백 콘서트를 기점으로 소사는 조국으로 돌아온다. 비록 오랜 망명 생활로 인해 육체적, 정신적 한계에 부딪히게 된 결과 로 이어진 병상 생활을 통해 건강을 잃어가던 그녀였지만, 소사는 끝까지 음악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음반을 발표한다. 계속해서 조국 아르헨티나의 민속음악을 복원해 나가는 동시에, ‘누에바 칸시온’ 운동에도 꾸준히 참여한 것이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에 접어들면서 그녀의 건강은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오랜 병상 생활로 인한 탈수 현상으로 인해 몸무게가 30 킬로그램 이상이나 빠지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게 된 것이다. 결국 소사는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2009년 10월,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녀의 나이 74세, 그것은 라틴 아메리카의 음악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한 ‘디바’의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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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 소사의 음악 세계



소사의 음악 세계는 역시 그녀의 평생을 함께 한 ‘누에바 칸시온’ 운동으로 대표된다. 사실 누에바 칸시온 운동을 이끌었던 대다수의 뮤지션들이 작사, 작곡 능력을 갖춘 싱어송라이터였던 반면 소사에게는 작곡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가진, 깊은 울림과 감동을 주는 독보적인 목소리는 소사의 노래가 아르헨티나를 넘어 라틴 아메리카 전역, 그리고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가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한편 음악 생활 내내 계속된 라틴 아메리카의 민속 음악에 대한 복원 작업, 그리고 이 작업의 결과로 발표한 ‘미사 크리오야’, ‘무헤레스 아르헨티나스’ 등의 앨범은 특히 라틴 아메리카 민중들에게 전통과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특히 소사의 음악 세계를 대표하는 노래로는 역시 ‘Gracias A La Vida’를 꼽을 수 있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인생이여 감사합니다’ 라는 뜻의 이 곡의 원곡은 사실 그녀의 것이 아니라 칠레의 뮤지션인 비올레타 파라의 곡을 1971년 리메이크 한 것이지만, 소사 특유의 울림 있는 목소리를 통해 라틴 언어권을 넘어서 전 세계적으로 히트하게 된다. 조국에서 추방되어 망명 생활을 계속해 나가던 순간에도, 건강을 잃어가며 생의 경계에 이르던 순간에도 그녀는 멈추지 않고 무대에 서서 인생에 대한 감사함을 노래했다. 평생동안 오롯이 음악을 통해 독재 정권에게는 폭력이 없는 자유의 외침을, 민중에게는 희망을 전한 라틴 아메리카의 ‘라 네그라(검은 여인- 소사는 머리카락이 칠흑같이 검다는 이유로 이 별명을 얻었다.)’, 그녀는 메르세데스 소사였다.




메르세데스 소사의 대표 명곡들




1.

Gracias A La Vida

(인생이여 감사합니다) (1971)





2.

Alfonsina Y El Mar

(알폰시나와 바다) (1969)





3.

Sólo Le Pido A Dios

(당신께 청하는 오직 하나의 기도) (1982)





4.

Aquellas Pequenas Cosas

(그 사소한 것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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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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