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지중해에서 발견한 삶의 조각들 [도서]

지중해의 찬란한 풍경들은 우리에게 자꾸 말을 걸어왔다
글 입력 2018.12.17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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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태평스러운 무심함, 느긋하게 떠올라 저의 제국을 품에 넣는 장엄한 달빛. 지중해의 정의는 바로 이런 게 아닐까? 마치 어린아이가 단 하나의 그림으로 한 세계를 만들듯이 영원을 암시하는 어떤 간결함."



프랑스의 철학가이자 작가였던 장 그르니에.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 지역에서의 어두운 상념을 표현한 <섬> 외의 또 다른 대표작 <지중해의 영감>을 읽게 되었다. 그르니에가 나고 자란 브르타뉴 지역은 일 년 내내 비바람과 흐린 구름으로 가득 찬 곳이었기에 지중해의 눈부시고 찬란한 모습은 그를 매료시키기 충분했다. 책은 그가 방문했던 지역인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프로방스, 그리스에서 느낀 생각과 상념들로 묶어져 있다. 책의 목차만 보면 단순한 여행 에세이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르니에는 자신만의 풍부한 철학적 사유와 통찰력으로 지중해가 선사하는 풍경 그 이상의 것을 본다. 인간 존재와 우리의 삶, 생명과 죽음, 젊음과 대자연이 건네는 진리 같은 것. 지중해에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 생각의 지평선도 함께 확장되는 기분이다.



흘러넘치는 빛이 하루에도 몇 번씩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헐벗고 황폐한 땅, 북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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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의 사하라 사막


"사막의 광막함은 인간의 정신에는 어떤 심연과도 같다. 인간은 그것을 두려워하여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그 광막함에 일단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인간은 그것에 끌리는 느낌을 갖게 되어, 처음에는 그 매력이 피해야 할 위험으로 여겨지고 다음에는 충족시켜야 호기심의 대상이 되며 마침내 더 이상 떨쳐버릴 수 없는 황홀감으로 보인다."

"모로코의 집들을 보면 의도적으로 지붕에 돌 하나가 부족하게 만들어놓고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은 언제나 한계가 있음을 표시하고 있는데 그들은 그걸 보고 감탄해 마지않는다. 인간은 그 자체로서 충분한 존재가 아니니까.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 그리하여 그 부족한 빈 부분에 해당하는 충만을 다른 곳에서 찾기 위해서 그 점을 인정하는 편이 낫다."



그르니에는 알제리의 오랑, 카스바, 비스크라, 스페인 령 산타크루즈 섬, 메디나 등 많은 북아프리카의 지역을 방문한다. 광활한 사막이 펼쳐져 있고 멀리서 보이는 찬란한 오아시스와, 식물의 삶처럼 늘어져 느리게 흘러가는 그곳 사람들의 삶. 해가 저 멀리 저물어가도 그들의 시간은 그대로 멈춰 있는 것만 같다. 카스바에서 그르니에는 두 눈을 하늘로 들어 올리기만 하면 자주 느끼던 공허한 감정이 가득 메꿔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희망조차 필요하지 않은 곳. 돗자리 위에서 웅크리고 앉아 물같이 흐르는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과거와 미래가 더 이상 의미 없는 곳. 그곳에선 오히려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되풀이되는 반복적인 삶을 사는 것은 미친 짓이며, 삶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한다.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는 힘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말한 그르니에. 우리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여 태어난 존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선택하느라 삶을 허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와 혼자 있어도
고독하지 않은,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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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방문했던 로마의 포로 로마노와 팔라티노 언덕


"하루의 첫 새벽, 완벽히 홀로인 팔라티노 언덕의 부러져 누운 기둥들 사이를 거닐면서도 런던의 피카딜리 광장이나 대도시의 가장 번화한 거리에서보다 더 많은 것들에 둘러싸여 있는 느낌을 받을 수가 있다. 회랑들과, 분수들과, 신전들과, 하늘과 친밀하면서도 동시에 고상한 그 무슨 알 수 없는 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는 절대로 혼자일 수가 없다. 로마보다 함께할 상대가 많고 다양한 곳은 없다. 눈만 돌리면 어디서나 어떤 추억이, 아니 어떤 존재가 눈앞에 되살아난다."



독일의 유명한 작가이자 철학가였던 괴테는 이탈리아의 로마가 농익은 과일의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말했다. 사물들이 주는 무거운 느낌과 함께 근엄한 쾌락, 즐거움 속의 심각함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면서. 그 말은 정말 사실이다. 이탈리아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신비롭고도 오묘한 도시다. 당장 오른쪽엔 자동차가 쌩쌩 달리며 한창 공사 중인 현장이 보이는데, 왼쪽을 돌아보면 기원전 6세기 무렵부터 존재했던 고대 로마 시절의 유적지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온전한 모습 하나 없이 부서지고 쓰러진 건물들, 빛바랜 건물과 마구잡이로 자라난 잡초들. 그러나 그 황량한 풍경은 여전히 살아있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그르니에는 이탈리에서 느끼는 고통은 더 능동적이고 유익한 고통일 것이라 말했다. 중요한 건 안락한 삶이 아닌, 충만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덧붙이면서. 비록 그 충만감이 고통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이탈리아가 건네는 풍광은 가히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에스프레소와 물 한 잔만으로 몇 시간이고 열심히 얘기를 나누며 생기와 열정으로 삶을 살아가는 그들. 건강함과 활력이 넘치는 얼굴. 쉴 새 없이 말을 걸어오는 오래된 유적과 풍경, 그것이 우리에게 건네는 이야기와 상념. 왜 많은 예술가들이 이탈리아에서 영감을 얻고 살아갔는지 알 것만 같다. 유럽 북쪽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정열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이 배웠던 것을 잊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났다고 한다. 그르니에 또한 이곳에서 자신을 실현하고, 자유로워진 사고와 함께 행복한 해방감을 맛본다. 그르니에는 말한다. '그리하여 이 바다에서의 난파가 나에게는 감미롭구나.'



부드러운 대자연이 노래하는 곳, 프로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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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남부 포지타노 지역.
세상에 이런 곳이 존재할까 싶을 정도로
눈부신 풍광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다른 곳에 살리라! 이것은 젊은이라면 누구나 갖는 첫 번째 욕망이다. 그렇다면 젊은이는 다른 곳으로 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행복해지고 사랑하기 위한 어떤 장소가 따로 있다고 여기는 것일까? 젊음은 그 자체만으로 정당화되는 고유한 특권을 가지고 있다. 젊음은 젊음이 존재하기 때문에 믿고, 그래서 스스로 믿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그토록 많은 빛이 나를 부르는데 나의 내면에는 너무나 많은 어둠이 깃들어 있어서인가, 너무나 자주 삶이 내게는 끔찍해 보인다. 그러나 삶의 시작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하여 삶은 매일같이 다시 시작된다."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 북서부 일부 지역을 칭하는 프로방스. 프랑스 북서부 지역에서 나고 자란 그르니에에게 자신의 고향과 대조적인 프로방스 지역은 더욱 매혹적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 풍경 앞에서 달콤한 불안과 관능 같은 것들을 느끼며 젊음과 빛과 어둠에 대해 얘기한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프로방스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그곳의 말을 할 줄 모른다는 이유로 프로방스를 덜 사랑한다 할 수 없으며, 브르타뉴의 민족주의자가 아니라고 해서 브르타뉴를 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 그르니에의 말이다. 그르니에가 자신의 고향 브르타뉴의 민족주의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배신자로 취급받는 건 조금은 우스운 일이다. 누구나 어떤 지역을 사랑할 권리가 있고, 자신의 고향과 국가를 무조건 옹호해야 하는 원칙은 없는 법이다. 누군가가 서울보다 파리를 더 좋아한다는 이유로 서울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파괴하는 것이 건설하는 것보다 쉽고, 부정하는 것이 긍정하는 것보다, 의심하는 것이 믿는 것보다 더 쉽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그르니에. 그는 '나이가 젊은 사람은 자기가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몰라도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떠올리게도 한다.



우리는 살아있는 모습들에서 공허함을 볼 뿐이다, 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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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바티칸 제국에 있는 라오콘 군상
조각상일 뿐인데도 눈앞에 살아있는 듯한 모습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살아있는 존재의 모습들이 심지어 대리석이나 색채로 된 모습들만큼의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그들은 살아있는 모습들에서 공허함을 볼 뿐이다."

"나는 조각상들의 죽은 듯 표정 없는 눈을, 그 눈에 가득한 그 모든 고독을 생각해본다. 삶에서 멀리 물러나 있는 그 존재들만이 오로지 삶을 판단할 수 있다. 움직일 수 없는 그들의 부동성이 우리를 움직여 우리 자신의 밖으로 넘어서게 하고 앞을 보지 못하는 그들의 맹목이 우리의 눈을 밝혀준다."



그르니에는 많은 이들, 심지어 위대한 사람들마저도 어떤 특이한 볼거리와 무언가를 구경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그리스를 여행하였지만 이내 실망하고 돌아간 사람이 많다고 했다. 나 또한 아테네의 비현실적인 신전과 건축물들을 보며 매혹적인 낯섬을 느꼈다. 이국적이고 새로운 풍경을 접해보고 싶었다. 세상 모든 이들이 독보적인 역사와 모습을 지닌 그리스를 보며 동경하지만, 정작 우리가 그곳에서 볼 수 있는 건 강렬한 햇빛에 시달리는 돌덩어리들이라고 그르니에는 말한다. 그리고 그 풍경에서 마주할 수 있는 건 우리 자신뿐이라고 하면서. 그런 곳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한 성찰이라는 것이다.

가장 마음에 와닿은 부분은 죽음과 생명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이다. 그르니에는 다가올 죽음과 유한한 우리의 존재, 몸이 소멸하여도 영원히 살아남아 불멸할 우리의 숭고한 영혼, 피할 수 없는 것을 외면하지 않는 아름다운 시선, 그리고 고독과 침묵 속에서도 순수한 마음으로 삶을 즐겼던 자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메두사는 아폴론 신에게 패했지만, 신은 그녀에게 표면적 승리만 얻었을 뿐이라는 것. 그녀의 숨이 두 뺨과 목을 떠나 심장을 떠나도, 생명은 은밀하게 물러날 곳이 더 있으며, 생명이 스스로에게 벗어나는 것은 스스로를 얻기 위해서라는 것을. 생명이 그녀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사실들. 그가 그리스에서 풀어내는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죽음이 조금은 두렵지 않게 되었다.





그르니에는 지중해 세계에 대해 느끼는 매력을 침묵(Silence), 태양(Soleil), 고독(Solitude)로 규정했다. 그의 정의처럼 지중해의 풍광들은 찬란한 햇빛 속에서 우리를 침묵하게 하고, 때로는 고독으로 이끈다. 그는 지중해의 풍경 속에서 영감을 얻고, 자기 자신과 만나고, 삶과 죽음과 인간 존재와 마주하며 생각의 지평을 확장시켜 나갔다. 다른 이들처럼 찬란한 풍경 속에서 단순히 황홀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중해가 건네는 메시지에 귀 기울이며 자연이 주는 삶의 진리에 대해 깨달았던 그르니에. 그는 세심하고 온기 어린 눈빛과 관찰력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작품 <섬>이 어두운 분위기로 풀어나가지는 인간 존재에 대한 사유였다면, <지중해의 영감>은 보다 밝은 분위기로 인간 및 삶의 모든 것에 대해 관찰하고 이야기하고 있다. 둘 다 훌륭한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번 책이 다채롭고 풍부한 노래로 삶을 사유하고 있어서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그르니에의 제자 알베르 카뮈의 작품이 은밀한 절망으로 이어진다면, 그르니에는 은밀한 희망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는 김화영 번역가의 말에 아주 공감하였다. 카뮈는 지중해의 강렬한 햇빛을 보고 부조리와 절망을 느꼈지만, 그르니에는 그것을 보고 삶의 밝은 면을 보았다. 자연의 풍경들을 열심히 기록해나가며 삶을 사유했던 그르니에. 그가 남긴 빛나는 생각들은 이렇게 우리 곁에 남아 다가올 내일을 살아가게 한다. 올여름 난생처음 방문했던 이탈리아와 지중해 바다. 그 아름다운 풍경들은 내게 계속 말을 걸어오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내게 건넸던 이야기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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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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