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빛을 목격하다_재생불량소년

재생 불량이 재생 불가능은 아니다.
글 입력 2018.12.14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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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 불량이

재생 불가능은 아니야



뮤지컬 <재생불량소년>의 카피를 보자마자 나는 곧장 재생불량성 빈혈을 떠올렸다. 작년 12월까지 나는 간호사였기 때문이다. 일명 'BIG 3'라고 불리는 삼대 병원 중 하나에서, 그것도 소아청소년과에서 근무했던 나에게 '재생불량성 빈혈'은 그리 멀지 않은 이름이었다. 재생불량성 빈혈 (aplastic anemia)은 골수의 손상이나 파괴로 인해 적혈구와 백혈구, 혈소판이 동시에 감소되는 범혈구감소증을 특징으로 한다. 순환 적혈구 수의 감소로 빈혈이 발생하고, 백혈구 수의 감소 특히 과립구 감소로 인해 감염에 취약해지며, 혈소판 감소증으로 인해 출혈의 위험이 커진다.


일을 하다 보면 백만 명 중에 서너 명꼴로 발생한다는, 한국에 50명도 채 되지 않는다는 희귀한 질병들을 감기처럼 흔하게 마주했다. 수술로 해결이 가능하다면 '간단한' 질병으로 분류가 됐다. 수술을 할 수만 있다면, 수술을 받을 컨디션만 될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는 보호자들과 아이들로 병동은 늘 북적거렸다. 많은 아이들이 '퇴원'보다도 '수술'을 간절히 바랐다. 병원에서의 퇴원은 보통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 번째는 완치 그리고 두 번째는 포기, 즉 죽음이다. 더 이상 손쓸 도리가 없는 경우다. 그리고 내가 일하는 곳에서 많은 아이들에게 퇴원이란 후자와 더 가까운 의미로 통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수술을 바랐다. 퇴원이 아닌 수술. 수술이 잘되면 그러면 만에 하나 진짜 퇴원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면서, 집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학교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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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재생불량소년>의 컨셉 사진
 

아이들은 저마다의 이야기와 삶을 가지고 있었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내 눈에는 그들이 그저 환자로만 보였다. 이름보다는 진단명이 더 익숙하고, 아이들의 얼굴을 마주하면 그들의 생각이 궁금하기 보다는 오늘 아침의 lab 수치 (피검사 결과)만이 떠올랐다. 간호사실에서는 55호의 moyamoya (모야모야병)의 컨디션이 어떻다는 둥, 58호의 ASD (심방중격 결손)가 몇 시쯤 수술실에서 올라올 것이라는 둥, 진단명이 아이들의 이름을 대신했다. 짧은 감상, 스치는 연민은 존재했지만 잠시뿐이었다. 새로운 아이들이 입원해올 것이고, 우리는 아주 바빴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고, 어느 순간 아이들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닿기 시작했다. 한 아이와의 대화 이후부터다. 그 아이는 2번의 수술과 3년간의 항암 치료, 그리고 재발 판정 후 이제 3번째 수술을 기다리며 컨디션을 맞추는 중에 있었다. 13살 된 남자아이였는데 나는 그 애와 제법 친했다. 늘 조용히 닌텐도를 만지던 아이는 수술 스케줄이 잡혔다는 소식에 들떴는지 그날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나는 마침 한가했다. 우리는 간이 책상 위에 핸드폰을 올려놓고 그 애의 사진첩을 구경했다. 할머니랑 찍은 사진, 놀이공원에 갔던 날, 머리가 길었을 때의 셀카, 친구들이 보내온 영상편지를 함께 봤다. 그걸 보고 있으니 아이의 삶이 한눈에 그려졌다. 병원복과 마스크, 그리고 늘 말없이 침대에 누워있던 아이는 사진 속에서 밝고 활기찬 열세 살의 소년이었다. 파란색의 옷을 즐겨 입으며, 굵은 곱슬머리에, 친구들과 회오리 감자를 나눠먹으며 낄낄대는 아이였다. 나는 아이한테 말했다.

"네가 제일 기분 좋았던 날 사진 보여줘."

그러자 아이는 음, 하고 고민하며 한참 스크롤을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신중하게 고른 그 사진 속 아이는 까까머리를 한 채 햄버거를 쥐고 있었다. 늘 쓰고 다니는 마스크는 책상 위에 올려져 있다.

"이날 완치 파티하고 엄마랑 햄버거 먹었어요."

다는 못 먹었는데, 그래도 엄청 맛있었어요. 아이가 말했다. 이번에 수술 끝나고 집 가면 햄버거 먹을 거예요. 버거킹에 새로 나온 햄버거 있는데 진짜 맛있어 보여요,라며 아이는 캡처한 광고 사진도 보여주었다. 그날 나는 집에 가서 많이 울었는데 그 이유는 첫 번째, 아이의 수술이 결국 취소되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그 아이가 햄버거를 먹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환자가 가여워서 운 것은 신규 시절 이후로 처음이었다. 나는 한참을 울고 한동안 버거킹을 볼 때마다 그 애를 떠올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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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재생불량소년>의 컨셉 사진


<시놉시스>


반석은 절친 승민의 기억 때문에 링에 오르지 못하는 천재 복서다. 사회에선 문제아로, 복싱계에선 게으른 천재로 점점 내리막을 걷던 도중 반석은 재생불량성 빈혈이란 희귀병을 판정받고 무균실에 입원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곳에서 백혈병 재발로 무균실에 오랫동안 있던 성균을 만나게 된다. 성균은 특유의 친화력과 긍정으로 반석에게 접근하지만 반석은 차갑게 성균을 밀어낼 뿐인데...



뮤지컬 <재생불량소년>는 '재생불량성 빈혈'이라는 희귀병 판정을 받은 권투 선수 반석의 이야기다. 피를 흘려선 안 되는 병을 가지고 있는 권투 선수라는 아이러니함, 그리고 무엇보다 희귀병을 앓고 있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성장극이라는 점에서 이 뮤지컬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진단명으로 삶을 규정짓지 않고,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 그들이 가진 이야기, 꿈, 에너지를 전달한다는 것. 이런 용기 있는 도전의 뒤에는 공연제작사 아웃스포큰의 대표이자 작품을 기획한 강승구 프로듀서가 있다. 그 역시 재생불량성 빈혈을 투병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강승구 대표는 중학교 시절부터 데미안 등 다양한 성장 소설 등을 읽으며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고, 그로 인해 소설 한 권, 뮤지컬 한편을 보는 것만으로도 한 사람의 인생이 바꿀 수도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한다. 그러한 계기로 소년 3부작 시리즈를 기획 제작하게 되었고, 이번 <재생불량소년>은 <바람직한 청소년>에 이은 소년 3부작 시리즈 중 두 번째 이야기이다.


몇 달 전, 버거킹을 좋아하던 그 아이가 퇴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싸움에도 끝은 있었다. 그 지겹고 끈질긴 사투를 종결지은 건 비단 의료진의 힘만 은 아닐 것이다. 묵묵히 버텨낸 아이와, 부모의 꺼지지 않는 불씨. 그 놓지 않는 희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불량'이라는 것은 품질이나 상태가 나쁘다는 것이지, 완전히 망가지고 고장 나서 손쓸 수 없는 지경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그러니까 카피 그대로 재생 불량이 재생 '불가능'은 아니다. 얼마든 개선 가능하고, 발전 가능하며, 희망은 있다. 희망이 있다. 그리고 '희망'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겐 얼마나 큰 동기가 되고 불씨가 되는지 나는 안다.  이 뮤지컬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재생불량소년>은 2018.12.23.(일)부터 2019.1.20(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평일 20시, 토 15시/19시, 일,공휴일 14시/18시 (월 공연없음)에 만날 수 있다. 티켓 예매는 인터파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플레이티켓, 예스24에서 가능하며 티켓 가격은 R석 4만원, S석 3만원이다. 또한 주인공 반석 역에는 <전설의 리틀 농구단>, <김종욱 찾기>, <난쟁이들> 등으로 검증된 배우 윤석현, 그리고 <빌리 엘리어트>로 떠오르고 있는 구준모가 더블캐스팅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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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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