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저널이 선정한 편집자 기획노트 Vol.13

편집자가 직접 들려주는 '기획노트'
글 입력 2018.12.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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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저널이 선정한

편집자 기획노트 Vol.13



선정 및 정보 제공 - 출판저널



<출판저널>이 선정한 [편집자 기획노트]는 편집자가 직접 들려주는 '기획노트'를 통해 책의 기획 의도와 제작 후일담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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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안 사회

베트남 사상사

미지의 문




번안사회




제국의 번안물, 근대 한국을 사로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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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일상에서 ‘양洋’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양식은 프랑스식·이태리식·미국식으로 분화했고, 양품·양장·양옥 등의 단어 대신 한복·한옥 등의 단어가 만들어졌습니다. 우리 것을 구분 짓는 단어가 필요해질 만큼 양풍이 일상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양풍’은 정체가 다소 불분명합니다. 식민 지배를 겪은 한국은 서양을 직접 대면하는 대신 일본을 통해 서구의 근대 산물을 받아들이고 일본이 한 번 번안한 ‘일본식’ 양식을 번안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번안’이라는 단어가 생소한 사람이 적지 않을 듯합니다. 사실 저 또한 옛날에나 쓰이다 이제는 ‘번안 가요’ 등으로만 드물게 쓰이는 단어라 알고 있었습니다. 풀어보자면 ‘번안’은 문화를 수용할 때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문화권을 막론하고 근대화에는 꼭 번안이 따릅니다. 그런데 앞에서 말했다시피 근대화 시기 한국에서 이루어진 번안은 좀 특별합니다. 다소 낡은 듯한 단어 ‘번안’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약 35년간의 식민지 생활과 1960년대 진행된 급속한 산업화는 우리 일상생활과 문화를 비롯한 사회 풍경을 상당 부분 바꾸어 놓았습니다. 식민지 시기 일제는 우리 고유의 문화를 제 입맛에 맞게 바꾸었고, 전쟁 이후 한반도에 들어온 미군이 거기에 영향을 더했습니다. 1960년대 대한민국은 선발주자 좇기에 급급했죠.

일제강점기 때 교육받고 성장하여 1960년대를 이끌게 된 이들은 자신들이 배워온 걸 그대로 반복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각 시기를 거치며 들어온 일본 문화와 일본식 미국 문화, 미군에 의해 들어온 미국 문화 등은 그때그때 사정에 맞게 번안되었지만, 당시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른데다 강압적이었던 만큼 충분히 알맞게 번안되진 못했습니다. 그렇게 번안된 것을 1960년대 재번안하고 맙니다.

그 부작용은 비교적 먹고 살 만해진 지금에 와서 불거집니다. 패션, 음식, 요리, 주거, 도시환경 등 일상생활의 영역에서 시작해 소설, 미술, 영화, 음악 등의 예술 장르는 물론이고 기술과 학문 영역, 종교에 이르기까지, 이중 번안의 흔적은 삶의 모든 영역에 깊이 틈입해 있다가 우리가 한 발 더 나아가려고 할 때면 자꾸만 나와서 발목을 붙잡습니다.

과연 모두가 동경하고 따라잡고자 한 것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그래서 지금 우리는 원하던 데로 잘 살고 있는 걸까요? 문제의 해결은 원인을 정확히 아는 데서 시작합니다. 《번안 사회》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했습니다.

일제의 청산을 말하면서 일상에서는 일제가 남긴 문화를 즐기는 모순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할 까요? 최근에는 복고 열풍이 일면서 전통이랍시고 일제의 잔재를 가져다 되살리는 경우도 있더군요.

번안의 역사를 살핌으로써 우리는 한국 사회의 일상생활과 문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왜 그런 양식을 취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토대로 현재 우리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더 나아가 우리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지 등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효온 휴머니스트 편집자




베트남 사상사


베트남 거기가 어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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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여행을 가지 못한 사람이라도 베트남 쌀국수를 한 번도 안 먹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신문을 보면 호치민이라는 정치인에서부터 하노이나 다낭 같은 여행지에 이르기까지 베트남에 대한 정보가 득시글하게 소개된다. 조금 나이든 이라면 베트남 전쟁을,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문재인 대통령의 신남방정책이나 북한이 추진하는 도이머이 정책에 대해 먼저 떠 올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별안간 ‘사상’이라니?

사실 《베트남 사상사》를 편집하면서 내가 느꼈던 당혹감은 그래서 도대체 ‘베트남’은 어떤 나라인가 하는 것이었다. 베트남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베트남의 사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을 바라보기란 불가능했다. 그러나 베트남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이 원고를 정독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베트남의 고대부터 18세기 말까지의 사상을 소개하고 있다. 중국의 오랜 지배는 베트남이 유교와 도교를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인접한 인도의 영향으로 불교가 유입되면서 두 사상과 함께 융합되었다. 중국의 지배를 벗어나 프랑스의 지배를 받고, 미국과 전쟁을 하면서까지 이들이 지키고자 한 사상은 무엇일까.

이 책의 원서가 기획된 시기는 베트남 전쟁 말기였다. 베트남의 각계 학자들은 20여 년 동안 베트남 사상의 뿌리를 찾고자 노력했다. 《베트남 사상사》는 이 원서의 번역서로 한국에 최초로, 그리고 본격적으로 베트남의 사상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사상이나 철학을 깊이 있게 탐구해야지 하는 마음보다는, 베트남 사상이라는 학문의 성립되는 과정으로 읽는 것이 좋을 듯하다.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열강의 힘에 맞서 베트남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 말이다. 작업 과정 내내 ‘불변하는 하나’로 표현되는 베트남의 거대한 사상의 역사는 지금 한국에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고민했다.

이 책은 베트남의 사상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설명한다. 하나는 양분합적 사유이고, 다른 하나는 나라사랑-주의이다. 양분합적 사유는 흔히 이중성, 반대와의 충돌과 화해를 의미한다. 이런 독특한 사상은 베트남 청동기 유물부터 이어져 온 것이다. 한편 나라사랑-주의는 식민지배에 맞서 독립투쟁이 이어지며 베트남인들의 정신에 각인되었다.

베트남에게 유교와 불교와 도교는 각자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중국과 인도의 중간자도 아니다. 베트남은 이들 사상을 삼교동원의 사상으로 발전시켰다. 베트남의 사상적 뿌리는 함께하고자 함이다. 하나가 되고자 함이다. 우리와 같이 열강에 맞섰으며, 강제로 분단된 역사를 가진 베트남. 베트남의 이면에 대해 알기에 좋은 여행서가 될 것이다.

책이 나오고 베트남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베트남 사원을 둘러보리라. 하노이에 있는 호치민 묘도 가볼 작정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국의 독자들을 만난다면 이 책을 선물할까 한다.


정필모 소명출판 편집부




미지의 문


예술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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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건축서일까, 예술서일까? 도서 분류를 정할 때 부딪힌,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없었던 부분이었다. 저자가 건축가라는 점, 본문에서 건축물과 설계안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는 점이 그 이유였다. 건축이든 예술이든, 모든 분야에 걸쳐 장르의 벽을 허무는 것이 갈수록 시대의 요구가 되고 있는 요즘이지만, 어떤 특정한 분야를 내걸어야만 판매에 유리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이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예술서로 등록한 이유는 이 책이 ‘건축’이라는 틀을 넘어 예술 분야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길 원했고, 또 독자들도 그렇게 받아들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서점의 예술서 진열대를 둘러보자. 모든 경우가 그렇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품을 소개하는 ‘해설서’ 성격의 책이 주를 이룬다. 연대순 또는 사조별 구성으로, 다루는 작품도 비슷비슷하다. 무엇보다 독자에게 단편적인 지식을 떠먹여주는 형식의 책이 여전히 많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술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방식’과 ‘안목’일지 모르는데 말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명제가 지배적인 예술서 시장의 현실 속에서 ‘명사’보다는 ‘동사’를, ‘무엇’보다는 ‘어떻게’를 강조한 이 원고를 입수한 것이야말로 단비와 같은 소식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꽤 독특한 예술론이자, 예술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건축가의 글쓰기 하면 떠올리기 쉬운 논리적이고 공학적인 문체를 떠나, 깜짝 놀랄 정도로 섬세하고 유려한 문장을 뽐낸다. ‘건축’이라기보다는 ‘공간’을 탐구해온 저자 김종진 교수의 독창적인 시각은 《미지의 문》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또한 열린 해석을 지향하면서도 다년간의 수업과 연구를 거쳐 그가 나름대로 도출해낸 결론은 매우 단단하다.


편집 과정에서 끝까지 고민의 끈을 놓을 수 없었던 부분 중 하나가 책 제목을 정하는 일이었다. 알 듯 말 듯 한 이 제목은 쉽사리 답을 내리지 않으려는 책의 어조와 맞아떨어졌다.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도 이 제목의 매력이었다. 완결성이 높은 원고였던 만큼 글의 시작과 끝에서 제목과의 연관성도 놓치지 않은 저자가 제안한 제목이었지만 편집을 하다 보니 ‘문門’이라는, 이보다 더 구체적이면서도 많은 상징을 담을 수 있는 물체는 없었다. ‘문’이란 ‘시작’과 다름없을 뿐만 아니라 열었을 때 펼쳐질 새로운 세계를 궁금하게 만드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이 원고를 만나게 되어 매우 기뻤지만, 시간이 더 많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두고두고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정도로 아쉬움이 컸던 작업이었다. 아쉬움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이 책이 나에게 남겨둔 무엇이 많기 때문일 터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책을 만드는 일과 독자에게 다가가는 책을 만드는 일 사이에 생길 수 있는 간극과 이를 좁히는 노력을 생각하게 한 시간이었다. 만약 책의 미덕이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고여림 효형출판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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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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