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The100dayproject, 나 자신에게 건네는 100일의 약속 -5주차 [문화전반]

Day 29 ~ Day 35
글 입력 2018.12.2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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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100DayProject
#100daysofpracticing

옛 친구들을 만나고 와서인지, 음악을 듣고 와서인지, 여행을 하고 와서인지. 아무튼 평소 조금씩 메말라가던 감성이 다시금 살아나는 것 같다. 확실히 처음 도전을 시작했을 땐 그림 그리는 게 조금 부담이 되기도 했는데 요새는 은근히 하루 중에 그림 그리는 시간을 기다리게 된 것 같다.



Day 29 : 파스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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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4일. 춘천의 스튜디오 카페에서 찍은 사진을 그려봤다. 이리 들여다보고, 저리 들여다보고, 보면 볼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사진이다. 흑백 사진 찍는다고 체크무늬로 컨셉을 맞춘 것도, 살짝 웃고 있는 얼굴들도 어느 한 구석 마음에 안 드는 곳이 없다. 그림으로도 남기고 싶어 이렇게 그려봤다.

저번에 카페에 다녀와서 그린 빨간색 공중전화 부스를 보고, 우리언니가 오일 파스텔을 낱개로 사서 색을 입히는 걸 추천해줬다. 색다른 느낌이 날 거라고. 그래서 오랜만에 단골 화방을 찾았는데 아쉽게도 사장님이 잠시 안 계신 상태에서, 대리로 오신 분도 다른 손님들 계산 봐주시느라 여념이 없었다. 위치를 물었지만 아주머니께서는 잘 모르시는지, 그 자리엔 아무리 봐도 오일 파스텔은 없었다. 찾다 찾다 여섯가지 색이 들어 있는 스케치용 일반 파스텔을 사고 나왔다. 오일파스텔은 아니지만, 그간 사용하던 재료가 아닌 것만으로도 색다른 느낌이 나서 매우 좋았다. 기분이 좋아져서 예전에 사둔 픽사티브도 뿌려보았다. 적게 뿌리면 효과가 없고 많이 뿌리면 흠뻑 젖어버리는 초보자만의 참사를 겪어야 했지만, 몇 장은 건질 수 있었다.



Day 30 : 에펠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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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5일. 친구가 아무렇지 않게 '자신감'이 느껴지는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 때 약간 '아!'하는 깨달음이 왔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어쩐지 선을 긋기 시작할 때, '망치면 어떡하지'하는 두려움이 많이 사라진 느낌이다.

일상적으로 자주 연락을 주고 받는 또다른 친구가 있다. 종종 그림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곤 하는 귀여운 친구다. 첫주에 손을 그려보라며 자기 손을 찍어 보내주기도 했고, 일주일 동안 한 가지 주제를 다르게 그려보는 건 어떠냐고 해서 3주차에는 내내 바이올린만 그려보기도 했다. 실제로 마지막날 그린 바이올린은 꽤 마음에 들기도 했고,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이번에는 가볍게 미션이라며 '좋아하는 음악 들으며 느낀 점 그림으로 표현하기'를 던져주었다.

에디트 피아프의 <Exodus>와 <Sous le ciel de Paris>를 들으며 그렸다. 처음엔 상상으로 그려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무리인 감이 있어서 사진을 보고 그렸다.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불문학도로서 공부할 때 자주 들었던 노래기는 하다. 에디트 피아프 노래 중에선 가장 좋아하는 느낌의 곡들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파리의 회색 하늘과 코트에 스카프를 두른 파리지앵들의 모습이 흑백영화의 한장면처럼 떠오르는 곡들이다.



Day 31 : 카를라 브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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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6일. 친구들을 만나고 밤기차를 타고 내려와 그린 그림이다. 나는 연필로 그린 밑그림이 없으면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사람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최근에는 '그림을 그려야지' 하고 펜이나 파스텔을 들고 그냥 슥슥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정말 며칠 안 되었다. 사실 불과 29일차에 카페에서 찍은 사진을 그릴 때만 해도, 구도를 망칠까 싶은 마음에 연하게 밑그림을 그렸었다. 어쩌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나도 모르는 새 밑그림 없이도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된 걸까? 라인드로잉 기법으로 꾸준히 연습한 게 꽤나 도움이 된 것 같다.

100일동안 매일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하기는 했는데 진짜 이렇게 매일매일 그리게 될 줄은 몰랐다. 조금 아이러니하게도 해내야겠다, 반드시 하겠다고 다짐은 했지만 막상 정말 내가 그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없었던 것 같다. 할 수 있을까? 일단 시작부터 하자. 그럼 그 다음은 어떻게든 이어질 거야. 아직 미처 3분의 1도 안 된데다 며칠전엔 하루 쉬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매일 그림 그리는 게 이렇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는 게 정말 신기하다. 왜 그 몇 년간 이렇게 그려보지 않은 건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그림 그리기에 빠르게 익숙해지는 중이다. 심지어 나는 내가 이런 다양한 스타일로 그림을 그려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할 줄 아는 건 만화캐릭터 그리기, 기초수준의 소묘, 그리고 약간의 캘리그라피가 전부였는데. 주변에서 여러 도움이 있었던 덕분에 3분의 1지점을 찍지 않았나 싶다.



Day 32 : 샴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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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8일. 솔직하게 인정한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결국 또 하루를 건너뛰었다.

그림을 그리다보면, 나도 한 장 그려달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나중에 그려주겠다 인사치레로 말하기는 하지만, 마음이 끌리지 않으면 선물할 만한 그림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정말 그려달라는 사람에게 그려준 적은 많지 않다. 그림 선물은 대개 내가 어떤 영감을 받아 마음대로 그리고 당사자에게 강제 선물하는 식이다.

오늘 그린 고양이는 연극제 계약직 일 하는 동안 알게 된, 사진 찍는 친구가 자취방에서 기르는 고양이다. 이름은 깜이. 검은 종이에 흰 파스텔로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는데, 샴고양이의 흰 털과 어두운 코, 귀, 손끝 같은 부분들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형태를 잡는 과정에서 정말 너무 마음에 안 들고, 고양이 같지 않아 속상한 걸 넘기고 넘겨가며 선을 덧그리고 덧그렸다. 그래도 계속해서 사진을 들여다보며 다시, 또다시 털 가닥을 그리고 콧대를 그리다보니, 어느새 내 종이 위에 고양이 한 마리가 눈 감고 잠들어 있었다.

중간에 마음에 들지 않아도 끝까지 해내는 게 필요한 때가 있다.



Day 33 :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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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9일. 친구가 <국경없는 포차> 프로그램을 보다가 과 선배가 손님으로 나왔다며 연락을 해왔다. 너무 신기해서 같이 티비를 틀어서 보는데, 에펠탑을 배경으로 센 강이 흐르는 파리를 보자 자연스럽게 내 파리 여행이 생각났다.

아무것도 모르고 같이 간 친구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다가, 전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예술의 다리, le pont des Arts에 도착했을 때. 누군가가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리가 저녁 노을에 섞여 흐르는 다리를 건너다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커플을 발견했다. 나도모르게 실례인 줄 알면서도, 알아서 더더욱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똑딱이 디카만 커플 방향으로 내밀어 얼른 셔터를 누르고 도망치듯 친구를 따라갔었다. 가면서 폴더를 열어 확인해보는데, 나는 지금까지도 그렇게 아름다운 사진은 찍어본 적이 없다.

몰래 찍었다는 걸 알면 불쾌해 하실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 사진은 두 사람에게 가야 한다고 생각해 발걸음을 돌렸다. 우연히 이 사진을 찍었는데, 너무 잘 나온 것 같아 선물하고 싶습니다. 이메일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걱정했던 게 무색하게 두 사람은 사진을 매우 마음에 들어했다. 파리에 살면서 여유로운 저녁이면 늘 산책하러 방문하곤 하는, 그들에게는 일상인 그 다리에서 잊지 못할 선물을 받았다며. 언제나 어제처럼 생생한 이날의 저녁도 어느덧 사 년이 넘게 지났다. 두 사람은 여전히 해질녘이면 함께 그 다리를 걸을까?



Day 34 : Cloud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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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일. 구름분류상 9번 구름을 그려봤다.

내가 하늘에서 가장 좋아하는 두 가지는 구름과 별이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구름과 별에 관한 책을 찾아 읽었다. 특히 자주 읽었던 책은 리처드 험블린의 <한 권으로 읽는 구름책>. 구름에 대한 모든 것이 한 권에 들어 있는 가슴 설레는 책이다. 새로운 책을 여러권 읽는 것보다 좋아하는 책을 여러번 읽는 걸 좋아하는 나는, 늘 이 책을 반납하고 하루이틀 누가 빌려가는지 눈치를 본 다음, 아무도 안 본다 싶으면 내가 다시 빌리곤 했다. 덕분에 수학과 물리를 보면 머리가 굳어버리는 문과생이었지만 지구과학은 곧잘 했던 것 같다.

영어에서 '세상을 다 가진 듯하다'는 뜻을 가진 'I'm on cloud 9'이라는 표현도 이 구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구름 중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자라난다는 이 구름의 꼭대기에 앉아서 지상을 내려다보는 기분을 상상해보면,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지 않을까 싶다.



Day 35 :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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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1일. 현재 사용 중인 <라이트 형제 다이어리>의 후속작인 <윤동주, 새벽 다이어리>가 드디어 도착했다. 이 다이어리는 3개월에 한 번씩 컨셉이 바뀌는데, 돌아오는 2019년의 첫 세 달 컨셉은 윤동주다. 비공개 판매 당시 컨셉이 '자화상'이었기 때문에, 이 다이어리를 받게 되면 나도 자화상을 한 번 그려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자화상을 그려본 일이 거의 없다. 단체사진을 제외하고, 나를 담기 위해 나를 그려본 기억이 없다. 자화상을 그릴 땐 어떤 철학이 담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래서 더 자화상을 그리기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나는 그런 게 아직 없으니까. 또 한 편으로는, 내 못난 모습을 담지 않으려다 날 닮지 않은 자화상을 그리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다.

솔직하기는 참 어렵다. 나 자신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왜냐하면 난 멋있어 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번듯해 보이거나 잘나 보이거나 대단해 보이고 싶은 그런 욕망이 있었다. 지금도 있다. 내 결점, 내가 생각하기에 못나 보이는 점들을 무시하는 게 결국 나 자신을 무시하는 거라는 걸 몰랐다. 이제는 알지만, 지금까지 외면해온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바꿔나가야 할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니까.



35일차를 지나며


시인 윤동주에게 시란, 고통을 이겨내는 매개체고, 무슨 일이 있어도 타협할 수 없는 스스로의 가치이며, 곧 굶어 죽어도 놓지 않을 꿈이었다. 나에게 그림은 그런 꿈일까? 나는 이미 여러 번 포기했었는데 말이다. 사실 그림을 제외하고서도 무언가를 그렇듯 온 힘을 다해 사랑해본 적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좋은 일이 있을 때면 항상 생각나고는 한다. 누군가에게 진심어린 마음을 담아 선물하고 싶을 땐 그 사람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리곤 했었다. 그림과 손편지, 직접 만든 카드 같은 것들. 그 정도면 나는 그림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류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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