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커피를 마시는 '나'에 대한 고찰. [기타]

글 입력 2018.12.15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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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커피 종류는 두 가지이다. 일상생활을 함께 보내는 커피가 첫 번째, 친구들이나 가족들 그리고 소중한 사람과 함께 카페라는 공간에 방문하여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 마시는 커피가 두 번째이다. 이 글에서 논의하는 커피는 첫 번째 커피에 한정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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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하루에 최소 한 잔은 커피를 꼭 마셔야 한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잠에서 깨는 기분이 들지 않고, 하루의 능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커피에 대한 나의 사랑은 어마어마한데, 커피를 포기하면 수업에 늦는 경우가 아님에도 오직 커피를 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택시를 타는 경우도 다반사다.


나의 커피 사랑은 20살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에 입학하여 생각지도 않던 과제 폭탄을 맞은 나는 어김없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과제를 하는 ‘대학생’에 대한 로망이 있었고, 카페인 때문에 잠이 깰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전에도 새벽까지 이어졌던 과제에 제정신이 아니었던 나는,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마셨던 그 커피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놀랍게도 내 정신을 멀쩡하게 만든 그 커피의 맛을.




습관이 된 커피



그렇다면 커피는 과연 나의 졸음을 쫓고 일의 능률을 올리는 데 효과적일까? 지금도 어김없이 수업 전에 커피를 마시지만, 이때만큼 눈이 뜨이면서 제정신을 차리는 경험을 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커피를 마시면서도 꾸벅꾸벅 조는 내 모습을 더 자주 발견한다. 그렇다. 커피를 마셔도 이제는 더는 잠이 깨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택시까지 타가면서 고집스레 커피를 찾는 것이다. 커피가 효과가 없는 수많은 경험을 겪으면서도, 내 생각 자체에 오류가 있을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강렬했던 단 한 번의 경험이 모든 것을 증명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오늘은 내가 커피로도 잠이 깨지 않을 만큼 피곤하구나, 그렇다면 더 많은 커피를 마셔야겠다는 황당한 결론에 이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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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커피는 나에게 잠을 깨우는 물질에서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마땅히 마셔야 하는 하나의 ‘습관’이 됐다. 작년에는 진로에 있어서 중요한 시험을 준비하면서 커피를 마시는 습관이, 습관을 넘어서 일상의 패턴으로 자리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 한 잔을 마셨고, 점심을 먹은 후 쏟아지는 잠을 쫓으려 커피를 마셨고, 저녁에는 커피 믹스 두 봉지를 넣어 만든 커피를 마셨다. 나의 상태가 어떤지, 커피를 마셔야지만 버틸 수 있을 정도로 피곤한지 등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과 같은 ‘일상’이 됐다.


생각해보면 커피 외에도 내가 가진 생각 중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갖게 된 것이 꽤 많다. 때로는 나의 경험이, 때로는 내가 존경하는 누군가의 말이 강력한 ‘충격’으로 다가와서 내가 반론을 제기할 의문조차 갖게 되지 않는 믿음, 나아가 신념이 되기까지 한 것들 말이다. 20살 무렵 나의 잠을 깨운 그것은 커피 한 모금이었을까, 아니면 나의 뺨을 지나던 겨울날의 추운 칼바람이었을까.




커피의 부작용, 불면증



그렇게 나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하루에 세잔 씩 마셔대니, 아무리 카페인에 영향을 받지 않는 편이라고 한들 몸이 괜찮을 수가 없었다. 피곤함을 줄이기 위해 마신 커피였지만, 커피를 마셔도 피곤함은 가시지 않았고, 그래서 더 마셨고, 결국 늦게까지 잠들지 못해서 피곤은 몇 배로 쌓였다. 그제야 무언가 잘못된 느낌이 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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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내가 택한 방법은 그저 커피를 ‘덜’ 마시는 것이었다. 언젠가 신문에서 본 ‘하루에 커피 한 잔은 몸에 좋다’는 헤드라인을 떠올리면서, 한 잔쯤은 괜찮을 테니까. 그렇다고 나 자신과의 약속처럼, 무조건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도 아니다. 어김없이 시험 기간이나 과제시즌이 되면, 그런 규칙은 마치 있었던 적도 없었던 것처럼 무너져버리고, 다시 하루에 석 잔씩 마시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결국, 불면증을 가져다준 커피는, 나에게 ‘집착’이 됐다. 종교도 없고, 특히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염증처럼 느끼는 무신론자인 내가, 어떠한 의문도 품지 않고 맹목적으로 믿고 지향해 온 실체가 있었던 것이었다. 커피는 나에게 일종의 종교였고, 커피를 마시는 것은 종교적 의식 같은 것이다. 불면증과 같은 부작용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카페인이 일시적으로 가져다주는 각성효과 혹은 그 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그 믿음으로 내가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치르는 일종의 의식이 된 것이다. 사실 종교인들에게 이 의식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사실 여부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믿음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절차일 뿐이다.




커피를 안 마신다고, 대체 왜?



이상한 신념과 믿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비정상의 범주에 놓기 마련이다. 나는 그랬다. 커피를 좋아하지 않고, 특히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피곤함을 잊게 해주는 커피의 맛을 모르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심지어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 친구들에게, ‘아직 어른의 맛을 모른다.’, ‘할 일이 별로 많지 않구나?’라는 등의 이상한 확신에 가득 찬 말을 한 적도 많다.


한 번이라도 내가 커피를 마시는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했다면 이러한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경험한 대로 남들도 똑같이 느낄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커피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커피를 마시는 나의 모습에서 만족감을 느끼고, 어느새인가 그런 내 모습에 우월성을 부여하고 있었다. 내가 증오하는, 자신의 기준에서 타인을 평가하고 규정짓는 그런 확신범이, 바로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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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커피를 마시고 있다. 나의 습관이자, 일상이자, 집착이자, 종교인 ‘커피’를 벗어나는 데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이제 겨우 커피의 존재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았을 뿐이니까.


그래도 달라진 것이 있다. 나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커피를 그저 마실 뿐이다. 하루에 한 가지 일은 하게 되기 마련이니, 커피 한 잔은 마시면서 오늘의 일상을 준비할 뿐이다. 또, 나에게는 꼭 지켜야만 하는 규칙이 생겼다. 하루에 최소 한잔의 커피만 마시는 것이다. 세상의 어떤 시험이 다가오더라도, 어떤 피곤한 일들이 나의 일상을 채우더라도 나는 절대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커피라는 습관에서, 종교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싶다.



[조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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