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황홀에 가까운 기쁨, 장 그르니에의 문장 [도서]

글 입력 2018.12.24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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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에 가까운 기쁨을 노래하는 형이상학적 시



번역가 김화영은 책의 ‘옮긴이의 말’ 챕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다른 책들과는 다른 태도를 요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단순한 논리적 이해를 넘어서 어떤 형이상학적 시의 분위기를 통합적으로 경험해낼 수 있는 자질을 요구한다.”



부끄럽지만 인문학을 전공했음에도 지금까지 알베르 카뮈의 글을 읽은 적도, 장 그르니에를 알지도 못했다. 때문에 서문을 읽으면서 독자에게 “단순한 논리적 이해를 넘어서 어떤 형이상학적 시의 분위기를 통합적으로 경험해낼 수 있는 자질을 요구”하는 글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이 들었다. 동시에, 너무 어렵고 재미없는 글이면 어떡하나하는 걱정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사람들 저마다에게는 행복을 위하여 미리부터 정해진 장소들이, 활짝 피어날 수 있고 단순한 삶의 즐거움을 넘어 황홀에 가까운 어떤 기쁨을 맛볼 수 있는 풍경들이 존재한다."



걱정도 잠시, 책의 서문에 적힌 첫 문장을 보자 바로 이 책에 대한, 장 그르니에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 저 한 문장이 장 그르니에가 이 책 한 권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 지를 집약한다. 장 그르니에는 황홀에 가까운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지중해를 예찬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 누구에게나 그런 황홀한 풍경이 존재한다. 장 그르니에는 그 풍경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떻게 표현했을까. 궁금증과 함께 책을 읽어나갔다.


형이상학적 시라고 표현한 번역가 김화영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장 그르니에의 문장은 하나 하나가 모두 시적이다. 또한 철학적이다. 장 그르니에는 한 장소에서 본 것과 거기서 느껴지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떠오르는 생각을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뛰어난 표현력으로 자유롭게 넘나든다.




형형색색으로 밑줄 긋기



평소 책을 읽으면서 밑줄 긋는 습관이 있다. 작가의 생각이 마음에 와 닿거나 혹은 표현력에 감탄했을 경우인데, 이 책은 대부분의 구절이 그 둘에 해당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페이지가  현재 형형색색으로 물들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섞이지 않은 순수한 것만이 쾌락인 법, 살다보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최상도 최악도 모두 참아내야 한다. 그러나 공연의 경우라면, 기분을 풀려고 찾아간 곳에서 재미가 없다면 한시라도 더 머문다는 것이 과연 할 노릇인가? 그리고 쾌락이 순수한 것이라면 그것이 변질될까 염려스러운 순간에 그만 돌아서야 한다.”



순수한 쾌락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재미없는 공연에 억지로 머물지 않는다는 것에 무척 공감하며 형광펜으로 줄을 열심히 그은 부분이다. 그런데 바로 밑에, 이번에는 너무 마음에 드는 표현의 구절이 나온다.



“어떤 작가는 단 한 페이지로 할 말을 다 할 수 있다. 그러니 그 나머지는 찢어버려야 한다. 어떤 음악가는 단 몇 개의 화음으로 영혼을 가득 채울 수 있다. 나는 나의 밤 속으로 깊이 사무치게 될 그 한 방울의 향기를 지니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장 그르니에의 표현을 보고 있으면 카뮈가 그랬던 것처럼 ‘열광에 찬 복종의 마음’이 들 정도다. 그가 사용한 단어 하나하나가 음표와 같고 문장 하나하나가 화음과 같으며, 그 문장이 모인 한 편의 글은 마치 교향곡 같다. ‘나의 밤 속으로 깊이 사무치게 될 그 한 방울의 향기’라니. 이 수식어를 모방하려면 장 그르니에의 글을 몇 번을 읽고 몇 번을 필사해야 할까. 그의 표현에 경외감까지 들 정도다. 도저히 밑줄을 긋지 않을 수가 없다. 때문에 내 책은 온통 형광색 밑줄이 가득하다.




글쓰기 공부의 지침서



지금까지 읽어왔던 여행 에세이들과 확실히 다르다. 그나마 떠오르는 책은 이병률의 <끌림>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지중해의 영감> 앞에서는 가벼운 여행담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중해의 영감>은 천천히 읽고, 느끼고, 생각해야 한다. 동시에 그의 시적인 표현을 놓칠 수 없다. 알베르 카뮈는 <섬>의 재판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십 년이 넘도록 나는 이 책을 읽고 있다. 오늘에 와서도 나는 <섬> 속에, 혹은 같은 저자의 다른 책들 속에 있는 말들을 마치 나 자신의 것이기나 한 것처럼 쓰고 말하는 일이 종종 있다. 나는 그런 일을 딱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다만 나는 나 스스로에게 이 같은 행운이 온 것을 기뻐할 뿐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카뮈의 글을 읽어보지 않았고 그를 잘 모른다. 하지만 장 그르니에의 책에 대한 그의 태도에 매우 공감한다. 나 또한 그르니에의 글을 내 것처럼 모방할 수 있다면 매우 기쁘고 행운이라고 여길 것이다. 앞으로 내가 쓰게 될 여행기는 장 그르니에의 영향을 받아 책을 읽기 전과는 확연히 달라질 것 같다. 아직 여행할 곳이 많이 남은 시점에서 이 책을 접해 다행이다. 이 책은 단순 여행 에세이가 아닌, 나에게 글쓰기 공부의 지침서로 오래 함께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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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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