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두려움을 딛고 주체적인 삶을 향해 있는 힘껏 ‘믿음의 점프’, <해피댄싱> [영화]

글 입력 2018.12.01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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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영화’나 ‘인생 드라마’를 간만에 다시 봤을 때, 예전처럼 그 작품을 사랑할 수 없던 적이 있는가?


넷플릭스에 ‘모던 패밀리’ 전 시리즈가 올라왔다는 소식이 퍼지자, 사람들은 추억 속 레전드를 정주행할 생각에 들떴었다. 그러나 대다수가 드라마를 다시 본 후 예전처럼 마냥 웃으면서 볼 수 없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시대는 변하고 사람들의 인식도 변화한다. 어느 때보다도 혐오와 차별에 민감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언피씨함은 불편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영상 매체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고 당시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증거다. 최근 개봉한 영화 <해피댄싱>을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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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로맨스명가로 잘 알려져 있다.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영화로 어바웃 타임, 귀여운 여인, 노팅힐 등 셀 수 없이 많다. 영국 로맨틱 코미디는 대체로 '유머와 감동 코드, 주인공을 도와주는 조력자들, 해피엔딩' 등의 공식을 따른다. <해피댄싱> 역시 이러한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춤'을 소재로 한 필굿무비를 지향하지만, 기존의 로맨틱 코미디와의 차별점이 돋보인다.

영화의 중년 여성이 주인공인 로맨스를 선보인다. 대체로 남녀주인공에 초점을 맞추는 다른 로코물에 비해 주변 인물들이 상당히 입체적이다. 또한 로코물이자 동시에 자립하는 여성의 서사이기도 하다. 줄거리는 이렇다. 60대 중년 여성 산드라는 평생을 아내로서 남편을 내조하고 엄마로서 가정에 충실해왔다. 그녀는 '레이디' 칭호 수여와 남편과의 크루즈 여행을 그 동안 노고의 보답으로 고대하고 있다.

그러나 남편의 은퇴식 날, 바람 현장을 목격한 그녀는 홧김에 10년 전 왕래가 끊긴 친언니네 집으로 가출한다. 자유로운 영혼인 언니 '비프'와 동거하며 춤 교실을 나가게 된 이후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인생이 그녀의 앞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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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노년의 서사가 청년층에 비해 지극히 적게 다뤄진다는 것은 최근 많이 지적되고 있는 문제다. 대중매체는 청년의 젊고 아름다운 몸, 풋풋하고 뜨거운 사랑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반면 중노년의 삶과 늙어가는 신체를 조명하는 매체는 거의 드물다. 이는 '존재 지우기'라 해도 무방하며 이들의 모습이 노출이 되어도 대개 매우 정형화되어있다. 이런 점에서 다채로운 중노년 서사의 등장은 반가운 소식이다.


<해피댄싱>의 인물들은 가벼운 만남부터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사랑까지 꽤 다양한 관계의 면을 보여준다. 로맨스뿐만이 아니라 노인 공동체와 이들의 삶을 지켜보는 것도 영화의 관람 포인트다. 이들은 자신을 잊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잊을 수 없는 추억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평생 종사한 일을 이어나가거나 쉬어가고, 그리고 다함께 춤을 춘다. 각자가 구축해온 자신의 일상을 살며 춤을 통해 삶에 대한 열정을 드러내는 모습에서 관객은 인생을 대하는 태도의 방식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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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로코물의 주인공 주변 캐릭터는 '조언자'로서 역할이 확실하게 정해져있다. 특히나 방황하는 주인공에게 필수적인 조언을 날리는 캐릭터를 이 영화에서 산드라의 언니 비프가 담당한다. 그런데 이 영화의 매력포인트 중 하나는 이런 주변인물마저 상당히 입체적으로 그린다는 점이다.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 중 하나로 뽑힐 비프는 말 그대로 ‘자유로운 영혼’이다. 프리하게 사람을 만나며 PC함을 추구하고 수영과 댄스 등 활발하게 여가를 즐기는 바이섹슈얼. 권위와 명예를 중시하며 남편에게 충성적인 삶을 살아온 산드라와는 너무나 다른 캐릭터. 그녀는 결혼 이후 너무나 변해버린 동생을 누구보다도 걱정하며 동생의 행복을 되찾아주기 위해 전략을 세운다. 필요할 때 나타나 조언이자 동시에 영화의 명언이 되는 대사를 날리는 주변인 역할에게는 꽤 디테일한 설정이다.

비혼주의자인 줄 알았던 비프가 사실은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의 상처가 컸다는 비화가 등장한다. 로코물의 개연성을 위한 뻔한 설정이기에 비혼의 이유로 대표성을 가질 수는 없지만 비혼 라이프를 사는 중년 캐릭터의 등장은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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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댄싱> 원제 ‘Finding your feet’은 ‘제자리를 잡다, 적응하다, 지랍하다’라는 뜻이 있는데, 나는 영화를 ‘자립하다’에 중점을 두어 해석하고 싶다. 산드라는 전형적인 가부장제 아래 남성에게 종속된 삶을 살아온 여성이다. 그녀는 매일 쓸고 닦는 화려한 집과 트로피를 자신의 명예처럼 대하지만 사실상 이것들은 남편의 성과이자 소유물이다. 여전히 여성은 결혼을 인생의 필수 코스로 강요받는다. 이 과정에서 여성은 남성에게 모든 것을 위탁하는 삶을 살게 되며 주체성을 빼앗긴다. 여성에게 결혼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선택지가 있지만, ‘기혼 헤태로 여성’에서 벗어난 삶은 존재해도 보이지 않는다.


이는 미디어가 다양한 여성의 삶을 조명하지 않은 탓이 크다. 그렇기에 산드라가 안정적인 노후를 버리고 자신의 선택을 믿고 제 2의 삶을 사는 것은 지나치게 낭만적이면서도 지금 여성들에게 세상에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유의미한 메시지를 남긴다. 이것이 <해피엔딩>이 정통 로코물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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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길 때 웃고 슬프게 할 때 슬픈, 영화가 이끄는 대로 감정을 따라가도 불쾌하지 않은 영화는 오랜만이다. 플롯과 각 인물의 역할이 매우 전형적이지만 노련한 배우들의 연기가 캐릭터에 활기를 불어넣어 그저 뻔할 뻔한 영화를 살렸다.


리차드 론크레인 감독은 이 영화를 인생의 2번째 기회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누구나 실패를 하지만 그 실패의 기억에 주저하다 보면 또 다른 기회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 영화 속 명언 담당 비프가 "때론 너 자신을 믿고 믿음의 점프를 해야 해"라는 대사를 던진다.


35년을 보수적이고 바람까지 피는 남자의 노예로서 트로피를 빛내는 데 열중했던 여성이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삶, 즐거운 삶, 내일을 기대하는 삶을 향해 두려움을 접고 '믿음의 점프'를 하는 이야기는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에게 필요한 이야기. 영화 <해피댄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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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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