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갈증》 악(惡)에 대한 관심의 필요를 논하다 [도서]

글 입력 2018.12.04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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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증>은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통해 먼저 접한 바 있다.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워낙 자극적이고 충격적이라고 악명이 자자해 익숙한 작품이다. 추악한 것을 가감 없이 드러내기 때문에 보기 거북하다는 것이다. 대체 어느 정도길래 영화를 본 사람마다 진저리를 치는지 궁금했다. 사람을 난자하는 살인범이 나오거나 무자비하게 이승의 사람들을 데려가는 귀신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스크린에 ‘악’을 정의한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금단의 열매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볼 엄두가 나지 않아 끝끝내 볼 수 없었다. 이번에 원작을 읽고 싶었던 것도 영상보다는 글을 통해 이야기를 접하면 충격이 덜 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악(惡)에 대하여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악하다는 전제는 역사를 지배한다. 성경에 따르면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부터 대대손손 선천적으로 악하게 태어나게 되어 있다. 성악설은 기원전 동양에서도 존재했다. 중국의 사상가 순자는 무려 맹자의 성선설에 대항하여 인간은 본래 악하다고 주장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영악하게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고 많은 이들은 역시 성악설이 옳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악을 이상하리만큼 낯선 것처럼 여기는 것일까? 나도 누군가에겐 악한 인간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악과 전혀 무관한 사람도 아니지만 마치 나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생경한 것인 것처럼 취급한다. 사실 너무나도 익숙한 것인데 말이다. 이처럼 누구나 심연에 있는 악(惡)의 감정을 꺼내어보면 방금까지도 제 마음속 깊숙이 자리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참을 수 없는 언캐니(uncanny)를 느낀다.

 

<갈증>은 인간에게 당연히 내재하지만 외면하고 싶은 어둠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인간은 모두 멋없고 더러운 갈증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고 하면 지나친 일반화일까? 고독, 증오, 질투, 열등감…. 밖으로 드러낼 수 없고 드러내도 안 되는 욕망에 대해서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짜증스럽게 되뇌고’ 더듬어나가며 동화로 머무는 이야기가 되기를 거부한다.

   


아내의 불륜 상대를 폭행하고 경찰을 퇴직한 후지시마 아키히로. 경비 회사에 근무하는 어느 날 헤어진 아내의 전화를 받는다. 딸 가나코가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름한 얼굴, 가녀린 몸 그리고 색깔이 엷은 커다란 눈동자. 가나코의 방을 뒤지던 후지시마는 여고생 신분에 잠깐 즐기는 기분으로 소유할 양이 아닌 다량의 각성제를 찾아내는데……. 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가나코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무엇과도 섞일 수 없는 검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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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에 관한 예찬에 가려져 중요성이 폄하되는 그림자의 가치를 거듭 논했지만, 여기서 다뤄지는 것은 그늘 수준이 아니다. 누군가를 짓이기고 밟아 그 위에 올라서고자 하는, 그야말로 인간의 가장 밑바닥을 보여주는 ‘악’이다. 딸의 베일이 하나씩 벗겨지며 딸의 진실된 모습이 드러날 때, 사실 아버지의 초라한 껍데기도 하나씩 벗겨지고 있다.


딸을 찾아 나서는 아버지의 폭력적인 모습이 폭로될 때면, 딸을 찾으려는 부모의 애절한 마음이 거칠게 나타나는 것뿐이라고 치부하기엔 무리인 것처럼 보인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교훈을 찾긴 어렵다. 미화하고 싶어도 미화할 수 없고, 나의 마음과 동일시하고 싶지도 않은, 그 어떤 색과도 섞일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검은색이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가?

 


술기운을 빌려 화를 내며 몇 번 방문을 걷어찬 적이 있었다. 그는 딸하고 어떻게 대화를 시도해야 하는지 몰랐다.


- 38p


 

아버지가 자신이 몰랐던 딸의 모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을 그리는 이야기라지만, 사실은 몰랐던 아버지 자신의 모습이 거울 비치듯 보일 뿐이다. 딸의 흔적을 하나씩 발견할 때마다 아버지는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자신이 세운 벽 너머 방치한 것에서 걷잡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자라나 통제할 수 없는 악이 되었다는 것을 통절하게 느낀다.

   

그러나 그것은 해피엔딩을 향해 달려가기 위한 성찰의 과정이 아니다. 그저 파렴치하고 지저분한 괴물의 속성을 들춰내는 것뿐이다. 그래서 그늘의 가치를 찾아가는 행위와는 다르다. 중요한 것은 괴물을 만들어낸 것이 누구인지 집요하게 탐색하고 그 역할을 독자에게도 부여해야 한다는 점이다. 책을 끝까지 읽고 책장을 덮는 순간, 그 괴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다름 아닌 척박하고 무관심한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는 우리 인간, 더 나아가 우리가 의미 없이 세운 벽으로 중첩됐을 뿐이면서 안정적인 척 겉치레하는 사회라는 건물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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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이 계속해서 세워지는 동안 그 벽을 무너뜨리기 충분한 괴물은 모두의 무관심 속에 스멀스멀 자라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나조차 나의 것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갈증을 되돌아보며 시대가 갈구하는 무언가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싶다. 악으로 점철된 사회가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그 시작을 되짚어 보기 위해 본격적으로 악과 직면하고자 한다.






제목: 갈증(원제: 果てしなき渇き, Hateshinaki Kawaki)

지은이: 후카마치 아키오(深町秋生, Fukamachi Akio)

옮긴이: 양억관

출판사: 도서출판 잔

발행일: 2018년 5월 21일

정가: 1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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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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