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삶을 증오하면서도 사랑했던 한 청년의 이야기 [도서]

문지 스펙트럼, 도서 <이별 없는 세대>
글 입력 2018.12.06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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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지성사에서 출간된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 이 시리즈는 이번에 새롭게 리뉴얼되어 달라진 표지와 함께 독자들을 찾아왔다. 책은 작고 아담하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번에 새로이 발간된 5권 중 하나인 이별 없는 세대. 책은 작가의 짧은 단편들과 몇 개의 시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짤막한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여러 생각거리를 남긴다.

작가 볼프강 보르헤르트(Wolfgang Borchert)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시를 쓰고 이후 배우 활동을 하던 청년이었지만,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군인으로 징집되어 혹독한 전쟁을 겪고 가혹한 생활로 병을 얻어 26살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해야만 했다. 그의 작품들은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작성되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선 전쟁이 남긴 폐허와 무력감, 죽음에 대한 허무주의적 태도, 상실감, 고독감 등이 주요한 주제가 된다.


지금은 웃고 있어도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이별을 피할 길이 없는, 우연 속에 무책임하게 내던져진 인간의 존재에 대해 끝없이 소리치며 절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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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인간에게 남긴 참혹함이
여과 없이 드러나 있다.


그런데, 그의 시선은 어딘가 특별하다.

전쟁과 폐허로 얼룩진 그의 인생. 삶은 그의 젊음을 내버려 두지 않았고, 자유를 억압하며 행복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괴롭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비극에 절망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군인 활동 중 경험한 비리를 기록한 편지가 발각되어 감옥에 수감되었어도, 오직 자신만 남아 견디기 힘든 고독 앞에서도, 탈주에 성공하였지만 혹독한 전쟁으로 인해 얻은 병으로 죽음을 앞둔 상태에서도, 그는 우연히 발견한 민들레 한 송이로 어린아이처럼 기뻐한다. 절망 속에 피어난 희망들에 기뻐한다. 그는 삶을 증오하면서 동시에 사랑했다.



"목을 매달아? 내가? 내가 목을 매달다니, 원 세상에! 너는 도대체 내가 이 삶을 그럼에도 사랑한다는 걸 모르겠어? 나는 이 찬란하고 뜨겁고 무의미하고 정신 나간 이해할 수 없는 이 삶을 남김없이 떠 마시고 들이켜고 핥아 맛보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두 짜낼 거야!" (지붕 위의 대화 中)



"아니에요, 인생이란 빗속을 달리고 문고리를 붙잡는 것 그 이상이에요. 인생이란 빗속을 달리고 문고리를 붙잡는 것 그 이상이에요. 인생은 말이에요, 두려움을 갖게 되는 것이에요. 기쁨도 가지죠. 기차에 깔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기차에 깔리지 않았다는 기쁨. 계속 걸어갈 수 있다는 기쁨이지요. (도시 中)



"온 집안이 기침 소리로 가득하다. 그러나 밤꾀꼬리는 온 세상 가득히 노래를 부른다. 힌슈 씨는 폐에서 겨울을 떨쳐낼 수가 없다. 라일락이 보랏빛으로 가지에서 흘러내린다. 밤꾀꼬리가 노래한다. 힌슈 씨는 밤과 밤꾀꼬리와 보랏빛 라일락 비로 가득한, 달콤한 여름의 죽음을 맞는다." (밤꾀꼬리가 노래한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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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바라보는 작가의 온기 어린 시선,
절망 속에서 발견한 조그마한 태양.


삶으로 인한 고통과 이로 인한 회의감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지만, 그것들은 결코 단순히 비극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그 절망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달큰한 애정 같은 것을 본다. 그가 삶에 대해 가졌던 애증 어린 시선, 타인을 향한 연민 어린 시선과 동정. 절망 속에서 피어난 희망과 기쁨. 그는 단순히 삶 곳곳에 배인 절망을 얘기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삶에 속고 배신당하며 눈앞에 닥친 이별 앞에서도 제대로 슬퍼하지도 못하는 우리. 그럼에도 매일 밤이면 찬란히 떠오를 태양을 기다리는 우리.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다가올 3월의 봄을 믿는 우리에게, 그는 온기 어린 시선을 건넨다.

죽음을 코앞에 두고서도, 자신의 젊음이 힘없이 고꾸라져도, 그는 삶과 끊임없이 투쟁했다. 어리석은 인간의 존재에 회의하고 이유 없이 죽어나가는 생명들에 한탄하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그의 이야기는 몇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렇게 남아 빛나는 얼굴로 우리에게 이야기를 던진다.


주어진 삶의 길 앞에서 끊임없이 자신과 마주하고, 고뇌하고, 절규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존재들. 그의 작품들은 우리에게 선물만 같다. 가로등이 되어, 칠흑 같은 밤바다를 비추는 등대가 되어 사람들을 밝게 비추며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그의 이야기. 자신 스스로 난파선이었다 고백하는 그이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 따스한 마음으로부터 우리는 내일을 살아갈 용기를 얻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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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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