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찬란하게 눈부신 풍경으로 영원을 노래하는 바다 [도서]

장 그르니에의 산문집, <지중해의 영감>
글 입력 2018.12.01 19:0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프랑스의 작가 알베르 카뮈. 그의 소설 <이방인>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처음엔 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지만, 책장을 한 페이지씩 넘기면 넘길수록 심상치 않은 작품임을 느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라고 시작하는 충격적인 소설의 첫 문장. 책장을 덮고는 지워지지 않는 잔상에 한참을 허우적거렸다.

그리곤 얼마 뒤 카뮈의 또 다른 대표작 <페스트>를 읽었다. 무겁고 절망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내용 탓에 책장은 쉽사리 넘어가지 않았지만, 중간중간 그가 던지는 질문은 나를 다시 한번 고민하게 했다. 인간 존재에 대해, 우리의 삶에 대해. 카뮈가 더욱 좋아졌고, 그가 점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달은 우리에게 늘 똑같은 한 쪽만 보여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 또한 그러하다. 그들 삶의 가려진 쪽에 대해 우리는 짐작으로밖에 알지 못하는데 정작 단 하나 중요한 것은 그쪽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문장을 보았다. 이토록 통찰력 넘치는 문장이라니. 이 책은 장 그르니에의 산문집 <섬>에서 나온 문장이었다. 너무 인상 깊어서 노트에 필사를 했던 기억도 난다. 얼마 뒤 장 그르니에가 카뮈의 스승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프랑스의 저명한 에세이스트이자 철학가였던 장 그르니에(Jean Grenier). 인간 존재와 삶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으로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던 사람이다. 알제리에서 카뮈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철학 선생님으로 부임하여 둘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섬>의 서문은 카뮈가 작성하였는데, 서문을 읽다 보면 그 누구라도 당장 이 책을 읽고 싶게 만든다. 길거리에서 <섬>을 몇 줄 읽다 말고는 가슴에 품고 조용한 곳에서 온전하게 읽으려 자신의 방으로 달려갔다던 스무 살의 카뮈. 비록 카뮈는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섬>이 출판되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그 짧은 서문만으로 그르니에가 카뮈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이자 스승이었는지 실감하게 한다.





카뮈의 서문 이후 이어지는 산문 형식의 글. 사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인간의 존재와 철학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고민했던 그르니에의 흔적들. 그러나 그의 문장은 인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인간의 고독과, 희로애락과, 선함과 악함 같은 것들. 그중 여행에 관한 어떤 문장은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사람들은 여행이란 왜 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언제나 충만한 힘을 갖고 싶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아마도 일상적 생활 속에서 졸고 있는 감정을 일깨우는 데 필요한 활력소일 것이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한 달 동안에, 일 년 동안에 몇 가지의 희귀한 감각들을 체험해 보기 위하여 여행을 한다. 우리들 마음속의 저 내면적인 노래를 충동질하는 그런 감각들 말이다. 그 감각이 없인 우리가 느끼는 그 어느 것도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마음속의 노래를 불러일으키는 여행. 우리의 숨어있던 감각과 정신을 일깨우는 여행. 그르니에가 남긴 저 문장은 내가 여행을 하는 와중에도 계속 곁에 남아 마음을 일렁거리게 만들었다. 맑은 정신과 열린 마음으로 여행이 선물할 모든 걸 흡수하도록 도와줬다.


지중해의영감-입체표지.jpg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위해 미리 정해진 어떤 장소들이, 단순한 삶의 즐거움을 넘어 황홀함에 가까운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어떤 풍경들이 존재한다"



장 그르니에의 또 다른 대표작 <지중해의 영감>. 이 책은 앞서 언급한 <섬>과 함께 시적이고 명상적인 그르니에의 감성과 사유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손꼽힌다.

그르니에는 이 산문집에서 자신이 방문했던 이탈리아, 북아프리카, 프로방스, 스페인, 그리스 등 지중해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는 프랑스 북서해안 지역 브르타뉴 지방에서 성장하였는데, 대서양을 맞대고 있는 이 지역은 안개와 바람이 끊이지 않아 흐린 풍경이 매일같이 이어지는 곳이다. 그랬기에 그르니에가 마주한 밝고 푸르른 남쪽 바다 지중해는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을 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그는 눈부신 찬란함과 영원을 암시하는 황홀감을 느꼈다고 한다.

나도 지난여름 이탈리아 남부 해안가를 여행한 적이 있다. 그곳은 지중해의 보석이라 불리는 포지타노라는 지역이었는데, 반나절이라는 짧은 시간 머물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찬란한 풍경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평생토록 푸르게 파도칠 것만 같은 드넓은 바다와, 뜨겁게 달궈진 모래자갈들,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의 강렬한 햇살. 그리고 해안가를 둘러싼 알록달록한 건물과 풍경. 지상에 이런 곳이 존재한다는 게 충격일 만큼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 도서는 카뮈의 열렬한 독자이자 연구자인 불문학자 김화영 교수에 의해 번역되었다. 그는 카뮈와 그르니에의 많은 작품들을 번역하기도 했다. 지중해에서의 짧지만 황홀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며, 그르니에의 기록을 쫓으며 지중해가 건네는 상념 속으로 빠져들고 싶다.


*


지중해의 영감
- INSPIRATIONS MÉDITERRANÉENNES -


지은이: 장 그르니에
옮긴이 : 김화영
출판사 : 이른비
쪽수 : 240p
발행일 : 2018년 6월 30일
정가 : 15,000원


에디터 임정은 이름표.jpg
 

[임정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