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저마다의 울림을 위한 책, <지중해의 영감>

글 입력 2018.12.18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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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영감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 나는 어떤 한 저자가 지중해를 여행하며 작성한 '여행 에세이'인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책의 쳇 페이지를 차마 다 읽기도 전에, 이것이 크나큰 오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지중해라는 아룸다운 풍경이 저자인 장 그르니에에게 선사한 예술적 및 철학적 영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영감'(inspiration)이란 인간들에게 충고와 계시들을 가져다주는, 초자연적 존재에서 나오는 숨결, 그리고 그 초자연적 충동에 영향을 받은 영혼의 신비적 상태를 의미한다. 즉, 장 그르니에에게 지중해의 풍경은 그의 영혼에 신비한 바람을 불어 넣어 줄 만큼 아름답고 황홀한 풍경이었던 것이다. 책을 통해 나는 장 그르니에가 경험한 영감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고, 이는 나에게로 와 또 다른 울림이 되어 주었다.



플로베르는 그 기쁨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나는 가끔 삶을 초월하는

어떤 영혼의 상태를 엿본 적이 있다.

그 상태에서 보면 영광이란 아무 것도 아닐 것 같고,

행복 그 자체도 거기서는 부질없을 것 같다."


<지중해의 영감> p20




저마다의 행복을 위한 장소



서문에서 작가는 '저마다의 행복을 위한 어떠한 풍경과 장소'에 대해 언급한다. 그는 이러한 장소에서 우리는 모두 이런 황홍할 기쁨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장 그르니에에게는 이러한 장소가 바로 지중해였던 것이다.


사실 처음엔 그가 본 풍경을 구체적으로 알고 싶고 그리고 싶어 여러 자료를 검색하며 봤다. 하지만, 이내 이것이 오히려 그의 기쁨을 감상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 그르니에의 섬세하고 깊은 언어로 표현한 그의 지중해에서의 감상은 그 말 하나하나를 곱씹어 눈을 감아야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그가 지중해에서 엿본 어떤 영혼의 상태를 느끼다 보니, 그가 처음에 말한 '저마다의 행복을 위한 풍경과 장소'에 대해 궁금해 졌다. 나에게도 과연 이와 비슷한 경험을 선사해준 장소가 있었을까? 여행을 다니다 보면, 여러 장소와 풍경을 경험해볼 수 있다.


각기의 여행은 모두 나에게 늘 새로운 인상과 감상을 전해주었다. 하지만, 장 그르니에가 말한 그 기쁨을 경험한 순간에 나는 항상 '자연'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자연이 보여주는 어떠한 황홀한 풍경은 늘 뭔가 삶을 초월한 어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울림을 나에게 전해주었다. 때문에 정말 그동안 내가 치열하고 고민하고 괴로워 했던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며, 오직 내 눈앞에 있는 풍경만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는 신기한 경험도 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 해봐도 이 경험은 정말 신기하고 기분 좋은 해방의 순간이었다.



젊은이들의 목적 없는 충동도 이와 마찬가지다.

이런 도피가 없다면 삶은 멈춰버린다.

그러니 도피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는 얼마나 행복한가!

나 또한 다른 무엇이, 나를 에워싸고 있는

- 아니 나를 숨 막히게 하는 그 모든 것과는 다른 무엇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살기 시작했다.


<지중해의 영감> p108




도피의 미학



'도피'라는 단어가 풍기는 느낌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장 그르니에는 이를 뒤집음으로써, 그동안 도피를 갈망 해온 나의 삶에 대해 보다 더 밝게 생각할 수 있게끔 해주었다. '벗어나고 싶은 현실'과 '우리가 떠나고 싶은 도피처'와 같은 두 대립이 부딪히며 만들어 내는 움직임 덕분에 우리들의 삶이 생명력을 지닐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은 이처럼 계속해서 대립되는 대상들에 대한 고찰을 야기한다. 삶과 죽음, 빛과 어둠과 같은 두 대치군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 대립이 지닌 미학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한 쪽만을 긍정적으로 보고, 다른 한쪽은 부정적인 것으로 보는 단순한 인식에 일침을 가하며, 이 두 가지 모두가 있어야 우리들의 삶이 완성된다고 말해 준다. 이러한 대립이 보여주는 미학을 통해, 그동안 어둠만이 가득해 우울했던 삶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게 되었고, 죽음을 걱정하며 살아가던 삶이 죽음 덕분에 보다 뚜렷하고 확실한 삶의 이유를 얻게 되었다.



어떤 공연을 통해서

자기 자신 이상의 그 무엇과 맺어진다고 느낀다면

비록 가장 저급한 공연이라고 한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지중해의 영감> p34




어떤 공연? 어떤 예술?



공연예술인을 꿈꾸는 나에게 유독 큰 여운을 남긴 구절이 몇 개 있었다. 먼저, 장 그르니에가 말한 좋은 공연의 기준이다. 그는 공연을 통해 어떠한 맺어짐을 느낀다면 그것이 바로 그에게 좋은 공연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각자의 인생 공연, 인생 영화, 인생 책 등에 대해 종종 이야기 하곤 한다. 나는 '인생 ㅇㅇ'에 대해 말할 때 가지는 나만의 기준이 있다. 바로 나도 모르는 어떤 이유 때문에 나의 어떠한 감정을 무너뜨리는 그런 작품이다.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지만, 이 눈물과 울림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고 있다는 것은 확실한 순간. 그 순간이 바로 내가 그 작품과 깊은 유대를 형성하는 순간이고, 나에게 좋은 작품이 되는 순간인 것이다. 나 또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이성적인 감정 보다는, 설명할 수 없는 본능적이고 깊은 감정을 끌어내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그가 우리의 병을

치유해주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병을 지켜봐주었다는 점에서

그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우리는 고통을 겪지만 동시에

그 고통이 남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란다.


<지중해의 영감> p75



가끔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냐는 질문을 받을 때 마다, 나는 '아픔'과 '위로'를 동시에 담은 극을 만들고 싶다고 답한다. 누군가의 고통과 아픔을 다루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야 한다. 때문에 이는 어려운 작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의 고통을 무대 위에 올림으로써 그 고통을 우리도 알고 있다고, 지켜보고 있다고,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이것으로 모든 아픔과 고통이 치유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그 아픔을 지켜봐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줌으로써 상처 난 그들의 삶을 위로해 주고 싶다.



시는 익숙한 대상을 더 이상

익숙지 않게 만드는 것이니 ...


<지중해의 영감> p183



내가 공연예술 활동을 하며 크게 느낀 것 하나가 있다. 바로 무대 위에서는 모든 것이 특별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때로는 특별한 줄 알았던 것이 평범하게도 변하는 곳이 바로 무대 위이다. 즉, 무대 위는 '평범함'과 '특별함'이 전복되는 마법의 공간인 것이다. 이러한 공간에서 우리는 사람들에게 보다 더 깨인 시각과 다양한 관점을 선물해 줄 수 있다. 그럼으로써, 어떠한 생각과 사상에 갇힌 딱딱한 사고를 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이 바로 예술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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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그르니에가 저마다의 행복을 위한 장소가 모두에게 있다고 말했듯이, 그의 책 안에 저마다의 울림을 위한 구절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나만의 울림을 찾는 여행을 하고 싶다면, 장 그르니에의 <지중해의 영감>을 품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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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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