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방을 기억하다. 나를 기억하다. [기타]

글 입력 2018.12.05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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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방을 "사람이 살거나 일을 하기 위하여 벽 따위로 막아 만든 칸"으로 정의한다. 벽 따위로 막힌 칸. 그렇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문을 통해서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밖과 물리적으로 단절된 공간을 우리는 방이라고 부른다.

오늘날 대부분 사람은 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먼 옛날 우리의 조상들에겐 방이라는 개념이 희미했을 것이다. 기껏해야 주방이나 변소 같은 용도에 따른 구분만이 뚜렷했다.(그 또한 현대 들어서 서재·침실·옷방 등 더욱 세분화 되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왜 사람들은 공간을 여럿의 칸막이로 나누기 시작했을까. 누군가는 이를 개인주의와 연결한다. 스스로를 하나의 우주로 여기고, 각자 자신만의 가치를 추구하게 되면서 지내는 공간 역시 '나'만의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식이다. 때문인지 방은 나를 가장 잘 드러내는 곳이기도 하다. 책장에 꽂힌 책, 액자 속 사진, 방문에 걸어둔 포스터, 어질러진 책상 등 어쩌면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은 가족도 친구도 아닌 '나'의 방일지도 모른다. 남의 방을 들아가기 전에 방을 두드리는 것 또한 타인의 세계에 발을 들이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를 표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방은 나를 작은 세계에 격리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넓은 바깥을 무시한 채 좁은 방을 만들어 그 안의 안락함에 만족한다. 가족 간의 소통이 줄어들고 사회와의 유대가 옅어진다. 그 우물에 갇힌 사람은 히키코모리와 같은 사회 부적응자가 되기도 한다. 이 밖에도 단순히 아늑한 휴식을 위한 장소, 자신을 숨기는 도피의 장소 등 방이 가지는 얼굴은 다양하다. 어떤 의미로든 방은 각각의 정체성을 지닌다. 방이라는 공간이 흥미로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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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방 #룸 #한양빌라,401호

영화 <룸(2015)>은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방을 그린다. 열일곱 소녀 '조이'는 한 남자에게 납치되어 방에 갇힌다. 그녀는 그 안에서 아들 '잭'을 낳고, 둘은 5년간 서로를 의지하며 버텨낸다. 우여곡절 끝에 세상과 단절된 지 7년 만에 그녀는 그 감옥을 빠져나온다.

하지만 영화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7년간의 공백은 방을 나온 조이에게 또 다른 고립을 안겨주었다. 사이좋은 부모님, 해먹이 있는 정원 등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갈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부모는 이혼했고 사회는 그녀를 조용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엄마로서의 책임감을 질타하는 등 그녀를 몰아세우기까지 한다. 7년의 절망을 견뎠던 조이가 방을 벗어났음에도 결국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이르렀을 때, 그 방의 지옥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음이 분명했다.

반대로 잭은 방을 탈출한 후로도 가끔 그곳을 그리워한다. 잭에게 방은 엄마와 자신만의 세상이자 부족함을 느낄 수 없었던 세상이었다. 조이의 모든 것을 앗아간 7년의 방과 잭의 온 세상이었던 5년의 방이 같은 공간이었음은 참 아이러니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들은 그 방을 다시 찾는다. 조이는 오랜 악몽과의 작별을, 잭은 고향과의 작별을 고한다. "Bye, room." 둘 모두 새로운 시작을 위한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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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단편영화 <한양빌라, 401호(2016)>는 일상의 방을 다룬다. 한 남자가 여자의 소개를 받으며 방을 구경한다. 옥탑에 위치하여 천장이 지붕 모양으로 기울어져 있으나 그녀의 공예품, 작업도구와 그럴듯하게 어울린다. 각종 전자제품은 낡았고 방음도 제대로 되지 않으나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약간의 불편함이 주는 친숙함이 느껴진다. 남자는 그곳에서 살기로 한다. 시간은 곧바로 2년 후를 보여준다. 이젠 남자가 방을 소개한다. 같은 구조, 같은 옵션이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기울어진 천장은 방을 좁아 보이게 하고, 낡은 가전품은 지저분하기만 하다. 방을 보러 온 커플은 그대로 그곳을 떠난다.

똑같은 한양빌라 401호이지만, 지낸 사람에 따라 극명히 달라진 방의 모습은 많은 상상을 불러낸다. 남자가 보냈을 2년의 세월을 단지 몇 컷의 방 풍경만으로도 느낄 수 있음이 신선했다. 문득 내가 지내온 방들이 떠올랐다. 나의 시간이 물든 방은 처음과 얼마나 변해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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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방

지금껏 살아오며 오롯이 나 혼자만의 공간이었던 3개의 방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방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넓은 아파트로 이사를 오며 가지게 되었다. 10년에 가까운 세월을 보낸 그곳에는 초중고 졸업앨범은 물론이고 헤진 일기장, 오래된 문제집 등이 가득하다. 나의 역사가 가장 잘 드러나는 장소이다. 때문인지 지금도 그곳은 나에게 가장 편안한 장소 중 하나다. 마치 오랜 친구와 함께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독립한 지금도 어머니께서는 비어있는 방을 청소하신다. 주인 잃은 침대는 계절이 바뀜에 따라 이불보를 달리 입는다. 덕분에 드문 방문에도 그곳은 항상 온기를 품고 있다.

두 번째 방은 대학교 복학 후 20대 중반을 보낸 한평 채 되지 않는 작은 고시원 방이다. 창문이 없어 불을 끄면 밤낮구분을 할 수 없었고, 방음도 안 돼 옆방의 전화 소리가 생생히 들렸다. 공용주방에서 홀로 라면을 끓여 먹고, 샤워하기 위해 앞사람을 기다리는 생활이 다반사였다. 시험전날 밤을 새우다 잠을 깨러 옥상에 올라 달을 보던 일도, 후회와 미련은 없다고 포장한 첫사랑에 아파하며 문을 걸어 잠그던 일도 있었다. 2년 남짓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두 번째 방에는 어느 때보다도 짙은 기억을 많이 남겼다.

마지막 세 번째방은 지금 지내고 있는 방이다. 직장 때문에 타지로 떠나 방을 구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이 방은 첫 직장의 설렘과 타지생활의 두려움이 뒤섞인 나를 매일같이 안정시켜 주었다. 누군가가 말하길 "우리가 오래 살아온 공간에는 상처가 있다."고 했지만 적어도 지금까진 지친 나를 다독여주는 안식처의 역할이 더욱 두드러졌다. 상처의 기억보다 치유의 기억이 뚜렷한 곳이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 치료하기 힘든 깊은 상처 또한 자연스레 흔적을 남을 테지만 그에 대한 걱정은 적다. 그 또한 나의 기억이고 나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한 켠을 담을 곳이기에 나는 이곳을 포함하여 과거의 방, 앞으로 만날 방 또한 아낄 수 밖에 없을 거 같다. 내가 나를 미워하기 힘들 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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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동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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