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바다로 간 해적 [도서]

아름다움으로 쓰여진 낭만을 향하는 열망
글 입력 2018.12.15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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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순간 동안 인생은 밝게 빛났고

시간은 환영이었으며

그들의 힘은 영원한 것이었다.


<바다로 간 해적>은 스콧 피츠제럴드의 과거작이다. <위대한 개츠비> 로 잘 알려진 스콧 피츠제럴드는 당시 시대에 대한 열망, 그 이면의 허무함을 그림으로 굉장히 유명한 작가이다.

스콧 피츠제럴드에 대해 아주 잘 알고있지는 않았다. 다만, 그의 여러 단편들을 엮은 <아가씨와 철학자>의 서문에서 <바다로 간 해적>에 대한 냉소적인 비판만을 마음에 새겨놓고 읽었었을 뿐이다. 해당 소설이 초기의 부자연스러운 노력의 산물로 피츠제럴드 본인의 작가로서의 전망 정도밖에 느껴지지 않는다는 역자 및 당시 비평가들의 평을 읽고 큰 기대를 하지않았다. 오히려 읽기 전 서투른 글을 읽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앞섰다.


<바다로 간 해적>은 아디타가 너무 제멋대로라고 생각했던 그녀의 삼촌, 파르나가 아디타를 혼내기 위해 가상의 인물 '칼라일'이라는 해적을 만든 토비와 함께 아디타를 무모한 상황에 몰아넣는 내용이다. 이 책이 쓰여진 1920년을 생각하더라도 사랑만을 좇는 아디타의 모습도, 그녀를 제멋대로에 말괄량이로 취급하는 삼촌도 꽤나 지루한 설정임에는 틀림이 없다.


또한, 실제로 <바다로 간 해적> 의 경우 다소 늘어지는 묘사가 많다. 끊임없이 표현되는 이야기의 색깔, 풍경의 예술화 등은 어찌보면 내용과는 크게 상관이 없음에도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해 '부자연스러운 노력' 이라는 평론이 나온 연유를 납득 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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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이 초기작에 조금 다른 평을 하고 싶다.

동부의 화려함,이상 또한 이러한 가치들의 덧없음과 파멸을 소설에 담았던 피츠제럴드이기에 그의 소설들은 더할나위없이 적절하고 아름다운 낭만의 표현으로 채워져있다. 다분히 세속주의적 관점으로 이 세상을 칭송함에 그치지 않고, 깨어지는 환상, 무너져내리는 찬란한 시대-아메리칸 드림 등을 반영했기에 그의 화려한 서술은 그 뒤의 파멸과 함께 이어져 더욱 극적인 효과를 준다.



"우리는 두 팔을 활짝 열고 저 검은 공기를 가로지르죠. 발은 돌고래의 꼬리처럼 뒤로 똑바로 편 채로요. 그러면서 저 아래 은빛 물결과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지만, 어느덧 사방에서 물결들이 입 맞추고 어루만져주는 따뜻함 가운데에 들어가 있게 되죠."


/ 아디타, 다이빙을 만류하는 칼라일에게



<바다로 간 해적> 또한 마찬가지이다. 해적이라는 구시대적이고 향수를 일으키는, 도전적 낭만이 느껴지는 단어는 글 그대로 푸른 꿈 같은 바다 위에서 일어난다. 피츠제럴드의 묘사에 따르면, 푸른색 실크스타킹보다도 선명하며, 아이들의 홍채마냥 파랗다. 아디타는 해적 칼라일에게 매료되며 진부하게도 사랑에 빠지게 된다. 비록 그 해적은 칼라일-토비의 머릿속에서 나온 허구의 인물일 뿐이었지만.



"정말 뛰어난 상상력이에요!"


그녀가 다정하게 그리고

거의 부러움에 가까운 어투로 말했다.


"난 당신이 내 남은 삶 동안에도

그렇게 열심히 달콤한 거짓말을

해주길 원해요."


/아디타, 칼라일이 거짓임을 밝힌 토비에게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었다면 <바다로 간 해적>은 엉성한 초기작에서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아디타는 칼라일이 허구의 해적이라는 사실에 조금도 놀라지 않는다. 다만, 칼라일을 상상해낸 토비를 더욱 사랑하게 됬을 뿐이다.

낭만,아름다움은 필연적으로 소멸한다. 그러나 이는 곧 새로운 아름다움,낭만이 존재함을 뜻한다. 우리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환경과 자신에서 끊임없이 아름다움과 그렇지않음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다른 아름다움을 바라며 좀 더 좋은 이상으로써 나아가고, 이러한 발전의 맥락에서 피츠제럴드의 묘사는 진부하고 억지스러운 표현이 아닌, 낭만에 대한 낭만- 더 좋은 아름다움에 대한 타당한 욕망의 발현일 뿐이라 생각한다.


끝으로, 숱한 예술 작품 속에서도 특별히 사랑스러운 주인공 아디타의 가장 그녀다웠던 발언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내게 있어 용기란 인생 위에 내려앉는 그 음울한 잿빛 안개를 뚫고 나아가는 일이에요. 사람과 환경을 극복하는 일뿐 아니라 산다는 것의 황량함을 극복하게 해주는 것이기도 하고요. 삶의 가치와 덧없는 것들의 진가를 주장하는 거라고나 할까요."



[김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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