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혼마라비해?

3개국의 경계에 선 '자이니치'의 삶을 담다.
글 입력 2018.12.04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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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부터 일본에서 살아온 사람들. 남북이 갈라서고, 사상이 나뉘는 것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 한민족의 뿌리를 가졌지만 일본의 문화가 익숙한 사람들. 그들의 나라는 어디일까. 자이니치,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말한다. ‘나는 조선의 피를 가진 조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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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혼마라비해?>는 ‘극단 실한’의 두 번째 연극으로, 현대사회 속 소외되는 다양한 인간상에 주목하고 있다. 첫 작 <레라미 프로젝트>에서 성소수자를 향한 사람들의 적나라한 폭력을 드러냈다면, 이번 연극에서는 한국과 일본, 북한의 경계에 위태롭게 서있는 재일교포, 즉 자이니치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고 있다.



 

혹시... 간첩이세요??



<혼마라비해?>는 작가 '영주'가 일본의 한 극단에서 번역 작업을 돕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들이 향한 곳은 재일교포들이 함께 모여 사는 오사카의 츠루하시. 그녀는 그곳에서 배우로 일하는 재일교포 '지숙'의 도움으로 함께 '만세상회'라는 슈퍼에서 하숙을 시작한다. 재일 교포 '광식'이 운영하는 만세상회에는 가수를 꿈꾸는 아들 '현규'이 함께 살고 있으며, 현규에게 한글을 배우기 위해 슈퍼를 찾는 중학생 '우진'도 함께 한다. 영주는 만세상회에서 생활하며 펼쳐지는 상황들을 극으로 재연한 것이라 소개하며, 이야기 속에서 '영주'라는 캐릭터 자신이 되기도 하며, 상황을 설명해주는 해설자로 분하기도 한다.

 

그들의 환대 속에서 시작된 저녁식사. 영주는 정많은 사람들의 따스한 마음에 기뻐하며 집을 둘러보던 중 소스라치게 놀란다. 집에는 떡하니 김정일과 김일성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영주는 떡하니 외친다. '혹시 간첩이세요?' 그들은 웃으며 말한다. '우리는 한민족이다.' '우리는 북한인도, 남한인도 아닌 그저 조선인일 뿐이다.' 그들의 웃음 속에는 남모를 씁쓸함이 담겨 있다.


 


독도입니까, 다케시마입니까.



거리에서는 혐한 시위가 극성을 피운다. 말로만 듣던 헤이트 스피치를 목격하기도 한다. 가수를 꿈꾸던 현규는 오리콘 차트 5위에 오를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지만, 한 무례한 MC가 TV 프로그램에서 '독도입니까. 다케시마입니까.'라고 묻자 순간 당황해서 대답하지 못하고, 그렇게 추락한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비난을 피하지 못하자 결국 그는 귀화를 선택한다.

 

극중에서는 지숙과 영주의 싸움 장면이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만큼 중요한 내용이리라. '조선'의 국적을 가진 지숙은 북한에 대해 호의적이다. 그들의 사상이 옳다고 여기고, 심지어는 '장군님'이라는 칭호까지 아무렇지 않게 사용한다. 일본에서 살고 있는 그녀인데, 왜 그렇게까지 북한에 호의적일까. 왜 그렇게까지 북한의 사상교육을 옹호할까. '대한민국' 사람인 나는 이 부분이 매우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불편함도 지숙의 울부짖음에 의해 연기가 되어 사라진다.

 

북한은, 3국의 애매한 경계에 서있는 그들에게 유일하게 '동포'라는 말을 사용했다. 조선 학교를 지어주고, 그들이 한글 교육을 지속하도록 도왔다. 한국은 자이니치들의 입국 자체를 금지하지만, 북한은 그들의 방문을 친절히 맞았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해주는 자신의 동포들을 욕하는 것이 상처로 다가왔다.




"혼마라비해?" - 3국의 언어가 만들어낸 차별 없는 세상


 

지숙과 현규는 돌연 ‘라트비아’라는 나라로 떠난다. 그사이 우진은 한국으로 건너와 무사히 대학을 졸업한다.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우진은 영주를 찾아와 그들의 소식을 전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혼마라비해?’

 

라트비아는 동양인이 거의 살지 않는 나라이다. 어쩌면 지숙과 현규는 이리저리 흔들리며 상처받을 바에는 애당초 자신들의 출신이 중요치 않은 곳에서 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곳의 지숙과 현규는 우진에게 전화해서 이렇게 말했다. ‘혼마라비해?’ 일본어로 ‘정말’의 뜻을 지니고 있는 ‘혼마’와 ‘좋다’라는 뜻의 라트비아어 ‘라비’와 한국어 ‘해?’가 섞인 말이다. 혼마라비해? 정말좋아? 잘 지내? 이런 뜻인 셈이다.


자신들이 피가 흐르는 언어, 자신들이 한평생 내뱉은 언어, 그리고 현재 자신들에게 삶을 제공해주는 곳의 언어. 이 모든 것이 뒤섞인 이 말은 이 연극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대변한다. 끝끝내 조선 국적을 포기하지 않은 광식 아저씨나, 노력했지만 차별에 지쳐 귀화를 결정한 지숙과 현규나, 한국에서 배움을 택한 우진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누가 그들을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애매모호한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꿈꾸며 질문한다. '혼마라비해?'

 

마지막에 홀로 남은 광식이 아저씨는 TV를 튼다. 마침 한일전 야구가 진행중이다. 씁쓸히 말한다. '아무나 이겨라.’ 끝내 자신의 국적을 포기하지 않은 채 홀로 남은 광식이 아저씨. 누가 그의 정체성을 대변해 줄 것인가. 누가 그의 마음을 헤아려 줄 것인가. TV를 보는 광식이 아저씨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작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은 존재한다.



작품의 작가 영주가 작품 속에서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설명하는 것은 분명 참신한 설정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한 아쉬움이 존재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일단 극중 밥을 먹던 도중 대뜸 간첩이냐고 물을 정도로 굉장히 눈치가 없는 캐릭터이다. 이는 아마도 자이니치에 대해 무지한 대다수의 한국인들을 잘 표현하고자 만든 설정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캐릭터의 성격 때문인지 극중 영주는 지나치게 오버스럽고, 감정적이었다. 때문에 오히려 그녀의 설명이 등장할 때마다 주관적인 감상을 깨뜨리게 되어 몰입감이 떨어졌다. 영주가 조금은 덜 오버스러웠다면, 조금은 자신의 감정에 덤덤했더라면 오히려 더욱 깊은 여운이 남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든다. 물론 이는 내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평일 뿐이다. 누군가에겐 오히려 이런 부분이 더욱 극에 몰입하게 만드는 요소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마냥 즐거운 연극은 아니다. 오히려 보고 나면 어딘가 찜찜하고, 불편할지도 모른다. 몰랐으니까. 우리가 인연을 끊을 때 북한은 그들을 전폭적으로 도왔다는 사실을. IMF 위기가 왔을 때 그들이 온 마음을 합쳐 성금을 모았다는 것을. 그들이 마음대로 한국을 방문할 수 없다는 것을. 이러한 사실을 깨우치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자이니치’의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해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연극의 가치는 충분하다.


소외된 인간상에 주목한다는 극단 실한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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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본지 이틀이 지났는데도 온갖 생각이 허공을 맴돈다. 혼마라비해? 그들은 정말 잘 지내고 있는지 묻고 싶어졌다.

 




[유다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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