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늘도 우리가 '환상'을 말하는 이유_로베르트 슈만 환상 소곡집 [음악]

손열음의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와 함께
글 입력 2018.12.05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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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우리가 ‘환상’을 말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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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꿈. 꿈의 얽힘.

퍽이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들이었다. 요 근래, 아니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 거의 사용하지도, 들어보지도 못한 단어들이었다. 환상과 같은 단꿈이라, 단어 자체에 배인 낭만적인 분위기는 팍팍하기만 한 요즘 대학생들의 삶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 보인다. 매일 매일 학교 생활을 비롯한 ‘해야 하는 것들’에 치여 나가떨어지는 내 자신과 친구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국을 떠나자’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한국을 떠나있다가 돌아온 지 1년 밖에 되지 않은 나 역시 ‘이제 다시 한국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면 ‘우리 나라가 참 헬 조선이긴 하구나’ 하는 생각에 가끔 피-식하고 헛웃음을 짓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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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창가의 여인"


독일의 낭만주의 사조를 좋아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예술에 대한 나의 관심은 철저히 미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대자연 앞에서 경이로워지는 사람의 나약함을 표현한 카스파르 프리드리히의 그림을 보고 열광하지만, 독일의 낭만주의 음악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지난 주 수업 시간에 만난 ‘로베르트 슈만’이라는 음악가는 이 독일 낭만주의 음악의 대표자 격이라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낭만주의라고 하면 대개의 사람들은 형식에 얽매인 고전주의에 지쳐서 나타난 예술사조라는 해석을 가져다 붙인다. 꿈을 좇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며, 달콤하고 부드럽다. 낭만주의 경향이 뒤이어 자리를 내준 예술 사조가 냉혹한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사실주의란 점을 감안해보면, 낭만주의는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지친 상태의 사람들이 잠깐 쉬어가는 일종의 도피처 역할을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팍팍한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달고 단 꿈처럼 말이다.

환상 소곡집의 여러 곡 중 대번에 나를 사로잡은 곡은 ‘꿈의 얽힘’이라는 제목의 곡이었다. 곡도 곡이지만 정확히는 우리 말로 번역된 ‘꿈’과 ‘얽히다’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손열음 피아니스트에서 논하던 ‘단 꿈’이라는 단어와 함께. 각 언어에는 고도로 밀집되고 응축된 감각의 덩어리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한 가지 아쉬운 건, 독일어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개인적으론 영어의 Dream’s Confusion이란 해석은 한국어 단어가 주는 느낌에 비해서는 다소 기계적인 느낌이라 아쉬웠다) ‘얽히다’라는 단어는 이리 저리 벌어진 틈 바구니 속에서 옴짝달싹 할 수 없이 발이 묶여버린 상태를 이야기한다. ‘사로잡히다’와는 느낌이 다르다. 사로잡힌다는 건 누군가의 매력과 힘에 응해 저항할 의지를 잃고 무기력하기 순응 해야 하는 느낌이라면, 얽혔다는 표현은 여러 길이 뻗어나가는 황야의 한복판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은 채 망연히 바라보고만 있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는 보이지 않는 묘령의 팔들이 나를 붙잡는 그런 느낌이다. 사로잡힌다라는 표현보다는 수동성이 덜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능동적이지는 못한 상태를 표현하는 말. 그래서 a tempo라는 음악 용어와 단 꿈이라는 단어를 엮어서 이야기하는 그 문장에 시선이 갔다. 단 꿈에 얽혀있는 사람은 완전히 사로잡힌 것이 아니기에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나아갈 여지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꿈에서 깨어나기 싫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기에, 그리고 그 스스로도 이제는 깨어나야 함을 알기에 굳이 슈만은 a tempo라는 말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굳이 팍팍한 현실을 일깨우기 보다는, 환상의 끝자락을 잡은 사람에게 조금 더 편안한 열락을 주고 싶기 때문일 테다.





환상. 이 단어는 굉장히 멀지만 가까운 단어다. 우리는 많은 일들에 로망을 지니고 환상을 품는다. 대다수의 현실은 시커먼 실체를 숨기고 있지만, 그런 팍팍한 현실을 버티게 하는 건 작게나마 환상이 실현된 낭만을 느끼는 순간들이다. ‘낭만은 사치다’. 맞는 말이다. 먹고 살기 바빠 죽겠고, 생활비에 월세를 걱정 해야 하고, 과제와 시험, 학점, 토익, 인턴, 해외연수, 외모, 그 놈의 스펙 스펙 스펙까지 고민 해야 하는 세상에서 낭만은 사치다. 정말 시간을 잘 맞춰야 일 년에 한 두 번 친구들을 볼 수 있다. 매번 만날 때마다 우리 6개월만이야, 1년만이야를 감탄사처럼 외치지만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앞으로는 더욱 더 보기가 어려워 질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 해서 약속 시간을 잡고 틈날 때마다 서로를 보려고 한다. 친구 관계뿐만 아니다. 취직 시장에 나설 때 연봉과 취직 가능성을 두고 치열한 눈높이 싸움을 하지만 여전히 그 가운데에는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이 있다. 헬조선을 떠나겠다는 발언도 결국은 사람을 옮아 매는 현실 속에서 온전한 ‘나’를 찾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사람들은 환상과 낭만을 사치라 일컫지만, 늘 환상과 낭만을 놓지 않는다. 이 단어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낭만과 환상은 어찌하던 삶을 버티게 하는 존재고 많은 사람들이 꾸는 꿈이기 때문이다. 아마 앞으로도 이 단어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낭만주의가 지나고 사실주의가 왔듯이, 낭만에 들뜬 이후 우리는 현실을 마주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현실에 무너지기 보단 다른 환상을 찾고 이를 위해 그 현실을 버틴다. 새로운 환상과 새로운 현실, 둘은 반복되는 변주로 세상을 굴리고, 사람은은 그 변주 속에서 한 발짝씩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뿐이다.


A tempo!

슈만은 ‘원래의 속도로’ 라는 이 단어를 감추었지만, 나는 외치려고 한다. 현실을 인식하고서도 나아갈 사람들을 믿기에. ‘냉정한 현실주의자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꾸자’라는 체 게바라의(체 게바라가 했다고 알려져 있는) 문장을 믿기에. 그렇게 오늘도, 우리는 환상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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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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