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DC에서의 마지막 날 풍경 [해외문화]

첫 떙스 기빙 연휴
글 입력 2018.12.04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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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럽지만 익숙해진 뉴욕의 사이렌에서 벗어나, DC의 차분한 무채색과 낙엽에 파묻힌 지 3일째. 이번 연휴 동안의 6번째 책을 펼쳐 든다.


오후에는 다시 뉴욕으로 떠나야 하는 촉박한 아침 시간이지만, 사이렌과 클락션 소리가 없어서 그런지 시간이 가는 게 체감 상으로는 뉴욕보다 3배는 느리다. 하지만 빨리 감기 버튼이라도 누른 듯 야속한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 추운 날씨에 버스를 한 시간 동안 기다렸지만 정말로 10분처럼 느껴졌다. 하루 종일 말을 거의 안하고 먹기만 해도 하루가 지나간다는 걸 눈으로 확인한 날들… 가장 힘들었던 현실의 순간에서 도피하러 간 쿠바에서 만난 인연과, 일상에서의 또 다른 도피를 했다. 미국 온 뒤로 가장 안정되었고 편안했던 시간이었다.


쿠바를 배경으로 찍은 드라마 “남자친구”의 트레일러를 보던 중, 여행 때 300불을 도난당했던 말레꼰 비치의 그 자리를 봤을 땐 아찔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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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의 관광 중심부에 들어서고 혼자서 ‘뮤최몇?(뮤지엄하루최대몇개?)’ 최고치를 달성하러 열심히 돌아다녔다. 저번에 왔을 땐 버스 시간이 일찍이었어서 내셔널 갤러리 밖에 못 봤기 때문.


스미스 소니언 아메리칸 히스토리부터 시작했다. 그러다 너무 오랜만에 느껴보는 배고파서 정신이 아찔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번 연휴 동안 편안해진 마음 덕분에 집을 잃어버렸던 식욕이 두 배가 되어 찾아왔다. 와퍼 라지세트를 거뜬히 먹어도 적정한 체중을 유지했던 시기보다 더 먹었다. 훠궈 3인분을 혼자 먹어도 더 먹을 수 있었다. 폭식이라 생각도 못할 만큼 행복하게 먹었다.


그리고 배도 그걸 반겼는지 올해 초 어느 시기부터 느껴지던 음식이 들어갈 때마다 특유의 속 따가움도 없이 계속 소화해냈다. 푸드 트럭에서 파는 핫도그를 역시나 길에 앉아서 그렇게 행복하게 먹었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꼬맹이가 탐내는 건지 핫도그 하나를 너무 맛있게 우걱우걱 먹는 내가 신기한 건지 그러한 눈빛으로 빠안히 쳐다봤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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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는 스미스 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에 갔다. 해양 파트에서 조금 헤매다가 내 주된 목적인 대형 코끼리 모형을 봤다. 나도 왼팔 소매를 힘껏 걷어 올리고 안쪽에 내가 보도록 새겨진 코끼리 타투인 ‘끼리’를 인사시켜줬다.


코끼리의 종에 대한 설명과 진화도도 봤다. 인도 여행 때 마주했던 심연으로 빠뜨려 버리는 눈과 살짝만 스쳐도 느껴졌던 피부의 두께가 생생하게 살아났다. 그 다음엔 포유류, 공룡 등등 여러 관을 빠르게 둘러보고 나왔다.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신나서 돌아다니는 풍경에 내내 피식피식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기념품 샵에서 새로운 코끼리를 들이려했지만 예쁜 아이가 없어 못 데려온 게 한이지만.





다음엔 카페도 잘되어 있고 미국에서 손꼽히는 현대 미술관인 허시혼 뮤지엄에 갔다. 매우 인상적인 pulse(심박수) 전을 보고 깊이 감명 받았다.


사람들의 심박 수를 측정해 전체의 조명을 빛나게 하고, 물결을 움직이고 빛의 파장으로 전시 공간을 채워나갔다. 그 안을 지나가는 관람객들은 마치 그 심박 수의 주인공의 안에 들어가 같이 그 리듬과 움직임을 공유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하면서. 그저 당연하고도 병원의 누군가에겐 간절한 것이지만 그걸 공간으로 표현해내고 평생 만날 일 없을 사람들을 그 순간만큼은 하나로 느끼게 한다는 게 생각보다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심장 소리는 아주 까마득히 어린 시절 엄마로부터 들은 뒤로는 웬만큼 가까운 연인 또는 친구 사이의 것이 아니면 나의 것조차 인지도 못하고 지낸다. 무언가 생각이 팍 튀어 오르거나 영감이 마구 마구 샘솟는 전시는 아니었지만 한 번 세게 얻어맞은 듯 머릿속 한 군데를 얼얼하게 하는 전시였다.





시간이 없어서 인디언 박물관과 아프리칸 박물관은 못가지만 아프리카 미술을 보고 싶어 그 옆의 박물관으로 향했다. 그러다 버스 시간이 촉박해 출발 3분 남기고 우버 기사와 분노의 질주를 찍은 뒤 버스 문이 닫히는 걸 잡아서 겨우 타고 갔다.


미국 버스 특유의 꾸울렁거림과 큰 엔진소리, 낡은 천장에 굵은 빗방울이 부딪혀 나는 둔탁하지만 끊이지 않고 빠르게 잔잔한 소리, pulse 전시를 떠올리게 하는 약간 칭얼거리는 2살 정도의 아기와 그의 등을 토닥거리며 달래주는 엄마의 속삭임, 옆으로 지나가는 얇고 가늘게 쭉 뻗은 나뭇가지들, 그 아래 바닥엔 떨어져 갈색으로 변해가는 나뭇잎들을 더 빠르게 변하라고 재촉하는 빗방울과 물웅덩이들, 한껏 젓은 양말과 신발을 분리시켜 말리며 보는 바깥, 미국 특유의 썬팅이 되지 않아 투명하고 큰 창문의 생김새 덕에 파노라마 티비를 보는 것 같다.


이 순간이 영원하기만을 바랄 뿐. 매일 끼고 다니던 헤드폰도, 무엇을 고민하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저절로 내려놓게 만드는 그런 가장 좋아하는 경이롭고 영적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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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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