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힘 빼기 기술 [도서]

글 입력 2018.12.02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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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몇 년을 살면서 주로 픽션을 읽어왔다. 지루하고 평범한 현실의 이야기보다는 가상의 인물들이 꾸미는 아름다운 가짜가 더 좋아서 어렸을 때부터 소설 장르를 주로 읽어왔다(사실 책을 잘 읽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나마 라는 거다). 하지만 요즘은 에세이가 더 좋다. 작가의 실제 이야기, 더 가볍게 말하자면 작가가 썰 푸는 걸 보는 게 더 좋다. 누구나 겪어볼 수 있는 일상의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 깨달음의 종류와 깊이가 나와 다르고, 다르다는 것은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이니 에세이를 읽으면 무언가 많이 얻어 가는 느낌이다.

김하나 작가의 '힘 빼기의 기술'은 심리학적으로 어떻게 힘을 빼며 살며, 그것의 장점과 간증을 담은 글은 전혀 아니다. 그저 그녀가 살아온 흔적을 모아놓고 보니, 치열하거나 원대한 꿈을 이루는 파이팅 넘치는 인생이 아니라 일상에서 깨달음을 얻으며 생각도 못 한 작은 곳에서 기쁨을 느끼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소소함과 안정감을 국내와 국외 두 파트로 나눠 썰을 풀고 있다.





선택의 기로에서 또는

사는 게 힘에 부칠 때면

'만다꼬?'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었다.

(......)

꿈을 크게 가지고 항상 꿈을 향해 도전하라고도 한다.

꿈은 꼭 그렇게 거창해야만 하는 걸까?


-프롤로그 中-



작가는 경상도 출신으로 집에서 주로 '만다꼬?'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만다꼬?' 표준어로 하자면 '뭐하러?' 혹은 '굳이?'로 해석 가능한데 의욕이 넘칠 때 들으면 참으로 맥빠지게 하는 말이다. '내가 뭐하러 이렇게 열심히 사냐. 그냥 되는 대로 살다 가자......' 하지만 '만다꼬?'라는 질문은 시간이 지날수록 삶이 힘든 순간에 해야 할 정말 중요한 질문이 되었다고 한다. 내가 왜 이것을 하는지, 무엇을 위해 하는지, 진짜로 내가 이것을 원하는지 등 '만다꼬?'를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게 된다나.


실제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잘 모른다.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자신의 가치관을 어떻게 설정하면 좋을지도 모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럴 때는 자기 자신과의 대화가 정말 중요하다. 여기서 '만다꼬?'는 그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좋은 시작점이 될 것이다. 무엇을 위해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는지를 항상 염두에 두면 인생의 방향을 잘못 트는 경우가 줄어들 테니 말이다.



그건 아마도 긍정성일 것이다.

설거지할 때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과도

연관이 있을 테지.

나는 엄마가 지나가듯 한 말에 기분이 퍽 좋아졌다.

엄마가 스스로 행복하기 때문에

나도 곁에서 행복한 것이다.


-힘 빼기 기술, 최고로 좋은 때 中-



국내편(진짜 이름은 '가까이에서 편')에서 가장 마음에 든 에피소드다. 노래하며 설거지를 하던 작가의 어머니는 지금이 인생에서 최고로 좋은 때라고 말한다. 정말 대단한 것 하나 없는 상황인데도 최고라고 할 수 있다는 건 작은 것에 기쁨을 찾는 어머니의 긍정성이 마음의 걱정을 덜기 때문이리라.


마음이 편한 또 한 가지 이유는 어머니의 자식 교육 스타일에서 찾을 수 있다. 도토리가 열리는 상수리나무 바로 밑에선 또 상수리나무가 자라지 못해서 도토리는 엄마 나무에서 되도록 멀리까지 굴러가기 위해 동그란 모양이라고 한다. 이를 어머니는 '상수리 이론'이라 부르며 자식에게 간섭하지 않고 그저 지켜봐 주는 것이 엄마로서 할 일이라고 여기시니, 엄마는 자식에게 얽매이지 않고 자식 또한 엄마에게 의존하지 않고 굴러갈 수 있다. 양쪽 다 힘을 들일 틈이 전혀 없는 최고의 부모자식 관계다.


나는 이 관계가 굉장히 부럽더라. 우리 부모님은 간섭이 심한 편으로 나를 아직도 자신에게 달린 도토리 취급을 하며 자식들을 키우신다. 그렇기에 나는 나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고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 부모님에 의하여 좌절되는 경우도 꽤 있었다. 항상 서로를 감시하느라 힘이 들어가 있는 이 상태는 부모 자식 둘 다 불행하게 만든다. 이 에피소드는 많은 부모님들이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관점과 태도의 관계는, 어찌 보면

'말과 행동' 또는

'생각과 실천'이란 쌍과도 비슷하다.

두 항목은 배치된 것이 아니며,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받는다.


관점에서 태도가 비롯되고

태도가 다른 관점을 불러온다.


-힘 빼기 기술, 관점과 태도 中-


 

이번엔 해외편('먼 곳에서 편')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다. 관점은 어떤 문제를 보는 시각 및 가치관을 의미하고 태도란 그 관점에서 나온 행동을 의미한다. 처음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왔을 때, 작가는 사람들이 오만하고 말을 막 해서 여기 사람들은 다 그런가 보다 하고 그 나라 사람들과 더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참이었다. 그러다가 그 나라 말이 더 트이고 아름다운 노래를 들어서인지 마음이 들떠 현지인들에게 무작정 말을 걸고 다녔다고 한다.


바뀐 태도는 다른 결과를 불렀다. 생각보다 친절한 사람들이 많았고 그에 따라 관점 또한 변했다.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태도, 행동, 실천이라는 당연하지만 잊고 살기 쉬운 진리의 경험이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이다. 나의 관점이 변하면 태도가 변하고, 더불어 다른 사람의 태도도 변한다. 이래서 힘을 좀 빼고 살아야 하는 거다.


조금 더 나이를 먹고 경험을 쌓는다면 언젠가는 복잡하게 생각만 많은 나도 힘을 좀 빼고 노래 부르며 설거지를 할 수 있을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도록 노력해보자.



[송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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