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남은 사람들에게 미래는 강요일 뿐, 연극 기묘여행

글 입력 2018.12.18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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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남은 사람들에게 미래는 강요일 뿐
기묘여행


연극 <기묘여행>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유족들이 겪는 참담한 심리를 그려낸 연극으로서 가치를 가진다. 연극을 보는 내내 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할까 걱정했다. 컨트롤 할 수 없는 고통을 마주한 사람들에게는 늘 '내일을 살아가라'라는 강요 아닌 강요가 따라붙는다. 세상의 가치나 그들을 걱정하는 다른 사람 뿐만이 아니다. 그 자신 조차도 내일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강요받는다. 시간을 돌릴 수 없으니, 사실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선택만을 강요받는 셈이다.

 하지만 크든 작든 사랑을 겪어본 사람들이라면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을 선택할 수 없었던 것처럼, 그 잃어버린 사랑을 치유하는 것도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심리상담사를 찾아가고 종교의 빛에 몸을 뉘어도 잃어버린 것이 돌아오지 않는다.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그 사람은 나의 자아의 한 부분이 되어간다. 그래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상실은 팔다리를 잃는 것과 같다. 가장 끔찍한 고통은 한 순간일 수 있지만ㅡ 환상통과 기억은 더 오래, 어쩌면 영원히 남을 수 있다. 끔찍하게 살해당한 카오루가 더 노래를 부를 수 없는 것처럼, 상처의 피는 멎어도 흉터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들에게 내일을 살아가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별 힘이 없는 말일지도 모른다. 이들도 잃어버린 삶을 어쩔 수 없이 선택했고, 그것밖에는 답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뻔히 실패할 살해계획을 세우는 피해자의 아버지는 그 모습을 놀랍도록 잘 표현하고 있다. 그는 살해당한 그의 딸에게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음을 고백한다.

이 이야기의 구조 자체는 그들이 둘러싼 사람들로 인해 전개된다. 이들의 여행을 주최한 사람도 부부가 아니고, 그 여행의 의미를 곱씹는 사람도 부부가 아니다. 여행을 주최한 전 교도관은 '용서와 이해'를 내세웠고, 어머니를 살해당한 유족 도우미는 '합의와 적응'을 내세웠다. 하지만 부부들에게 그런 것들은 아무래도 좋다. 피해자의 아버지는 견딜 수 없는 증오와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여행에 나섰고, 여행은 수단이었다. 피해자의 어머니는 이성으로 억압해온 감정을 풀어가기 위해 나왔다. 가해자 어머니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나섰고, 가해자 아버지는 그의 아내의 적응과 죄책감으로 이 여행에 나섰다.

여행은 아무래도 좋았다. 극장 뒷부분에 연출된 찢어진 장막처럼 길게 찢겨진 상처는 압도적이다. 이들의 여행은 그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감정을 좀 더 심화시킬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왜 피해자와 가해자의 부모들만이 이 연극에서 생동감을 느끼는가에 대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들의 여행에 동참한 제 3자들에게는 그들만의 이유와 사명이 있지만, 상처입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외부의 지원이나 메시지가 아니라 그들이 마주한 이유와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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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여행의 처음과 끝을 보여준다. 배경에 깔린 상처는 절정에 달하면서 더 벌어진다. 처음에 피해자 아버지가 독백한 것처럼, 여행은 잠깐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의미를 갖는다. 새로운 소설책처럼 새로운 이야기가 새로운 감성을 주기도 하지만, 결국 여행은 끝난다. 이들 역시 잊고 있었던 사랑과 숨겨온 감정을 방출하지만 다시 공허한 일상으로 돌아온다.

<기묘여행>은 잔인할정도로, 여행을 여행으로만 남겨둔다. 영화 <킬빌>의 짜릿한 복수도 보여주지 않고, 남은 이들을 위한 어떤 어줍잖은 위로의 메시지도 남겨주지 않는다. 섬세하게 표현한 부모님의 심리 전개는 감탄을 내뱉게 한다. 피해자의 아버지는 여행이기에 죽이고 싶었지만, 어린 살인자의 모습에서 살해당하는 자신의 아이의 모습을 본다. 이성을 유지하고 주위를 살피며 살인자에게 땀을 닦을 손수건을 빌려줄 수 있을 것 같았던 피해자의 어머니는, 결국 잃어버린 딸의 목소리와 기억을 되돌리고 짐승처럼 울부짖는다. 가해자의 어머니는 아들을 살리고 싶어 모두에게 무릎 꿇지만, 사실 한편으로는 그녀 역시도 아들을 (아이러니하지만, 그토록 사랑하기에) 증오하고 있다. 이것이 팔다리처럼 사랑했던 이들을 잃은 사람들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개를 이끌어가는 두 도우미들의 존재감이 옅고, 이해하기 힘들기에 극 전체가 엉성해보일 수 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살을 지지는 고통을 마주한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외부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연극은 그 안의 이야기를 담담하지만 참혹한 모습으로 재현하고 있다. <기묘여행>은 단순하지만 깊은 연출, 주인공 부부들에게 여행이라는 한 과정동안 일어날 수 있는 감정변화를 설득력있게 표현했다. 이들이 느낀 환상통처럼 아픔이 오랫동안 살 밑을 울린다. 오랜만에 만난 좋은 연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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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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