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끝에서의 시작, 12월 1일 [사람]

마지막 12월을 어떻게 보낼까? 하노이에서의 한달을 되짚어보다
글 입력 2018.12.0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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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열두달 365일



1년이 뭐라고, 한 해가 뭐라고 나이를 꼬박꼬박 먹는게 웃기다. 노력 없이 공짜로 먹을 수 있는 건 나이밖에 없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었는데 그 말이 딱 알맞다. 야속하리만큼 빠르게 흘러가는 것이 시간이고, 먹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하나 더 얹어지는 게 나이다.

언젠가 삶을 견딤에는 하루하루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썼었다. 이 노력의 증거-견딘 삶의 증거는 결국 나이로 나타나는데, '삶을 살아왔다'라는 말은 마음에 드는 반면 '나이가 들었다'라는 말은 어쩐지 아쉽고 불안하다. 그래서인지 한 해의 마지막 달, 12월이 과히 반갑지는 않다. 12월이 시작되었다는 이 저녁의 기분만으로도 가슴이 움찔거릴 정도이니.

12월 1일은 끝에서의 시작이다. 2018의 마지막을 알리는 12월이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한 달의 일수가 더 적거나 길진 않다. 이제껏 2018년의 지나온 열한달처럼 31일을 꽉 채우고나서야 12월은 2018년과 함께 막을 내릴 수 있다. 지나가 버릴 나이와 2018년이 아쉬워 12월 한 달을 어떻게 보낼지 곰곰이 생각하다 문득, 비슷한 고민을 했던 하노이에서의 한 달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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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하노이의 순간




8/17-9/17 HANOI



8/17에서 9/17까지. 좋은 기회가 생겨 베트남 하노이에서 한 달 동안 살며 여행과 일을 하게 되었다. 한달이라는 시간이 어느곳을 알기에 참 짧다 생각이 들면서도,한 학기의 삼분의 일 가량이고, 한국의 기온이 10도를 넘나드는 기간이며 하노이의 야시장이 네 번이나 열림을 알고나면 꽤 길기도 하다.

되는대로 사는 인생에 한 달 까짓거, 못갈게 뭐 있나 싶었는데 막상 한 달을 떠나려 하니 포기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한국에서 하는 일을 제대로 다 참석하지 못하고, 또 다른 좋은 기회를 잃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얼굴 맞대고 이야기하지 못하며, 한국의 여름이 가을로 바뀌는 선선한 저녁 밤의 바람을 못 만나겠다는 아쉬움을 떠안아야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포기한 것들 만큼이나 베트남에서 얻어갈 무엇이 많을 걸 감히 기대하는 마음으로 떠났다.

하노이에서 한 달 동안 지내며 경험 한바, 생각한바, 바뀐 모습은 너무나도 많지만 '한 달'이라는 시간에 집중해 기억을 되살려보았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꼭 지나가지 않을 것 처럼 길게만 보였는데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하노이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을 맞이했다. 번쩍, 정신이 깨어나고 본능적으로 아침임을 깨달았다. 잠의 중간에서 문득 깨어났기를, 아직 새파란 새벽이기를 바랬지만 이미 해가 중천에 떠오른 아침임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눈을 뜬다면 정말로 아침임을 경험하게 될 것 같아 무작정 얼굴을 이불에 파묻었다. 동그랗게 이불을 말고 있으니 어둡고 따듯했다. 그대로 눈을 뜨니 어둠만이 시야를 차지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불 속이 아무리 어둡고 밤 같더라도 이미 아침은 성큼 다가왔음을. 하노이에서 마지막에서 맞이하는 아침임을.

하노이에서의 한 달을 시작하는 첫날. 막연한 기대감과 크기를 모를 정도의 불안감이 내 가슴에 가득했다. 그토록 바라왔던, 아주 짧은 기간이지만 외국에서 '살아' 본다는 경험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싶은 마음이 컸었던 때였다. 무언가 꼭 기억에 남는 일을 해야지, 이왕 다녀오는 거니 한층 더 성장해서 돌아와야지 하는 생각에 한 달의 계획을 혼자 꼼꼼하게 세워놓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괜한 셈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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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의 수필을 읽으며, 하노이 기찻길 마을에서



막상 하노이에서 며칠을 지내다 보니 아무런 생각도 없이 어떤 의미 있는 행동도 하고 있지 않는 내가 보였다. 한국을 떠나왔지만 '나'는 여전히 미래에 무얼 할지 고민 중인 애매한 휴학생일 뿐인데도 어쩐지 한 달만은 이렇게 지내도 괜찮겠다는 막연한 안도감이 자꾸만 고개를 들었다. 책을 몇 권이나 읽겠다는 생각으로 야심 차게 깔아놓은 도서관 어플이 며칠째 열리지 않고 있더라도 피천득의 수필을 한 번이라도 다 읽으면 괜찮지 않을까, 무얼 할지 정하지 않아도 하고 싶은 게 생기기만 하면 괜찮지 않을까, 매일의 포스팅을 완수하지 못하더라도 기억에 남을 만큼 많은 생각과 감정을 담아간다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생각의 끝에 모든 계획과 부담감 기대감을 놓고선 하루가 가는지, 이틀이 가는지도 모르게 하노이에서의 한 달이 흘러갔다.




그래서, 하노이에서의 한달이랑 12월 한달이



무슨 관련이냐고? 앞 내용을 읽었다면, 12월 한 달 또한 2018의 마지막이라는 이유로 특별한 기대감과 사명감을 지니고 보낼 필요가 없다는 나만의 여유로운 깨달음을 알 수 있다.

하노이에서의 한 달을 정말로 끝마치는 한국 행 비행기 안에서 눈을 감았을 때 떠오르는 상념들은 커다래진 생각들도, 달라진 새로운 모습도 무언가 거대한 삶의 목표도 아니었다. 한순간 나를 밀치고 지나가는 그리움과 함께 매끈한 야자수 이파리가 바람에 출렁이는 흔들림이, 먼 산 연기가 피어오르듯 올라오는 뭉게구름이, 부끄러움 한 점 없이 배를 시원하게 내놓은 베트남 아저씨들이, 세 뼘 남짓 엉덩이 하나 걸칠 오토바이에서 신선놀음을 하는 할아버지들이, 삼각 농을 쓴 무뚝뚝한 표정의 아주머니들이, 신-짜오- 한마디에 이를 보일 정도로 해맑게 웃어주는 그 아주머니들의 솔직함이 스쳐지나갈 뿐 이었다.

이 모습들이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 기억들을 가졌다는 하나의 행복에 베트남에 다녀옴을 후회하지 않는다. 2018년도, 2018년의 끝인 12월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삶은 어떤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문득 저 사람과 대화를 하고 싶어지는 욕심이, 새로운 노래를 듣기 직전의 호기심이, 해보지 않은 일을 문득 도전할 때의 무모함이 모두 한가지 이유만을 위해 귀결하지 않는다는 당연함처럼, 삶에서의 많은 행동은 그 행동의 이유보다는 행동을 하고 난 뒤의 결과로 인해 스스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비로소 어떠한 의미로써 존재한다. 2018년을 뒤돌아보는 순간 가장 많이 떠오르는 시간은 가장 가까운 12월의 시간이다. 그러나 이 때 떠오른 기억이나 변화들이 나를 더 대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지 못할지라도, 나는 행복했기에 기억과 변화를 다시금 떠올릴 수 있으며 떠올릴 수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기뻐하리라, 그렇기에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리라 확신한다.

그러니 늘 지내던 나 처럼, 늘 지내던 자신처럼 12월 한달을 보내보자.

끝에서의 시작 12월 1일의 다짐.



[김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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