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팔이] 6화: (2) '주목공포증'에 대하여

'C발심리'를 장착하다!
글 입력 2018.12.22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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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2) '주목공포증'에 대하여





“중간고사 시험은 Miles Davis의 ‘So What’을
따라 부르는 것으로 대체하겠습니다!”

난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내가 실용음악과나 뭐 그런 과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난 그저 평범한 문화콘텐츠학과생이다. 마침 이번 학기에 전직 예대 교수님이 부임하셨고, 마침 그 교수님은 문화콘텐츠학과 전공생이라면 예술가의 마인드 역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신 분이었고, 그래서 학생들을 무대에 세우기를 계획하셨고, 그저 강의 내용에 끌려 수업을 신청했을 뿐인 나는 급작스러운 교수님의 중간고사 시험 계획에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혹시 그것 아시는지. 사람이 너무 믿기 어려운 일을 당하면 생각을 차일피일 미루게 된다. ‘어떡하지’와 ‘아, 몰라!’를 몇 십 번 오가다보니 시간은 흐르고 흘러 시험 당일이 되었다.

교수님이 강의실(무대와 영화관 의자가 있는 대강의실이었다.) 불을 끄고 무대에 조명을 집중시키는 순간 난 막말로 교수님이 정말 미치신 줄(?) 알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연극영화과, 실용음악과 등과 같이 예술적인 표현능력을 배양하는 학과의 전공생이 아니다. 내 전공은 문화예술을 상업적으로 기획/경영하는 것을 배우는 학과란 말이다! 문화콘텐츠 전공생이라면 예술가의 마음 역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교수님의 취지에는 백 번 공감한다.

하지만 예술적 표현 능력을 척도삼아 점수를 매기겠다는 것에는 쉽사리 동의할 수 없었다. 음정 같은 것은 점수에 크게 반영되지 않는다고 교수님께서 말씀은 하셨지만 앞 사람들이 받은 점수를 비교해보면 교수님의 주장에 그다지 신빙성이 있어보이진 않았다. 그리고 사실 음정이고 나발이고 다 떠나서, 나는 앞전에도 말했듯이 주목 공포증이 있었다. 친구들 5명 앞에서도 장황하게 이야기를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나인데 무려 80명 앞에서 무대조명을 받으며 노래를 하라니. 그냥 미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사실 그 날, 내 차례를 기다리다가 그냥 짐 싸서 강의실을 나와 버렸다. 정말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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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그 흔한 재수강 한번 해보지 않았을 정도로 학교를 꽤 열심히 다녔다. 성적장학금 역시 몇 번 받았을 정도로 학점관리에 그다지 소홀하지는 않은 그런 학생이었다. 그런 내가 학교를 다니면서 처음으로 ‘드랍’을 결심했다. 시험을 보지 않으면 D 정도 나오겠구나, 그럼 앞으로 수업은 갈 필요 없겠네,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드랍(Drop): 학점 삭제

혹자는 이러한 나의 심경을 이해하지 못하실 수도 있겠다. ‘그까이꺼 대충, 3분만 부르고 내려오면 되는데 뭐 그렇게까지 오버를 한담?’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한테는 그게 오버가 아니었다. 어두운 좌석에 앉아 밝은 무대를 올려다보면서, 저 곳이 곧 내 자리가 된다는 상상을 하면 미친 듯이 뛰어오는 심장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무대에 오르는 순간 떨려올 것이 뻔한 목소리와 어디로 둬야 할지 모를 불안한 시선을 스스로 감내할 수가 없었다. 그 떨림을 감추기 위해 애써 태연한 척 다리를 떨고 건방진 미소를 지어야 하는 상황이 정말 너무 싫었다. 그래서 그냥 무대를 포기하기로 했다.

내 이름이 호명되고, 아무도 나타나지 않은 채, 그렇게 무대에 공백을 만들며 내 이름은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그 상황이 차후 일주일동안 계속해서 머리에 맴돌았다. 그저 점수를 못 받는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내가 ‘도망쳐 나왔다는’ 사실이었다.



‘C발심리’: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C발!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가혹하다. 해서 스스로를 잘 봐주지 않는다. 나는 이것을 ‘C발심리’라고 부른다. 장편 시나리오를 쓰는 길고 지난한 길을 걸어올 때 만들어진 성향이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아 도중에 그만두고 싶을 때 작업하고 있는 페이지 맨 위에 ‘무조건 끝까지 간다, C발!’이라고 꾹꾹 눌러 써놓고는 나와의 싸움을 하는 느낌으로 작업을 했었다. 막막하더라도 아주 조금씩이라도 발을 떼다 보면 어느 순간 막바지에 다다라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결국 작업을 끝맺는다는 점은 좋지만 스스로를 가혹하게 대하기에 정신적으로는 고단해진다는 것이 C발심리의 최대 단점이다.

“교수님, 제가 저번 주에 몸이 안 좋아서 시험을 못보고 일찍 갔는데 괜찮다면 이번 주에 볼 수 있을까요?”

내가 다음 주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 이렇게 말한 것 역시 C발심리의 발로였다.

“그렇게 하세요!”

그리고 교수님은 너무나 쿨하셨다.

C발. 저번 주에 시험을 보지 못한 이씨부터 허씨까지의 학생들 틈바구니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며 속으로 몇 번이고 C발을 외쳤는지 모른다. 내가 왜 그랬을까. 그냥 D나 받을 걸.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또 이런 심장 떨림과 손에 차오르는 식은땀을 견디고 있는 걸까. 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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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결국 내 차례는 왔다. 무대 조명 한가운데 섰다. 무대 밑에서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 했던 여유로운 눈짓과 손짓은 무대 위에서 모두 무효가 됐다. 시선은 조명이 겨우 드리우는 무대 끝자락에 박혀 풀려날 줄을 몰랐다. 그나마 오른손은 마이크라도 쥐었지, 할 일마저 없어진 불쌍한 왼손은 가슴께 언저리에서 애처롭게 파닥댈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다른 학생들은 물론 교수님과도 시선조차 맞추지 못한 채 겨우겨우 무대를 마쳤다.

성공적인 무대는 분명 아니었다. 뮤지션의 기본인 ‘관객과의 소통’ 따위 완벽하게 부재했으니 말이다. 이번에는 억지로 지어낸 여유로움도 없었다. 그저 날 것 그대로의 허둥지둥, 그 자체였다. 그래도 어쨌든 무대를 마쳤다. 음정박자 맞추는 데만 온 신경을 쏟은 부족한 무대였을지라도, 긴장한 티 팍팍 나는 무대였을지라도 어쨌든 해내긴 해냈다는 만족감이 나를 감쌌다.  결과와 상관없이 스스로를 칭찬해줬다. 이번에는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종학점이 공개된 오늘, 나는 A를 받았다. 아무래도 교수님께서 어떻게든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보려고 애쓰는 나의 진심을 봐주신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C발심리의 빛나는 최후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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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내가 주목공포증을 갖게 되었는지는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원인이야 짚이는 구석이 있긴 하지만 과거를 수정할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이 공포증을 넘어보려고 스스로 노력할 수밖에. 해서 신년에는 남들 앞에서 의견을 개진하는 단련을 하고 자신감을 기르기 위해 이런저런 훈련을 해볼 생각이다. 기타치고 노래 부르며 여의도에서 버스킹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제발 이번 년도에는 이룰 수 있기를. 매번 내가 짠 판 위에서 남들이 연기하는 것을 보기만 했는데 이번 년도에는 연기도 몇 번쯤 직접 해보고 싶다. 논리적으로 의견을 펴나가는 훈련도 하고 싶어서 스피치 동아리나 독서 동아리 같은 것도 해볼까 싶다. 참으로 패기 넘치는 신년 목표가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원래 목표는 패기 넘치는 게 제 맛 아니겠나.

하여튼. 지금까지는 나의 주목 공포증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 글은 공포증 ‘극복기’는 절대 아니다. 공포증을 어쩌다 한 번 운 좋게 넘어본 경험이 차후의 의식적인 노력으로 이어진 연장선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는 것이 더욱 맞을 듯하다. 나의 공포증 ‘극복기’는 이제부터야 비로소 시작인 셈이니 말이다.

p.s. 아, 물론 음정박자도 나름 정확하게 맞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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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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