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인간을 위한 운영체제가 구동되었습니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글 입력 2018.12.09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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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위한 운영체제가 구동되었습니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너무 닮아서 소름 끼치네요, 로봇 씨



“소름 끼쳐, 저게 젊은 시절 아버지인 척하는 게.” 한 남자의 젊은 시절을 복원한 인공지능 윌터(존 햄 분). 영화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의 테스(지나 데이비스 분)는 그를 소름 끼쳐 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사람과 지나치게 닮은 로봇, 사람인 척 가장하는 로봇에 섬뜩함을 느끼는데 일본의 로봇 공학자 모리 마사히로는 이를 ‘언캐니 밸리’(섬뜩함의 계곡)라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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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 마사히로가 그린 '언캐니 밸리' 그래프
(진중권, <이미지의 인문학>, 천년의 상상 중에서)


그의 지적에 따르면 로봇과 인간의 외관이 닮을수록 로봇에 대한 호감도가 증가하지만, 정도가 지나쳐 인간과 너무 닮으면 인간은 오히려 섬뜩함을 느낀다고 한다. 일본 휴머노이드를 보면 왜인지 모르게 불쾌감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일 거다. 혹자는 그래픽 주인공을 내세웠던 영화 <파이널 판타지>(2001)의 참패 원인을 '언캐니 밸리'에서 찾기도 한다. (물론 내러티브 부실 등 여타 이유도 많겠지만 말이다.)

로봇을 내세운 많은 SF 서사가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으로 치닫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절대 인간이 아닌데 인간인 것 같고, 생명체가 아닌데 영혼이 있는 것 같은 존재들의 '불확실성'은 친근하면서도 두려운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들이 주가 된 미래 세상을 비관적으로 내다볼 수밖에 없는 거 아닐까. 지극히 인간답지만 인간은 아닌 것이 우리의 자리를 위협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 그곳에서 인간은 어떤 위상을 차지하고 있을까 하는 회의적인 비전. 이게 로봇과 디스토피아를 엮어내는 또 다른 이유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ON을 누른 로봇 이야기


반면 최근 공연계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로봇 캐릭터로 따뜻한 이야기를 주조한다. 인간을 돕는 헬퍼봇이지만 연식이 오래된 구형이라는 이유로 헬퍼봇 아파트에 방치된 올리버와 클레어. 두 로봇이 만나고 여행하며 사랑에 빠진다는 게 이 공연의 주요 줄거리다.


이 작품은 2014년 우란문화재단 인큐베이팅을 통해 개발된 이래, 2015년 프로젝트박스 시야의 트라이아웃 공연, 2016년 초연, 2017년 앙코르 공연까지 관객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매진행렬 탓에 돈이 있어도 표가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을 정도. 그리고 짧은 기다림 끝에, 2018년에 이르러 <어쩌면 해피엔딩>의 재연 버튼이 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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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말이지만 <어쩌면 해피엔딩>의 헬퍼봇들에게선 '섬뜩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배우들은 말투와 몸짓으로 로봇을 성실하게 연기하지만 카메라라는 매개를 거치지 않은 로봇 연기는 ‘디지털을 연기하는 아날로그’를 더욱 직접적으로 노출한다.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분한 <터미네이터>가 전혀 혐오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은” 것보다 한 발 더 섬뜩함에서 멀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진중권, <우리는 디지털 가상 세계의 좀비들인가>, 씨네21) 오히려 그래프의 x축은 ‘인간과의 유사성’이 아니라 ‘로봇과의 유사성’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이 가운데 작품의 관심 역시 '인간'에 머물러 있다. 먼 미래의 세계는, 그리고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할 법도 하지만 작품은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볍게 넘겨버린다. 이 작품이 내세운 미래의 로봇, '헬퍼봇'들은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휴머노이드로 옛 재즈 앨범을 즐겨 듣고 LP판을 모으며 화분과 반딧불이를 소중히 여긴다. '섬뜩함', '소름 끼침' 그리고 '디스토피아'의 주인공과는 거리가 먼 셈. <어쩌면 해피엔딩>은 로봇을 소재로 삼아 SF가 아닌, 동화적인 이야기를 펼쳐낸다. 

그리고 '쓸모없음', '대체 가능'이라는 명목으로 주인에게 버려진 헬퍼봇들은 먼 미래의 비극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의 비극을 상기시킨다.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 운영체제는 인간을, 그리고 인간의 관계와 사랑을 노래한다. 말 그대로 인간 아닌 것들이 보여주는 '인간다움'이다. 넘버 '우린 왜 사랑했을까'로 작품의 문이 열리면 관객들은 또 다시 '쓸모없음' 취급받는 것들의 사랑을 들여다보며 이 시대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된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재연은 관록의 기존 배우들과 뉴페이스들의 신선함으로 꾸려졌다. 올리버 역은 김재범, 전성우, 문태유, 신주협이, 클레어 역은 최수진, 박지연, 강혜인이, 제임스 역은 성종완, 양승리, 권동호가 맡아 그려낸다. 공식적으론 두 번째 구동을 시작하는 <어쩌면 해피엔딩>이 또 어떤 따뜻함을 선사할까. 추운 겨울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작품이기에 기꺼운 마음으로 'ON' 버튼을 눌러본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2018>



공연장소

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


공연기간

2018년 11월 13일 (화) ~ 2019년 2월 10일 (일)


공연시간

평일 8시 | 토 3시, 7시 | 일, 공휴일 2시, 6시

(월요일 공연 없음)


티켓가격

R석 66,000원 | S석 44,000원


관람등급

만 13세 (중학생) 이상 관람가


관람시간

100분


제작진

작,작사 박천휴 | 작,작곡 윌 애런슨

연출 김동연 | 음악감독 주소연


출연진

김재범, 문태유, 전성우, 신주협, 박지연

최수진, 강혜인, 성종완, 양승리, 권동호



*



■ 참고

진중권, <우리는 디지털 가상 세계의 좀비들인가>, 씨네21

진중권, <이미지의 인문학>, 천년의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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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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