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리허설을 유료로 팔아도 될까? [기타]

드레스 리허설은 미완의 공연일까..
글 입력 2018.12.08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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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일 충무아트센터에서 동명 소설 '오페라의 유령'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팬텀>이 개막했다. 뮤지컬 <팬텀>은 2015년 한국에서 첫 라이선스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2018년 재연으로 돌아온 작품으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과 같은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흉측한 얼굴을 가면으로 가린 채 오페라극장 지하에 숨어 사는 팬텀의 인간적인 면에 보다 집중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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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점은 12월 1일 개막한 작품이지만 티켓 판매는 개막 전날인 11월 30일부터 오픈되었다는 것이다. 공식적인 개막 전날 대부분의 뮤지컬은 '드레스 리허설'을 진행한다. 드레스 리허설은 의상과 분장을 모두 갖춘 배우들이 실제 공연처럼 행하는 최종 무대 연습이다. 그리고 뮤지컬 <팬텀>은 100%보다는 99%에 가까운 이 리허설을 '오픈 드레스 리허설'이라는 이름으로 유료로 판매한 첫 번째 작품이다. 물론 정가가 아닌 30~50% 할인된 가격으로 책정되었다. VIP, R석의 경우에는 30% S, A석의 경우엔 50%까지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뮤지컬 <팬텀>은 넉넉하지 않은 주머니 사정에 살지 말지 고민하고 있던 공연이었기 때문에 나의 경우 파격적인 티켓 가격은 오래전 즐겨 입던 청바지 주머니 속에서 발견한 쌈짓돈 마냥 반가웠다. '오픈 드레스 리허설'이 뭔지도 모르고 공연 전날 바로 티켓을 예매했고 뒤늦게 예매처 공지사항에 올라온 글을 통해 정확히 '오픈 드레스 리허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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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드레스 리허설'은 하나의 공연이지만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결국에는 리허설이다. 물론 공연 개막 전 마지막으로 이루어지는 리허설이기 때문에 공연의 완성도는 정식 공연에 근접하지만 어디까지나 미완을 염두에 둔 연습이다. 따라서 리허설 도중에 연출가에 의해 수정되는 부분이 생기거나 무대에서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극을 잠깐 멈추고 진행하기도 하고 때론 무대 위에 스태프가 등장할 수도 있다. 이 내용은 각 예매처 공지사항에 올라가 있기도 하고 공연이 시작되기 전 연출자가 무대 위로 나와 잠깐 설명해 주기도 한다. 내가 봤던 공연에서는 앞선 것들에 추가해 리허설 영상을 홍보영상으로 활용하기 위해 공연 중 객석 뒤쪽에 포토그래퍼들이 오가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전문 사진장비였기 때문에 찰칵하는 소리가 객석에서 다 들렸다.)

오픈 드레스 리허설을 유료 티켓으로 판매한 것은 뮤지컬 <팬텀>이 처음이지만 국내에서 드레스 리허설을 대중에게 공개하려는 시도는 이전부터 있었다. 유료 티켓이 아닌 무료 이벤트거나 기부 형식으로 말이다.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지난 6월 최종 리허설 현장을 무료로 공개했다. 생애 첫 뮤지컬을 관람하는 관객을 대상으로 한 이벤트였다. ‘핫 파티’라는 이름으로 드레스 리허설을 세 차례 공개한 <시카고>의 경우 관객 1명당 2만 5,000원 정도의 티켓값을 받았다. 판매 수익은 비정부기구(NGO) 단체에 전액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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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뮤지컬 <팬텀>이 처음 수익을 내기 위해 '드레스 리허설' 티켓을 판매한다고 했을 때 많은 비판의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직도 미완의 공연에 돈을 지불하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이다. 공연예술은 영화, 드라마와 달리 바로 내 눈앞에서 벌어진다는 점에서 가장 현장성 있는 장르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연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긴 러닝타임 동안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작품에 몰입하길 원한다. 영화관과 다르게 공연장에서는 더 엄격한 관람 에티켓이 요구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작품에 몰입하는데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농후한 '드레스 리허설'은 몰입에 방해가 있을 가능성이 농후한 공연이다. 한 문화 평론가는 “공연예술은 완성된 무대를 통해 제작진의 수준과 노력이 응집된 결과를 보여주는 데 묘미가 있다"라며 “유료로 드레스 리허설을 공개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사실 나도 <팬텀>을 보러 가기 전 과연 '드레스 리허설'이 정식 공연보다 얼마나 다를지 궁금한 마음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돈만 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내가 본 공연에는 극의 흐름에 지장을 줄만한 일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정식 공연은 아직 보지 못해서 비교는 어렵지만 <팬텀>의 드레스 리허설은 리허설인지 모르고 봤다면 정식 공연이라고 생각할 만큼 매끄러웠다. 물론 중간에 객석 뒤에서 촬영하는 소리를 빼면 말이다. 하지만 내가 관람한 저녁 공연이 아닌 낮 공연에서는 공연 중 앙상블이 다쳐 공연이 잠시 중단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나는 아주 운 좋게 아무런 사고 없는 공연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내가 저녁 공연이 아닌 낮 공연을 봤다면 불만족스러웠을까? 아마 낮 공연을 봤더라도 나는 뮤지컬 <팬텀>에 지불한 돈이 아깝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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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드레스 리허설' 관람으로 내가 느낀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배우들은 실제 공연이든 리허설이든 항상 최선의 모습을 보이려 노력한다는 것이다. 나는 세종문화회관에서 하우스 어셔로 일하면서 공연 전 리허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객석엔 공연 관계자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지만 리허설을 진행하는 배우의 모습엔 조금 여유로운 모습은 있었지만 대충 하고 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리허설일지라도 많은 대중에게 그것도 처음으로 공개한다는 의의가 있는 '오픈 드레스 리허설'에 배우들은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실제 공연만큼이나 최선을 다해 연기할 것이다.

물론 배우들이 최선을 다하는 것과는 별개로 무대 위에서는 문제가 될만한 것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대장치부터 소품 그리고 조명과 같은 부수적인 것들 역시 공연의 완성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지만 그런 부차적인 문제들은 실제 공연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드레스 리허설' 은 정식 공연 전날 진행된다는 점에서 실제 공연보다 그런 문제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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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팬텀> 티켓가격


두 번째는 '오픈 드레스 리허설'은 국내 뮤지컬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인 '접근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한가지 방법이라는 것이다. 뮤지컬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은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들이 많은 뮤지컬을 접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 비싼 '티켓 가격' 때문일 것이다. 현재 일반적으로 대극장에서 진행되는 뮤지컬 가격은 6~14만 원 사이이다. 최근에는 주말 가격을 따로 책정해 VIP석의 경우 15만 원까지 치솟았다. 이로 인해 뮤지컬을 접해보고 싶은 사람도 너무 높은 티켓 가격에 먼저 겁을 먹고 관람을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에 뮤지컬을 관람할 수 있는 '오픈 드레스 리허설'은 비싼 뮤지컬이 가진 '비싼 티켓 가격으로 인한 제한적인 접근성'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물론 티켓을 초대권의 형식으로 무료로 제공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몇몇 뮤지컬은 이런 방식으로 '드레스 리허설'을 공개했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았을 때 무대 위 배우들과 무대 뒤의 관계자들의 노력에 대한 대가로 돈을 지불하고 공연을 보는 것과 무료로 공연을 보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같은 공연을 본 뒤 사람들이 그 공연에 대해서 지불하고 싶어 하는 티켓 가격은 다르다. 어떤 사람은 "원래 가격에 두 배여도 볼 거야!"라고 말하지만 또 다른 사람은 "공연 재밌긴 한데 그래도 14만 원은 너무 비싸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내가 지불한 비용과 비교하여 공연을 평가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무료로 처음 뮤지컬을 보게 된 사람은 지불한 비용이 없기 때문에 그 공연이 훌륭해서 좋았는지 아니면 단순히 무료였기 때문에 좋았는지 구분하기 어렵다. 결국 뮤지컬을 무료로 처음 보게 된 관객들은 다시 뮤지컬을 보러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오픈 드레스 리허설'의 목적이 '뮤지컬에 대한 접근성 해소'에도 있다면 이것은 꽤나 골치 아픈 문제이다. 따라서 유료로 '드레스 리허설'을 공개했을 때, 내 돈을 지불하고 처음 뮤지컬을 보러 온 관객들은 "뮤지컬 돈 내고 볼만하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나중에 다시 극장을 방문하게 될 수 있다.

물론 '드레스 리허설'이 유료로 판매된 것은 국내에서 <팬텀>이 최초이고 나 역시도 처음 오픈 드레스 리허설을 본 것이기 때문에 과연 그것이 옳은가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이유로 미루어보았을 때 '오픈 드레스 리허설'은 국내 공연산업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단순히 드레스 리허설을 '미완의 공연'이라고 깎아내리기는 것이 아닌 그것이 미완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역할을 인정할 때 이에 대한 조금 더 생산적인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오현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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