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비참할 땐 스피노자>를 통해 본 자유 [도서]

글 입력 2018.12.08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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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좋은 때 : ‘오늘도 왜 살지’하는 생각이 든다면
읽기 좋은 장소 : 펜과 노트를 꺼내어 쓸 수 있는 곳으로


오랜만에 동네 도서관을 탐방하다가 <비참할 땐 스피노자>라는 꽤나 자극적인 제목에 홀린 듯이 집어 들었다. 언젠가는 저서인 <에티카>를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에 나의 입문서로 선택했다. 스피노자는 많이 회자되는 철학자는 아니지만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인지도가 꽤 높은 편이다. 마치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르는 내 가수, 작가, 배우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소개해주고 싶은, 그런 포지션인 것 같다.

책을 선택했을 때의 상황을 살짝 말해보자면, 최근 갑작스럽게 시간이 넘치게 되면서 모두가 꿈꾸는 ‘시간만 많았더라면’의 주인공이 되었음에도 개운하지가 않았다. 원하던 자유가 이런 모습일 리가 없다는 생각과 그럼 자유가 뭘까 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몇 권 읽어본 자기계발서는 시간 관리를 말했고 이 책은 인식과 정서를 제시했다.



자유에 대한 환상, 타고난 본성


자유롭다는 믿음 때문에 우선 우리는 자신에 대한 무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거기에 이어 우리 앞에 놓은 진정한 제약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된다. 본성에 대한 오해는 우리 역량에 타격을 가하고 우리를 제약하는 속박에 대한 오해는 그런 속박을 감내하도록 이끈다.

진정한 자유의 요체는 우리가 우리의 내적 필연성(본성)과 연결시킬 수 있는 제약을 인식하는 것이다. 모든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이런 원리에 충실하게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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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Freedooooom!!


나는 자유를 생각할 때 영화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이 비 내리는 밤 환희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처럼 광활한 느낌이다. 스스로의 자유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내 삶을 오직 내 마음 가는대로 하는 모든 것.

휴학을 하고나서 시간이 좀 지난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구속받는 것이 없다는 느낌에 취해있었던 것 같다. 무엇이든 가능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속에서 무한함을 느꼈고 금방 익사했다. 무한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존재는 무엇도 없다. 신조차 자신의 규칙에 메이는데, 하물며 작은 인간인 내가 무엇이라고 무한할 수 있다는 걸까.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이 환상을 깨는 것이 참 어렵다. 나의 눈은 ‘나’를 보지 못하고 오직 바깥을 향해서, 우리는 그저 보이는 것만 본다.

제약이 없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은 당연하다. 언어에 붙잡히는 흔한 실수 중 하나는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제약은 고정되어 있는 어떤 절대적인 말이 아니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나에게 유리했던 것이 제약이 될 수도 있고 불리했던 것이 호재가 될 수도 있다. 이미 겪어봤으면서도 유독 ‘자유’에 대해 품고 있었던 환상이 짙다.

제약이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외부적 조건, 예를 들어 성별, 가정형편, 소속국가 등 밖에도 내부적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타고난 천성이 있다. 흔히 사람을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고 할 때의 포인트가 여기라고 생각한다. 노력 여하에 따라, 삶의 굴곡에 따라, 만나는 사람에 따라, 우리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만나면 더욱 크게 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진짜 본성이란 것은 바뀌지 않는 것 같다.

길지 않은 삶에서 오래 만난 사람들이 중요한 시기에 걸쳐서 있었다. 그와 추억도 쌓고 서로 중요한 일들도 공유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생각해보니 친구가 참 낯설게 느껴진다. 대화를 하면서도 뇌가 삐걱삐걱 다음 반응을 산출해내지 못하고 어색해지는 그 느낌. 그의 고집에, 편협함에, 배려 없음에, 혹은 모든 것을 통틀어 느끼는 불편함에 점점 거리를 두게 된다.

그런데 과연 과거엔 그가 다른 사람이었을까? 정말 ‘어느 날 갑자기’ 같은 상황이었을까? 사실 나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옛날에는 그저 넘어갔던 것들이 점점 거슬리기 시작하며 콩깍지가 벗겨졌다는 것을 말이다. 더 넓은 세상을 만나면 사람을 보는 안목이 생긴다. 겉치레나 감정으로 가려져 있던 그의 본성이 보이는 것이다. 그것은 떠올려보면, 그와의 첫 만남에서 이미 있었다.



삶의 이유


삶의 목적은 없다. 이 세계는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주어진 역할도, 어떤 의도도 없다.

완전하게 그 자체로 존재한다는 것은 그 자신의 잠재력을 완전하게 실현하고 역량을 펼치고 본성이 가진 기능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이는 '기쁨'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를 우울이 못하게 막는 것은, '우리가 도달할 수 없다고 느끼는 완전함의 모델에 끝없이 자신을 비교하는 경향'이다. 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약하고 부적합하다고 느끼며 더 이상 우리 자신으로 살아가고자 시도하지 않는다.


한 때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한 존재가 눈을 뜨고 다른 존재들과 관계를 맺고 불필요한 고통을 받는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만 했다. 아무 의미 없이 그야말로 내동댕이쳐졌다고는 믿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절반쯤 포기하고 나머지는 수긍해서 내가 ‘그냥’ 태어났다는 것을 66% 정도 인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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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 트랙9) : 이때 많이 들었다.


나는 영화처럼 세상을 구하는 사람도 아니고 위인전처럼 나라를 빛내는 훌륭한 사람도 아니다. 그냥 내 친구들의 친구고 내 부모님들의 딸이며 한국의 대학생이다. 직장을 구하게 되면 회사의 직원이 추가된다. 예전에는 ‘그냥’이 곧 ‘고작’이라고 여겼다.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끝나고 싶지 않으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전문직으로 가든 명예를 얻든 무언가 남들보다 더한 혹은 남들에게 인정받는 무언가를 얻어야 했다. 그렇게 나를 세상과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런 욕망은 여전하다. 다만 약간은 방향을 틀어도 될 것 같다는 66%의 확신이 생겼다. 나를 남겨 ‘나’를 확인하고 싶다면 기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하는 것은 어떨까? 이 작은 의문이 대기업! 권력! 명예!의 느낌표를 떼었다. 대신 차분히 온점을 찍으며 하나씩  알아가고 있다.

나는 그저 대화하며 아는 것을 나누거나 추천해주는 것을 좋아한다.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호기심이 든다. 뭐든지 배우는 것 자체를 좋아하면서도 못하면 괜히 화가 나기도 한다. 단순반복 작업이나 사람 간의 가벼운 만남은 싫다.

그래서 아트인사이트에 글을 쓸 때도 별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이곳에서 나는 내 생각을 공유하고 ‘나’를 내보인다. 마감 날이 되면 기분 좋은 긴장감이 들 뿐 리포트를 쓸 때처럼 불안, 초조, 짜증 삼형제도 없다. 마감 후 일상에선 재밌는 경험을 할 때마다 이것을 글로 한번 써볼까? 그럼 어떻게 써야 좋을까? 하고 바로 콘티를 짤 뿐이다.





<비참할 땐 스피노자>는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읽는 데 시간이 평소보다 꽤 걸렸다. 여기서 내가 길게 답했던 몇 가지 질문들은 다른 사람들과 나눠보고자 한다.


질문 List

1.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변화를 떠올려보라.

그것은 의식적 결정에 따른 자발적 노력의 결과물이었는가? 아니면 당신이 강하게 의식하지 못하는 내면의 힘이나 외부 조건의 힘이 이끌어낸 결과물이었는가? 지금 당신은 한 발 떨어져 이 문제를 객관적으로 이 문제를 바라볼 수 있겠는가?

2. 당신은 분명 새로운 날을 위한 해결책을 이미 알아냈다.

그 해결책이 당신을 행동하게 만들었는가? 아니면 반대로 당신을 더욱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는가?

3. 당신이 자책하는 일의 목록을 전부 다 써보라.

지난날의 실수, 환멸, 어긋난 만남, 잘못된 결정 등등,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불가피함과 필연성에 대해 이해해보고자 노력해보라. 그럼으로써 적어도 당신이 그런 후회스러운 일을 원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가?

다음 단계에서는, 그런 실수가 오늘날에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해보라. 즉 다시 말해 그것들이 어떻게 당신을 성장시키고 당신 자신에 대해 알게 해주었는가?

4. 완전함의 모델에 맞추고 싶은 열망이 생기는가?

그 완전함의 모델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그것은 진실로 본질적인 당신의 모습과 어울리는 것인가?

5. ‘좋은 사람’과 ‘행복하기’ 중 무엇이 당신에게 중요한가?

이것이 서로 양립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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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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