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食일담] 맛있는 컵케이크를 찾아서, ChikaLicious!

일곱 번째 후식일담, 컵케이크
글 입력 2018.12.0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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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하다, 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디저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부드럽고 폭신한 스폰지 케이크 위에 여리여리한 파스텔 톤의 크림이 산 모양으로 얹힌다. 보기만 해도 벌써 온 몸이 달달해지고, 얼른 저 크림 속으로 포크를 찔러 넣을 생각에 무거웠던 기분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컵 하나에 쏙 담길 만큼 작은 크기의 이 디저트에는 세상의 모든 달콤함과 즐거움이 담겨있는 듯하다.

컵케이크는 머핀의 사촌쯤 된다. 머핀을 구워내 위에 버터크림이나 크림치즈*를 올리고 스프링클이나 초코칩 등 이것저것 뿌리고 꾸미면 그게 바로 컵케이크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컵에 담긴 케이크처럼 생겼는데, 이런 작은 케이크를 만들게 된 이유는 아무래도 편리함 때문이다. 가볍고, 자를 필요도 없고, 한 손으로 들 수 있고,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편하고. 그래서인지 컵케이크는 내가 먹기보다도 주로 선물용이나 파티용, 손님 대접용으로 쓰이는 디저트이다. 따라서 컵케이크가 화려하고 예쁜 외모를 갖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이렇게 컵케이크 위에 올리는 크림을 프로스팅(frosting) 혹은 아이싱(icing)이라고 부른다.

컵케이크는 예쁘다. 좀 더 고상하게 말하면 시각적 미감이 훌륭하다. 인형 같은 사람, 인형 같은 고양이가 있듯이 컵케이크는 인형 같은 디저트이다. 그래서인지 각종 디저트 카페에서 전시용 모형으로도 많이 쓰인다. 형형색색의 프로스팅과 그 위의 각종 데코레이션은 컵케이크를 따라올 디저트가 없고, 형태나 크기도 적당해서 또 한 번 예쁘다. 마카롱보다는 크고 케이크보다는 작으며, 모양의 일관성이 있어 어느 집을 가도 컵케이크의 형태는 비슷하다. 이러니 컵케이크는 디저트의 대표, 특히 예쁜 디저트를 대표할 주자로 손색이 없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후식일담 프롤로그 글의 대표이미지 역시 컵케이크였다. 나 역시 컵케이크가 ‘디저트의 예쁨’을 가장 잘 대표한다고 생각해서 선택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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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식일담 프롤로그 대표 이미지)


그런데, 맛은? 정말 맛있게 먹은 컵케이크를 기억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컵케이크는 맛보다 모양으로 먼저 기억되는 디저트이다. 확실히 일반 케이크에 비해 그렇게 많이 ‘먹히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너무 모형 같이 예뻐서 감히 먹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것도 하나의 이유겠지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맛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컵케이크는 명실상부 예쁜 디저트인 만큼 '예쁨의 보존'이 중시된다. 시간이 지나도 컵케이크의 화려한 외관이 손상되지 않기 위해선 프로스팅이 온도나 충격에 민감해서는 안 될 것이고, 그러다 보니 설탕이나 보존제를 많이 넣어 형태가 쉽게 변하지 않는 딱딱한 크림을 쓰게 되었을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맛이 없는데, 게다가 외관이 빨리 변하지 않으니 컵케이크는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진열되며 빵과 크림의 신선도가 떨어진 채 판매되고는 할 것이다. 그렇게 컵케이크는 초과된 유통기한의 푸석푸석한 맛을 내게 된 것 아닐까, 하고 맛없는 컵케이크를 먹으며 추론해봤다.

개인적으로 컵케이크가 맛없다는 이미지를 굳히게 된 건 안타깝게도 마노핀 때문이었다. 안타까운 이유는, 마노핀은 내가 아는 최대의 프렌차이즈 지하철 카페이기 때문이다. 10년 전 시작된 이 베이커리 브랜드는 이제는 웬만한 지하철 역사에 하나씩 들어오게 되었다. 마노핀의 컵케이크가 맛있었다면 거짓말 안 하고 매일 지하철 탈 때마다 하나씩 사먹었을 텐데.

그러나 마노핀에 진열된 그 아기자기한 컵케이크들이 나와는 그다지 맞지 않았다. 포크로 찌르면 조각조각 부서지는 크림, 학교 앞 매점에서 파는 빵 마냥 기분 나쁘게 꾸덕한 머핀. 그런 컵케이크를 먹으며 아, 원래 컵케이크는 보기에만 예쁘지 신선하지도 맛있지도 않은 디저트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마노핀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머핀 전문점이지, 컵케이크 전문점이 아니다. 아마 머핀과 커피 메뉴는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안 먹어봐서 정말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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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핀의 컵케이크)


나쁜 첫인상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디저트도 그렇다. 컵케이크와의 실망스러운 첫 만남을 계기로 나는 더 이상 컵케이크를 찾지 않았다. 백화점 지하 1층에 보석처럼 진열되어있는 가지각색의 컵케이크들을 봐도 별 감흥이 없었다. 오히려 너무 예뻐서 너무 맛없을 것 같다는 생각뿐이었다. 디저트 하면 누구나 떠올릴 만큼 예쁘지만 정작 맛이 없는, 그야말로 속 빈 강정 아니 속 빈 디저트였다.

그러나 성급한 일반화는 언제나 위험하다. 내가 먹은 컵케이크를 바탕으로 컵케이크라는 일반 명사를 정의해버린 건 내 디저트 이력의 치명적인 흠집이었다. 몇 년 뒤 나는 진짜 맛있는 컵케이크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럴 때 나는 아직 세상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이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나 같은 사람의 선입견을 깨 줄 만큼 맛있는 디저트를 만들고 있다는 희망. 멀리 다른 세상까지 갈 필요도 없고, 그저 홍대 골목을 조금 헤매기만 하면 된다. 컵케이크 전문점 치카리셔스(ChikaLicious)이다.



치카리셔스(ChikaLicious), 진짜 맛있는 컵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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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카리셔스를 알게 된 건 한창 합정·상수 부근이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떠오를 무렵이었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나 역시 홍대 주변의 시끌시끌한 분위기에만 익숙해져 있던 터라, 바로 옆에 이렇게 조용하고 분위기 있는 멋진 골목과 카페들이 있었다는 건 놀랍고도 반가운 사실이었다. 안 그래도 카페와 디저트 전문점을 사랑하는 나에게 이는 축복과도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후 술집과 클럽으로 포진된 홍대를 떠나 합정역과 상수역 사이의 골목들을 거닐며, 예술적인 인테리어로 눈길을 끄는 카페들과 바쁜 발길을 붙잡는 개성 있는 디저트들을 하나하나 음미하고는 했다.

그 날도 나는 상수역 근처 골목을 헤매던 중이었고, 길을 잃어서 조금 난감해하던 차에 우연히 치카리셔스와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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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어야만 찾아올 수 있는 집이다. 무슨 해리포터 마법의 집도 아니고 이게 무슨 소리냐 싶겠지만, 나에겐 정말 마법의 집 같았다. 이 집을 찾아갈 때면 꼭 한 번씩 골목을 잘못 들기 일쑤였고, 딱히 이 집을 갈 생각이 없이 헤매다 보면 어느 순간 나타나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 집을 찾아갈 때면 늘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이 든다. 물론 진짜 보물은 가게가 아니라 가게 안에 있는 컵케이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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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카리셔스의 컵케이크는 정말 맛있다. 다른 어떤 수식어로도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그냥 진짜 맛있다. 맛별 메뉴별 편차도 거의 없다. 아니 아예 없다. 다 맛있기 때문에 본인 취향대로 맛을 고르면 된다.

치카리셔스의 컵케이크가 그렇게 맛있는 이유는 바로 프로스팅에 있다. 이곳 프로스팅의 식감은 다른 어떤 집도 따라할 수 없는, 절대적인 부드러움을 자랑한다. 포크를 찔러 넣으면 내가 무언가를 찌르고 있긴 한 건가 의심스러울 정도이고, 입으로 베어 물면 마치 구름처럼 입 안을 채웠다가 순식간에 녹아 사라진다. 자세히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버터크림과 크림치즈 둘 다 쓰는 것 같은데, 둘 모두 아주 신선한 크림만이 낼 수 있는 부드러운 풍미를 머금고 있다. 치카리셔스의 컵케이크는 디저트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지킨다. 신선함.

이 맛있는 크림을 즐기기 위한 한 가지 주의사항이 있다. 절대 냉장보관 하지 말고, 꼭 상온 보관 후 가급적 구매 당일에 먹을 것. 냉장고에 들어가는 순간 온도에 민감한 프로스팅이 순식간에 딱딱해지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것대로 맛은 있지만 조금 느끼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이 집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그 식감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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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카리셔스의 시작은 2003년, 뉴욕 맨해튼에서였다. 수많은 빌딩과 찻길 사이에 있는 뉴욕 본점은 한국 지점과는 달리 컵케이크 전문점은 아니고, 고급 디저트들을 다양하게 다루는 집이다. 짐작했다시피 치카리셔스(ChikaLicious)라는 이름은 오너 셰프 'Chika Tilman'의 이름과 '맛있다(delicious)'의 합성어이다. 자기만의 디저트 철학을 고수하며 쾌활하게 일하는 셰프 Chika의 모습이 참 인상 깊었다. 매일 아침 메뉴를 구상하고 그날의 신선한 재료로만 디저트를 만드는 오너 셰프의 철학이 저 멀리 바다 건너 한국 지점에도 튼튼히 뿌리내리고 있다. 올해로 벌써 다섯 개째, 2014년부터 꾸준히 블루리본*을 받아온 치카리셔스 컵케이크의 높은 수준이 지켜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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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리본 서베이 : 우리나라 최초의 레스토랑 평가·안내서. 한국의 미슐랭 가이드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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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카리셔스는 사랑스러운 집이기도 하다. 수준 높은 맛을 자랑하지만 고급 디저트 전문점 특유의 위화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치카리셔스는 늘 새로운 메뉴를 만든다. 대표 메뉴인 레드벨벳과 당근 케익 등 대여섯 가지를 제외한 나머지 메뉴들은 매장을 방문할 때마다 바뀌어 있다. 특히 계절과 기념일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여름이면 시원한 해변가를 떠올리게 하는 피나콜라다 컵케이크를, 겨울이면 눈 속의 통나무집이 생각나는 노엘 컵케이크를 선보인다. 새해, 설, 어버이날, 할로윈, 심지어 수능까지 챙겨주는 따뜻한 마음이 담긴 컵케이크도 만든다. 예술작품과도 같은 이곳의 컵케이크들에선 배색과 디자인, 장식 등을 끊임없이 고민한 흔적이 묻어난다. 치카리셔스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행복해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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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컵케이크를 찾아 떠난 이 방랑자는 이제 치카리셔스에 정착했다. 혹시 더 맛있는 컵케이크를 아는 사람이 있다면 꼭 알려주시길. 기꺼이 새로운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전까지는 누가 내게 컵케이크의 맛을 묻는다면, 나는 구름 같은 그 프로스팅을 떠올리며 답할 것이다.

ChikaLicious!


사진 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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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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