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정말 혼마라비했음 좋겠습니다 _ 연극 <혼마라비해?>를 보고

자이니치와 한국적, 그들은 앞으로
글 입력 2018.12.12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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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남동생은 암에 걸렸다. 그는 그 사실을 알자마자 평소 치던 장난을 조심하던 그의 형의 변화에 기분나빠했다. 길에 지나가는 사람이 불편해 보인다고 섣불리 도와주는 것으,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할 뿐이다. 이 모든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내 눈으로 누군가의 불편함을 섣불리 판단하고 그에게 다가서는 것은 무례한 일이라는 거다. 그래서 섣부른 동정은 嫌だ(야다)다.


연극을 보러가기 직전 문앞에서 표를 끊어주는 이가 있으니 바로 이 연극의 (극 중)작가다. 그는 곧바로 무대 한가운데로 들어와 연극을 잘 보아주시기를 당부드린다. 조금 떨려보이고 설레보이며, 작가가 직접 출연하는 공연을 본적이 없는 자들에겐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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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하트의 (극 중)작가님



연극은 한 사람을 기준으로 하여 진행된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처럼 관객은 주인공 ‘영주’의 생각과 마음을 다 알 수 있다. 연극의 중간중간 모두가 멈추며, 그녀가 자신의 당시 생각을 읊어주기 때문이다. 사건은 그녀가 일본의 한 극단의 번역 작업을 도와주기 위해 일본으로 가서 ‘자이니치’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자이니치’ 이 정확한 명칭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필자를 포함해 수두룩할 것임을 확신하는 바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간단한 설명을 더하자면, 자이니치는 재일교포, 일본에 사는 한국의 동포로 정의할 수 있겠다. 예를 들면 추성훈 씨와 같은 분이다. 사실 그들에 대해 재미동포, 혹은 다른 나라에서 사는 우리 민족에 대한 감정만큼의 친밀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다. 연극이 감명깊어 누군가에게 추천을 드렸을때, 필자가 들었던 말이 ‘나는 근데 자이니치 잘 안좋아해. 수도 적어서 결속력 소속감도 심하고,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니니까’였던 걸 보니 확실하다. 그를 탓하자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자이니치에 대해 더 알아보고 공감을 해야 할 이유다.


자이니치의 모습은 극 중 광식처럼 ‘우리 것’을 중요시하는 것이다. 그는 일본어를 쓰고 일본글자를 적고 사는 사람들에게, 우리 것을 배우지 않고 사용하지 않는 것은 피와 뿌리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더더욱 역사공부와 한국어공부에 열심이었다. 광식의 아들 현규는 신라의 육두품에 대해 영주보다도 더 잘 안다. 그리고 아마 한국땅에 있는 사람보다도 훨씬 역사를 꿰뚫고 있다. 이런 두 사람 사이에서 어린 자이니치 우진은 공부를 한다.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글을 공부한다. 그의 아리랑을 부르는 소리는, 언제 아리랑을 불러봤었나 아득해지는 필자의 목소리보다 더 ‘한’스럽다. 혼마라비해의 자이니치는 이런 모습이었다.




한국적의 사람들과 조선적의 사람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고, 모르는 세상이 있다지만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영주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진을 걸어놓은 광식에게 “간첩이세요?”라고 물어보고, 또 제멋대로 자이니치사람들이 한국인보다 못하다고 단정지었다. 영주는 웬만한 한국인의 반영이다. 한국인은 자이니치의 피치못할 이중성을 잊지 못한다. 그쪽에 우리는, 고민할 필요 없는 일상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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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광식과 현규, 지숙의 집



반면 자이니치들은 선택을 해야한다. 한국적을 택할 것인가, 일본적을 택할 것인가. 선택을 하지 않으면 남는 것은 ‘조선적’이다. 하지만 지금 이 세상에 조선은 없고, 그래서 그들은 많은 ‘권리’를 박탈당해야만 한다. 권리를 지켜줄 나라가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저 ‘한국적을 택하라’고 마음 편히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쉽지 않은 '이상적'인 이야기다. 그들에게 '이상적인 조국'의 모습도 보여주지 못할거면서 자신의 뿌리를 따르는 이상적인 선택을 하라고 말하는 것은, 책임없고 철없는 소리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재일교포인 추성훈씨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한국행을 택했지만, 결국엔 일본인으로의 귀화를 택했다. '한국에서는 더이상 어떠한 희망도 찾을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남긴 후였다.




이방인



언제나 이방인이 되는 삶에서 가장 힘든 것은, 어디에도 기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오리콘 차트 상위권에 진입했던 현규는 한국에서 ‘오리콘차트에서 인정받은 재일교포’라는 말로 소개되고 관심을 받지만, ‘독도냐 다케시마냐’라는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한 순간 외면과 지탄을 받았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그를 ‘역시 쪽바리다’라고 욕했고, 일본인은 ‘역시 조센징이다’라고 욕했다. 그 둘의 나라를 모두 애정하는 사람에게, 두 나라는 필요할때 어디에도 기대지 못할 곳이다.



“정말 한국동포들이 우리한테 관심이 많니?”


- 광식



광식은 한국 동포들의 관심에 기뻐했다. 그들에게 한국은 동포고 한민족이고, 자신들의 뿌리다. 일본은 자신들이 살아왔던 삶의 터전이며, 고향이다. 때론 어딘가에서 ‘헤이트스피치’를 듣고, 지나가던 사람에게 옷이 잘릴진 몰라도 자기가 몸담은 곳이다. 자이니치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 연극을 창작하고 연기했던 작가 ‘신영주’의 말을 먼저 빌려 담아 이해를 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녀는 연극의 초반부터 끝까지 자이니치를 알리고 싶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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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광식의 삶의 터전, 잡화점



그렇다면 성공한 일이다. 관객들은 자이니치라는 사람들에 관해 알았고, 그들의 생활과 그들의 고민에 관해 알았다. 이 모든 이해와 알아감에 있어서 단 하나 필요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동정’이었다. 지숙언니의 말대로 그들은 어떤 고민과 아픔이 있더라도 ‘조선적이야. 나는 조선적인게 자랑스러워’이기 때문이다. 도움의 눈빛과 손길이 없더라도 잘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섣부른 동정은 필요없다. 그저 그들이 필요로 할때, 관심과 힘을 보태주면 되는 것이다. 그들이 IMF때 한국에게 조건없이 도움을 보냈었던 것처럼.


연극 상영이 끝났으니 말하는 것이지만, 제목 <혼마라비해?>는 이렇게 읽는 것이다. 혼마V라비V해? 혼마는 일본어로 ‘정말’을 의미하고, 라비는 ‘좋다’, 해?는 우리나라의 물음을 뜻한다. 그러니까 <혼마라비해?>는 정말 잘지내?라는 일상 물음이 되는거다. 연극의 마지막에서 지숙언니와 현규오빠는 일본적을 택하고 독일의 작은 마을로 떠나버렸다. 알려지지 않은 마지막 그들의 모습에 대해 무언가를 바라자면, 그곳에서 그들이 혼마라비했으면 좋겠다. 혼자 남은 잡화점 마루에서 한일전의 야구를 보던 광식도, 결국엔 일본적을 택한 후 일본에서 회사를 다니며 가끔씩 한국으로 출장을 오던 우진도, 그들의 이야기를 알리고 싶어하며 고군분투하며 자신의 실수는 아니었을까 지금까지도 전전긍긍하던 영주도, 모두 ‘혼마라비’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안녕을 바래주며 필요할때 곁에 있어줄 것임을 다짐하는 것, 그것이 영주가 이 연극의 관객들에게 바라는 것은 아니었을까 물음을 남기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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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혼마 라비하길!



[손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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