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생과 사의 경계에서 떠나는, 연극 기묘여행

글 입력 2018.11.29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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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부모와 피해자의 부모가 함께 여행을 떠난다.



극단 산수유가 이번에 선보이는 연극, <기묘여행>의 줄거리를 한 줄로 소개한다면 위와 같다. 3년 전, 열다섯의 소녀 카오루를 죽인 살인범 아쯔시는 사형을 언도받은 뒤 항소를 포기한다. 카오루의 부모는 아쯔시를 죽여 딸의 복수를 하기 위해, 그리고 아쯔시의 부모는 사형만은 면하도록 항소하게끔 그를 설득하기 위해, 각각 아쯔시를 면회하러 가는 1박 2일의 여행을 떠난다.


제목 그대로, 정말 기묘한 여행이 아닐 수 없다. 딸을 앗아간 극악무도한 범인을 죽여버리고 싶은 부모의 마음도, 자식이 살인범임에도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부모의 마음도 어떻게 이해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가해자와 피해자가 사라진 황량한 들판에서, 극단 산수유는 서로의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네 사람의 여정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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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과 사의 경계, 사형제도



사형제도는 임신중절, 안락사, 남북통일과 함께 초등학교 시절 4대 토론 주제에 속할 만큼 오랜 시간 뜨겁게 논의되어 온 주제다. 어렸을 적 나의 입장은 때에 따라 여러 번 흔들렸더랬다. 죽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사실은 최근까지도 계속해서 고민하던 문제라, 이번 연극 <기묘여행>을 꽤 반갑게 받아들였던 것도 있다. 조두순이나 유영철과 같은 흉악범을 대입하면 망설임 없이 사형을 외치겠지만, 그럼에도 이성적으로 생각하자면 일단은 사형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쪽이다.


죽음보다도 더한 고통 속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사투를 벌이는 피해자와 그 주변인들에게,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이라는 말로 고통을 얹는 것이 아닌지 두렵기도 하다만은, 여전히 사형제도의 폐지를 생각하는 것은 그 두 글자가 법전 위에 글자로 새겨지는 순간 담을 수 있는 권력의 무게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때문이다. 오심의 가능성과 동일범죄의 발생률에 미치는 실질적인 영향이 미미하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인간의 생과 사를 감히 결정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나는 쉽사리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법의 무게가 지엄함에도 그것은 역시 인간이 만든 것으로, 시대가 변하고 주체가 확장될 수록 무엇보다 쉽게 바뀌며 쉽게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때로는 대다수 국민 정서에 반하더라도 변화가 반드시 필요한 경우 또한 존재한다. 이렇게 불완전하고 가변적이어야만 하는 글자들 속에서 생과 사가 넘나드는 권력을 쥐어줄 수 있을까.


법의 존재 이유에 따라서도 입장은 여러 갈래로 나뉠 수 있다. 법은 교화를 위해 존재하는가, 처벌을 위해 존재하는가? 혹자는 처벌의 두려움으로부터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는 이미 사형제도를 잇따라 폐지한 여러 나라의 통계를 통해 반박된 바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 아내를 살해한 한국 남성이 한국에서 재판을 받겠다고 주장한 사례나, 감형을 위해 군입대를 감행한 사례를 볼 때, 그리고 편파적인 법의 오독과 실행 사이에서 늘어나는 특정 범죄의 발생률을 보면 법의 공포정치가 불필요하다고, 쓸모없다고 단정할 수도 없을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처음 토론을 준비하던 10여년 전에도, 10년 후의 지금도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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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람의 이야기



살인범과 피해자, 사형제도가 언급되기는 하지만, 시놉시스만 읽어보더라도 연극 <기묘여행>이 이런 복잡한 문제에 대하여 명확한 답을 내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극이 다루는 것은 생과 사를 가르는 자극적이고 뜨거운 논란이 아니다. <기묘여행> 속에는 토론의 끝을 알리는 판사의 망치 소리 뒤로도 끝없이 이어지는, 질척한 삶의 무게가 담길 것이다.


세상의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지만, 지겹고 끈적하게 계속될 남겨진 자들의 인생. 연극이 어려운 문제를 영악하게 피해간다고 불평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토론을 계속하다보면 결국 모호한 관념어의 반복과 사상의 대립만이 남을 때가 많다. 우리는 정작 그 밑에 가라앉아 떠도는 실제 사람들을 외면하게 되기도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떠나고 남은 자리, 서로에 대한 증오와 후회와 자기혐오와 그리고 <만약에,>로 시작되는 의미없는 가정들로 점철된 불면의 밤 속에서 이들은 어떻게 삶을 이어갈까.


살아내고, 버텨내는 것이 아닌, 그럼에도 살아가는 삶. 서로가 없었다면 겪지 않아도 됐을 고통을 끌어안고 서로를 바라보며 이들은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극단 산수유가 보여줄 기묘한 여행을 기대한다.



[이채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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