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국적이 뭐 길래 [공연]

연극 <혼마라비해?>: 국적의 진짜 의미를 찾아서
글 입력 2018.12.06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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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시마는 일본 땅인가요, 한국 땅인가요?


일본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갔던 내 친구는 직장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그저 웃음으로 답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고 친구는 말했다. 듣는 사람이 당황할 것이 뻔한 질문을 던진 일본인 상사에게도 화가 났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당시 친구의 행동 역시 이해할 수 없었다. 당연한 걸 왜 대답을 못해? 그렇게 아무 말도 안하니까 걔네가 독도 자기네 땅이라고 더 우기는 거 아냐?  왜 그렇게 용기가 없어, 답답하게-라고 난 생각했다.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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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김정은 팬클럽’이 논란이다. 말 그대로 김정은 북한 국무 위원장을 섬기는 남한 사람들의 조직이다. 아무리 현 정부의 정책에 따라 평화분위기가 조성되었다고 한들 여전히 두 나라는 전쟁 중인 상태이기에 ‘김정은 팬클럽’의 등장은 남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한 마디로 미친 짓으로 여겨진다. 이들의 뉴스기사에 달리는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 난무의 댓글이 북한에 대한 남한 사람들의 반감을 말해주는 듯하다.

남한, 북한, 그리고 일본. 지도를 놓고 보면 이 세 나라는 참으로 오밀조밀 가깝게도 붙어있다. 물리적 거리만으로 따진다면 서울에서 평양은 정말 엎어지면 코 닿을 데이고, 일본 역시 비행기로 2시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이웃 나라 그 자체이다. 하지만 이 세 국가의 정서적 거리감은 지구 반 바퀴만큼이나 멀다. 여전히 한국의 군대에서는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라고 교육을 시킨다. 일본인들을 향해 ‘원숭이’라고 말해도 꾸짖는 한국인 하나 없으며 설령 일본과의 축구 경기에서 패배라도 한다 치면 그 날 한국 국가대표들은 어마 무시한 사회적 매장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남한, 북한, 그리고 일본. 너무나 가깝지만 너무나 먼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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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동강 나버리기 이전의 한반도, 즉 조선 땅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일본 거주 조선인’을 자이니치라고 부른다. 자란 곳은 일본이지만 북한교육을 받고 남한 사람들에게 정을 붙이는 이들은 북한과 남한, 일본 세 국가의 경계 위에 어정쩡하게 서있다. 일본에서는 조선인이라고 욕먹고 남한에서는 일본인이라고 욕먹고, 그들의 존재를 온전히 이해해주는 것은 북한뿐이지만 이번엔 북한의 정서를 섬긴다고 해서 간첩이냐는 말을 듣는다.

연극 <혼마라비해?>의 남자주인공 현규는 자이니치이다. 조선말보다 일본말을 더욱 유창하게 구사하지만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유명한 가수가 되어 한 일본 예능에까지 출연하게 된 현규. 하지만 그에게는 내 친구가 받았던 것과 유사한 질문이 떨어지고, 그 역시 내 친구와 마찬가지로 그저 웃음으로써 대답을 대신한다. 머지않아 현규는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한다. 한국의 대중들은 그에게 매국노라고 한다. 그리고 이는 일본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느 한 쪽을 선택하지 못했던 현규는 결국 양 쪽에서 모두 매국노가 되었다. 그가 설 자리는 어디인가. 그가 발 디딜 곳은 어디인가. 현규는 어눌한 한국말로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짓궂은 질문에 명확한 소속을 밝히지 못했던 현규는 모든 원인을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 결국 그는 본인에게 좀 더 익숙한 일본의 편을 선택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인이 된 후 그는 일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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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이라는 게 뭘까. 그게 대체 뭐 길래 한 인간을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머리를 조아리게 만들까. 그게 대체 뭐 길래 난 일본 한복판에서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외치지 못한 내 친구를 비난했으며 ‘김정은 팬클럽’을 비웃었을까. 어쩌다가 인간들은 본인들이 직접 차이를 만들어내서 서로에게 총과 칼과 그보다 더 날카로운 언사를 겨누며 대립하게 되었을까. 국적은 왜 생겨났을까. 나라는 왜 생겨났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의 다음과 같은 의문에 대해 연극은 지숙의 수학여행 일화를 통해 한 가지의 답지를 보여준다. 일본, 남한, 북한 어느 곳에서도 소속감을 갖지 못하던 지숙은 수학여행으로 방문한 평양에서 비로소 ‘우리’를 느낀다. 북한의 정치적 이념이 어찌되었건 그것은 지숙에게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숙에게 국적은 그저 정서적 편안함을 제공해주는 대상이었을 뿐이다. 어쩌면 국적의 가장 본질적인 역할은 이것이었을 것이다. 다수의 개인에게 신체적/정서적 안정을 주는 것. 이 목적 하에 사람들은 땅 덩어리를 나누고 지도에서 선을 그어 ‘나라’라는 것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의 세태를 보면 국적의 용도는 분명 변화했다. 국적은 이제 ‘나’와 ‘너’를 가르는 기준이 되어 버렸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토종 한국인인 나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우리’는 착하고 ‘너희’는 나쁘다는 식의 유치한 이분법적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일본과 북한은 나쁘며 우리는 착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북한과 일본을 욕하는 데에는 꽤 관대했으며 그들이 우리를 욕할 때에는 예민하게 반응했다. 이는 비단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 주변의 대다수 사람들이, 많은 한국인들이, 그리고 많은 세계인들이 그러고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미국의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또한 국적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나’와 ‘너’를 분류하는 식의 정책을 펼치고 있지 않은가.

결국 연극 <혼마라비해?>는 관객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국적이 대체 뭔가요? 철저한 흑백의 논리에 따라 서로가 서로에게 ‘혐오’를 외치고 있는 지금, 국적의 원래 목적을 되짚어보는 노력은 분명 유의미하다. 결국 국적이라는 것 또한 한 인간의 안위 앞에서는 무색해져야 할 많은 것들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성별, 사회적 지위, 경제력을 포함한 모든 것들이 인권 앞에서 별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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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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