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하늘에서 떨어지는 흰 눈이 하나의 위로가 되다. [문학]

글 입력 2018.12.03 00:1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올해 마지막 달인 12월이 시작되었다. 일하는 카페에는 벌써 아기자기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창문에 잔뜩 붙어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설레기는커녕 벌써 한 해가 지나감에 우울감만 깊어지는 걸 보면 이제 걱정 없이 마냥 해맑던 시절은 확실히 지났음을 인지하게 된다. 이럴 때 거리를 걸으면 괜히 바람이 더욱 차고 날카롭게 몸을 파고드는 것 같고, 그래서 더욱더 몸을 움츠리며 땅만 보고 걷게 된다. 마침 금방 해가 져 이른 시간임에도 어둑어둑해진 하늘을 바라보면 세상 우울하고 씁쓸하다. 센치해질대로 센치해져서 집에 가자마자 괜히 작년 새해목표를 적어놓은 일기장을 펴봤다. 대부분 못 지켰다. 알고 있긴 했는데 직접 두 눈으로 내가 쓴 목표들을 보니 못 지킨 게 정말 기분이 나빴다. 작년에 반성으로 끝낸 한 해를 또 반성으로 끝내게 생겼다.

이럴 때 보면 12월은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참 좋은 달인 거 같다. 11월은 한 해가 끝나가는 것이 아직 실감이 안 나고, 1월은 희망이 가득한 달이니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자신감이 충만해지기 쉽다. 그 사이에 있는 한 해의 막달, 12월에만 죽을 맛이다. 문득 1년 가까이 쌓아왔던 피로감이 갑자기 몸을 한없이 짓누르는 듯 금방이라도 무너질 거 같은 아찔함이 엄습해오기도 한다. 정처 없이 핸드폰 화면을 누르기를 반복하는데, 눈동자는 초점을 잡지 못한 채 어딘가를 바라보는 시간이 생겨난다. 신경은 예민한듯하면서 무심하고 호흡은 가쁘면서도 지나치게 느리다. 발끝부터 스멀스멀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이 올라온다.

그럼에도 작년부터 어느새 나는 스스로 회복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연말에 친한 지인들을 만나면, 다 같이 잔을 들어 ‘올해도 수고했어!’라는 말과 함께 건배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때마침 밤하늘에 흰색의 고운 눈이 내려주고, 흰 눈을 보면 유독 생각이 나는 작품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걸로 유명한 한강의 「흰」이라는 작품이다. 온 세상이 '흰 것'으로 뒤덮이는 연말이 될 때, 회의감과 우울감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도록. 12월에 이 작품을 추천하고 싶다.



결코 더럽혀지지 않는, 밝고 아름다운 것, '흰'에 대한 이야기


13.jpg
 
 

「흰」은 ‘흰’ ‘그녀’ ‘모든 흰’이라는 부제 아래에 세상의 흰 것들에 대한 65개의 이야기들을 담아낸 작품이다. ‘강보. 배내옷, 파도, 달떡, 안개…’등과 같이 한강이 작성한 흰 목록들을 제목으로 단 각각의 이야기들은 짧고 간결하게 서술되어 마치 산문을 읽는 느낌을 준다.



내 어머니가 낳은 첫 아이는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죽었다고 했다. 달떡처럼 얼굴이 흰 여자아이였다고 했다.

- 20쪽, 배내옷中

그 아이가 살아남아 그 젖을 먹었다고 생각한다.
악착같이 숨을 쉬며, 입술을 움직이며 젖을 빨았다고 생각한다.
.
(중략)
그리하여 그녀가 나 대신 이곳으로 왔다고 생각한다.
이상하리만큼 친숙한, 자신의 삶과 죽음을 닮은 도시로.

- 38쪽, 그녀


'흰 것'에 대한 이야기는 '나'와 '그녀'의 시선으로 서술된다. 「흰」은 한강의 자전적 이야기가 어느정도 반영되어있어, 여기서 '그녀'는 서술되어있는 것처럼 한강의 죽은언니라고 볼 수 있다. 나의 존재와 그녀의 존재가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 그 사이의 경계를 파고들어 그녀를 탄생시키고 그녀에게 삶에서 가장 깨끗하고 밝은 흰 것들을 주려고 한다.


[크기변환]10.jpg
 

엉망으로 넘어졌다가 얼어서 곱은 손으로 땅을 짚고 일어서던 사람이, 여태 인생을 낭비해왔다는 걸 깨달았을 때,
씨팔 그 끔찍하게 고독한 집구석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이게 뭔가, 대체 이게 뭔가 생각할 때
더럽게도 하얗게 내리는 눈.

*

눈송이가 성글게 흩날린다.
가로등의 불빛이 닿지 않는 검은 허공에.
말없는 검은 나뭇가지들 위에.
고개를 수그리고 걷는 행인들의 머리에.

- 54쪽, 눈송이들 中


'흰 이미지'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눈이 내리는 겨울이 올 때까지 끈질기게 지켜봤다. 눈이 오기 전의 모든 것들을. 눈발이 비치지 않는 상점 유리창, 눈에 덮이지 않은 행인들의 머리칼, 낯선 이마와 눈에 스쳐가는 비스듬한 빛들을. 그러므로 그녀는 눈이 내리기 시작할 때 사람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눈을 바라보는 것을 발견한다. 엉망으로 넘어졌다가 일어서던 사람이 “여태 인생을 낭비해왔다는 걸 깨달았을 때”, 눈이 내린다는 것을 발견한다.



1980년 이곳에서 만들어졌다는 흑백영화 한 편을 그녀는 보았다.

주인공 남자는 일곱 살에 아버지를 잃고 조용한 성품의 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했다.

(스물아홉 살의 젊은 아버지는 동료들과 히말라야를 등반하다가 조난당해 시신을 찾지 못했다.)

성년이 되어 어머니를 떠난 그는 결벽적인 만큼 윤리적인 태도를 지니고 살아가게 되는데, 선택의 순간마다 어째서인지 히말라야의 설산에 눈이 내리는 압도적인 풍경이 그의 눈을가리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그는 누구도 쉽게 내리기 어려운 결정을 하고, 그 결과 끊임없이 고초를 겪는다. 부패가 만연한 시대 분위기 속에서 혼자서 뇌물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받으며 나중에는 린치까지 당한다. 결국 모함에 빠져 직장에서 쫓겨난 뒤 혼자 돌아온 방에서 생각에 잠겨있을 떄, 아득한 설산의 계곡과 봉우리들이 그의 시야를 가득 채운다. 그가 갈 수 없는 곳.

얼어붙은 아버지의 몸이 숨겨진,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얼음의 땅.


- 56쪽, 만년설



그리고 주인공이 사회의 폭력과 유혹이 담긴 선택을 강요받을 때마다, 히말라야설산의 압도적인 풍경이 눈을 가려 신념을 지키게 되는 영화를 보게 된다.



[크기변환]1.jpg
 

얼어붙은 거리를 걷던 그녀가 한 건물의 이층을 올려다본다.

성근 레이스 커튼이 창을 가리고 있다.

더렵혀지지 않는 어떤 흰 것이

우리 안에 어른어른 너울거리고 있기 때문에, 저렇게 정갈한 사물을 대할 때마다

우리 마음은 움직이는 걸까?

새로 빨아 바싹 말린 흰 베갯잇과 이불보가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거기 그녀의 맨살이 닿을 때, 순면의 흰천이 무슨 말을 건네는 것 같다.

당신은 귀한 사람이라고, 당신의 잠은 깨끗하고 당신이 살아 있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잠과 생시 사이에서 바스락거리는 순면의 침대보에 맨살이 닿을 때

그녀는 그렇게 이상한 위로를 받는다.


- 71쪽, 레이스커튼



또 다른 흰 것. 레이스 커튼과 순면의 흰 천은 고결해 보이는 깨끗함과 부드러운 촉감으로, 더럽혀진 몸을 씻기우듯 맨살을 보듬는다. 흰 색으로 온몸을 감싸고 잠이 드는 것. 어쩐지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든다.




'흰 것'의 근원적 이미지



그러나 눈이 마냥 아름답고 포근하게 내리는 것만은 아닌 듯, 흰 것이 마냥 아름답고 밝은 것은 아니다.  진눈깨비는 순식간에 사라지면서도 온 몸을 축축하게 적신다. 눈보라는 두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하게 할 정도로 적대적으로 휘몰아친다.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맞으며 힘겹게 걷는 그녀는 알 수 없었다. “대체 무엇일까, 이 차갑고 적대적인 것은? 동시에 연약한 것 사라지는 것,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이것은?”



[크기변환]287032.jpg
 
 
그녀는 수없이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마치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파도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동안 우리 삶이 찰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소금은 무언가를 썩지 못하게 하고 상처를 소독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상처에 뿌리게 되면 고통을 준다. 물과 물이 만나는 경계에 서서 마치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파도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동안, 우리 삶이 찰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또렷하게 만져진다.  보름의 달을 볼 때마다 그녀는 사람의 얼굴을 보곤 했다. 그 생각에 잠긴 거대한 흰 얼굴에서 스며나오는 빛을 보는 것과 동시에 거대한 캄캄한 두 눈에서 배어나오는 어둠 속을.



그럴 때 거울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그녀 자신의 얼굴이라는 사실이 서먹서먹했다.

얇은 종이의 하얀 뒷면 같은 죽음이 그 얼굴 뒤에 끈질기게 어른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버린 적 있는 사람을 무람없이 다시 사랑할 수 없는 것처럼, 그녀가 삶을 다시 사랑하는 일은 그때마다 길고 복잡한 과정을 필요로했다.


- 98쪽, 얇은 종이의 하얀 뒷면 中


당신의 눈으로 바라볼 때 나는 다르게 보았다. 당신의 몸으로 걸을 때 나는 다르게 걸었다.

나는 당신에게 깨끗한 걸 보여주고 싶었다. 잔혹함, 슬픔, 절망, 더러움, 고통보다 먼저,

당신에게만은 깨끗한 것을 먼저. 그러나 뜻대로 잘되지 않았다. 종종 캄캄하고 깊은 거울 속에서

형상을 찾듯 당신의 눈을 들여다봤다.


그때 그 외딴 사택이 아니라 도시에 살았더라면. 어머니는 성장기의 나에게 말하곤 했다.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갈 수 있었더라면. 당시 막 도입되었던 인큐베이터에 그 달떡 같은 아이를 낳었더라면.


그렇게 당신이 숨을 멈추지 않았다면, 그리하여 결국 태어나지 않게 된 나 대신 지금까지 끝끝내

살아주었다면. 당신의 눈과 당신의 몸으로, 어두운 거울을 등지고 힘껏 나아가주었다면.


- 118쪽, 당신의 눈



'나'는 그녀, '당신'에게 흰 것을 통해 삶의 밝은 부분만을 주고 싶었지만 '흰 것'에 어둠과 죽음이 공존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흰의 근원적 이미지는 백목련의 어원이 ‘텅 빔과 흰빛, 검음과 불꽃’인 것처럼, 애초에 생명과 빛만이 아니라 죽음과 어둠 또한 가지고 있었다. 삶은 죽음과 결코 분리될 수 없었다. 당신이 눈이 현재 살아가고 있는 '나'와 죽은언니인 '그녀', 즉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결국은 삶과 죽음을 모두 껴안은 것처럼.




'흰 것'이 전하는 메세지, 삶의 아름다움




사람들은 왜 은과 금,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광물을 귀한 것으로 여기는 걸까?

일설에 의하면 물의 반짝임이 옛 인간들에게 생명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빛나는 물은 깨끗한 물이다. 마실 수 있는 -생명을 주는- 물만이 투명하다.

사막을, 숲을, 더러운 눞지대를 무리지어 헤매다가 멀리서 하얗게 반짝이는 수면을 발견했을 때

그들이 느낀 건 찌르는 기쁨이었을 것이다. 생명이었을 것이다. 아름다움이었을 것이다.


- 87쪽, 반짝임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죽음과 분리될 수 없음에도 흰 것이 가지고 있는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있다. 지쳐서 넘어지는 순간, 눈이 내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게 하는 것.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순간, 수천수만의 반짝임을 만들어내는 것. 사막에서, 숲에서, 더러운 늪지대에서 하얗게 반짝이는 수면이 존재 한다는 것. 삶 속에 흰 것이 있다는 것. 그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은 생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삶을 나아갈 수 있는 위로와 용기를 준다.



당신의 눈으로 흰 배춧속 가장 깊고 환한 곳, 가장 귀하게 숨겨진 어린 잎사귀를 볼 것이다.

낮에 뜬 반달의 서늘함을 볼 것이다.

언젠가 빙하를 볼 것이다.

각진 굴곡마다 푸르스름한 그늘이 진 거대한 얼음을, 생명이었던 적이 없어 더 신성한 생명처럼

느껴지는 그것을 올려다볼 것이다.

자작나무숲의 침묵 속에서 당신을 볼 것이다.

겨울해가 드는 창의 정적 속에서 볼 것이다.

비스듬히 천장에 비춰진 광선을 따라 흔들리는, 빛나는 먼지 분말들 속에서 볼 것이다.

그 흰, 모든 흰 것들 속에서 당신이 마지막으로 내쉰 숨을 들이마실 것이다.


- 129쪽, 모든 흰



더 나아가 흰 것에 존재하는 서늘함과 고통.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침묵했던 죽음들에 대한 애도까지 이어진다. '죽지마, 죽지마라 제발' 죽은 언니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나'의 어머니가 꾹꾹 눌러 내뱉었던 말을 이제 '나'가 하얀 백지에 꾹꾹 눌러쓴다. 죽지 말아요. 살아가요.






어느 추워진 아침 입술에서 처음으로 흰 입김이 새어나오고, 그것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 우리 몸이 따뜻하다는 증거. 차가운 공기가 캄캄한 허파 속으로 밀려들어와, 체온으로 덮혀져 하얀 날숨이 된다. 우리 생명이 희끗하고 분명한 현상으로 허공에 퍼져나가는 기적.

 

- 72쪽, 입김



추워지면 입김이 나온다. 그리고 그건 연말이 다가온다는 의미기도 했다. 그것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기에 숨을 쉴 때마다 허연 입김이 길게 퍼져 흩어지는 것이 참 공허해보이기도 했다. 일년이 지나간다는 생각에 짊어진 책임감은 더욱 무겁게 느껴졌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다른 환경과 나의 환경을 비교하는 것이 더 심해지곤 했다. 그래서 어느순간부터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을 보면 또 겨울이 오고 해가 지나간다는 것에 인상을 찌푸리기 바빴던 거 같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입김이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기적이라고 한다. 작품 속 '모든 흰'이 빚어낸 이미지가 내가 보는 모든 '흰 것'들을 바꾸어 놓았다. 차가운 공기 중으로 흩어져나가는 뜨거운 입김을 보면, 어두운 밤하늘에 흰 눈이 떨어지는 광경을 보면, 죽지말고 살아가라는 이 작품이 생각이 난다. 겨울이 와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이 하나의 위로가 되어 또 무사히 한 해를 보내게 만들어준 작품. 지금의 삶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고 희망을 느끼게 만들어준 작품이다.





김량희.jpg
 

[김량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