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새롭고도 보편적인 책의 생태계 [도서]

도서 <책문화생태계의 현재와 미래> Review
글 입력 2018.12.06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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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린 시절 우리 엄마는 내게 책 선물을 자주 해주셨다. 그냥 책이 아니었다. 맨 첫 번째 장에 엄마의 손 글씨가 새겨진 세상에 하나 뿐인 책이었다. <나의 아낌없는 오렌지 나무>에는 ‘우리 민재도 아낌없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새겨져 있었고, <12살에 부자가 된 키라>에는 ‘우리 민재도 이렇게 돈 관리 잘 했으면 좋겠다(?)’고 새겨져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엄마 덕분인 것 같다.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것은 아무래도 책보다는 그 앞에 적힌 엄마의 손 글씨였을 테지만, 그 호감은 결국 책까지 전이되어 아직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만약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이와 똑같이 할 것이다.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에게 자필 편지만큼 큰 선물이 또 있을까.) 하여튼 그렇게 나는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 주변 친구들은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책 읽는 것을 나처럼 부담 없이 받아들이는 친구가 많지 않았다는 말이다. 책 읽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면 고리타분한 모범생 정도로 바라보는 친구들의 눈빛이 싫어서 책 읽는 것을 티내지 않으려고 했던 기억도 난다. 그게 초등학생 때의 일이었다. 이미 초등학생 때부터 내 친구들은 책을 읽는 행위를 그다지 친숙하게 느끼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비난 내 친구들 뿐만이 아니라 초등학생 전체의 범위로까지 있을 듯하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많은 학생들이 책 읽는 것을 ‘고리타분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잘못했다는 것이 아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국영수 중심으로 미친 듯이 사교육을 돌려대는 대한민국의 교육이 잘못한 것이다. 내 초등학생 시절을 되돌려 봐도 학생들이 책과 친해지도록 만들기 위한 학교의 시도는 그저 피상적인 것, 혹은 허울뿐인 것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오직’ 엄마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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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사람들의 연간 독서량이 매년 줄어들고 있으며 출판업계가 잘 굴러가지 않고 있다는 식의 뉴스는 들어도 그다지 놀랍지도 않았다. 이토록 책과 친해질 수 없는 분위기를 조성해 놓았으니 출판업계가 점점 작아지는 것은 사회가 자초한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책문화생태계의 현재와 미래>를 읽으면서 놀랐던 이유는 바로 이 지점 때문이었다. 이 책은 책문화생태계에 닥친 위기의 원인을 그저 대중과 사회의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좌담에 참석한 출판업계의 전문가들은 위기의 원인을 업계 내부에서도 짚어보는 진중한 자중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제가 마케팅을 하면서 시장에서 독자들을 만나보면 독자들은 출판업계에 많은 불신을 갖고 있거든요. ... (중략) ... 이렇게 독자들에게 불신하게 만든 원인은 베스트셀러에 집착하는 등 과도한 성과주의에 집착하면서 독자를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한 출판계에 있죠. 이제부터는 출판 정책을 펴나가고 책문화생태계를 형성해 나갈 때 독자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고 봅니다. (p. 36)

저는 송인서적 문제를 놓고 볼 때 지진이 일어나면 초기에 징후가 나오듯이 송인서적도 수개월 전부터 징후가 충분히 나왔다고 봅니다. ... (중략) ... 출판사들이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책들을 많이 만들고 있지만, 출판업계는 솔직히 데이터 분석도 미약하고 구시대적 방식을 지금도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p. 83)





어딜 가나 마찬가지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이 이것이었다. 책문화생태계가 가진 문제와 세태는 영화산업의 그것과 분명 닮은 구석이 있었다. 첫 번째는 ‘대기업 중심’이라는 점이다. 영화산업에서도 많은 문제의 원인은 대기업의 스크린 독과점에 있다. 대한민국의 극장은 90% 이상이 대기업 소유의 멀티플렉스이다. 가뜩이나 스크린에서 독과점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 기업들이 수직계열화까지 해서 본인들이 제작/배급한 영화를 스크린에 내다 거니 영화의 다양성은 점차 줄어들고 관객의 선택권 역시 점차 좁아지는 기현상이 발생한다.

출판 시장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교보문고, 영풍문고 등으로 대표되는 대형서점들이 독과점의 형태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며 이는 책의 유통과 마케팅의 과정에서 발전을 저해하는 불합리한 결과를 낳고 있었다. 이들 대형 서점이 쉽게 말해 ‘판을 치다’보니 서구권 국가에서는 너무나도 흔한 개성 있는 독립서점들이 쉽사리 명맥을 유지할 수도 없었다.

독립서점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움찔움찔했다. 사실 독립서점을 가본 적이 정말 손에 꼽기 때문이다. 책을 좋아한다고 나름 자부하던 나 역시 자주 들르는 곳은 대형서점 뿐이었다. 영화 좋아한다고 하면서 멀티플렉스만 주구장창 찾던 꼴이었던 것이다.


20년 가까이 출판계에서 일한 사십 대 초반 여성 편집자는 출판사에서 일하는 여성들 100%가 모두 성폭력을 경험했을 거라고 말하더군요. (p. 286)



어딜 가나 마찬가지라고 느낀 두 번째 이유는 ‘성 불평등’ 때문이었다. 도서산업 역시 영화산업과 마찬가지로 ‘좁은’ 시장이다. 피해자들은 그 좁은 시장에서 피해 사실을 밝히면 자신과 닿아 있던 모든 연들이 순식간에 끊어져 본인의 커리어마저 끊길까봐, 책에서의 표현에 의하면 ‘밥그릇 뺏길까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피해 사실을 숨겨야 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 피해자가 되는 쪽은 여성 쪽이다. 출판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인권을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업계 전문가들이 모여 논의하는 모습은, 비록 현재에는 많은 개선이 필요할지라도, 분명 고무적이었다.

영화계에서도 미투 운동을 시발점 삼아 본격적으로 인권 관련 담론들이 행해지고 있다. 여담이지만, 이러한 현황을 가만 보다 보면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깨끗한 자리를 넘겨주기 위해 노력하시는 선배들의 모습이 보여 정말 감사하다. 영화계고 출판계고, 쉽게 말해 ‘더럽다’는 것을 굳이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몇몇 선배님들의 노고로 인해 점차 나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기에 그딴 더러움 때문에 내 꿈을 져버리지는 말자고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

결국 이 책은 책에 대한 책이면서 동시에 시장에 대한 책이다. 출판사에서부터 소/도매상, 서점, 도서관, 독서 동아리까지 말 그대로 ‘책 문화 생태계’ 안에 있는 모든 요소들을 엮어낸 이 책 안에서 많은 새롭고도 익숙한 것을 보고 들었다. 출판 산업을 만나려고 책을 읽었는데 영화 산업이 엿보이다니. 결국 산업이라는 틀 안에서는 많은 것들이 닮아질 수밖에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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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문화생태계의 현재와 미래
- 책문화교양 시리즈 제1권 -


기획
출판저널
책문화생태계연구소

펴낸곳 : 카모마일북스

분야 : 인문

규격
140mm * 210mm

쪽 수 : 320쪽

발행일
2018년 11월 11일

정가 : 25,000원

ISBN
978-89-98204-54-9(04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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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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