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커피 한 잔 해요! 맥주 말고 [기타]

글 입력 2018.12.17 10:5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Beer_01.jpg
 

이렇게 빠른 시일 내 사건이 주섬주섬 수습될 줄은 몰랐다. 어쨌든 그를 이렇게 회상하는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그 남자에게 첫 눈에 반했다. 그래서 즉시 저돌적으로 들이댔다. "일 마치면 기다려줘요. 같이 맥주 한 잔 해요." 막걸리를 병 째 휘두르게 생긴 그는 뜻밖에도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꾸역꾸역 저렴한 맥주를 파는 이자카야를 찾아 들어갔다. 깔끔하게 안주 없이 생맥주 한 잔을 마시고 나오는 그 길에 우리는 손을 맞잡고 있었다.



1356F850503336830A.jpg



나는 이런 식으로 거의 항상 그보다 앞에 서서 성질 급하게 또 정신없게 굴었다. 그는 들볶이면서도 여유롭고 장난기 섞인 웃음을 생글생글 거렸다. 내 속도감에 내가 겁을 먹기도 했다. 무서워서 엉엉 울었다. 울다 보니 옆에 있던 그는 초조하게 비닐봉지를 부스럭대고 있을 뿐 이었다. "TV에 나오더라구. 이렇게 하면 비닐 소리에 심리의 안정을 찾고 울음을 멈출 수 있다고." 그런 사람이었다, 엉뚱하고 또 순수한.


나는 세상의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강렬한 호기심을 가지는 동시에 답답해했다. 자주 많은 것을 들쑤셔놓고 맘처럼 되지 않는다고 속상해 했다. "난 꿈을 찾았는데 돈이 걱정이 되서 회사를 그만 둘 수 없어. 너무 비참해. 나란 인간은 형편없어." "아냐. 너의 상황은 나쁘지 않아. 너와 난 행운이야. 들어봐. 난 보컬이고 넌 글을 쓰잖아. 보컬은 음악하는 사람 중 가장 돈이 안들어. 악기가 필요 없거든. 넌 작가지. 예술 중에 붓도 물감도 카메라나 거대 도구나 장비 아무것도 필요없이 연필과 종이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걱정할 것 아무것도 없어." "나 살쪘어. 너무 기분 나쁜 징조야. 망할거야." "응. 뚱땡이 됐네. 하지만 뚱땡이는 나쁜 징조가 아니야."



20161220171745581.jpg



나는 그와 보내는 시간이 좋았다. 그와 같이 있기 위해 술 대신 커피를 마셨다. 흥분해서 바보같은 소리를 하기 보다 자주 가라앉아 생각에 잠겼다. 얼굴을 마주보고 요상한 음악을 들었다. 손을 잡고 어깨 동무를 하고 걸었다. 헬스장에 가서 벤치프레스를 하고 구제 옷을 사 입었다. 편의점에서 오뎅을 가득 사 와 저녁으로 먹고 후식으로는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쉬는 날엔 빅뱅이론을 몰아보고 유치한 일본 공포영화를 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소소한 성공은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서로의 생활 습관을 비난하고 정성 담긴 요리는 조롱했다. 그가 게임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 나는 옆에서 알짱대며 까불었고, 내가 책을 집어들고 있을 때는 그는 헷갈리게 말을 걸었다. 이내 서운하다고 삐쭉 입을 내밀었고 눈이 마주치면 웃었다.


인연이 다하여 그 남자와 나의 꿈엔 서로가 빠졌다. 그러나 뭐랄까, 음 그 대신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귀여워서 웃음이 지어지는 구남친을 가지게 되었다. 그와 친해지고 싶다면 "술 한잔 해요." 보다는 "커피 마시러 갈래요?"가 나을 것이다. 언젠가 다시 그와 친해지고 싶은 날이 온다면, 커피 잘 하는 집을 미리 찾아 두자.



[조서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